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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山 戀歌

희망 속에 달려본 반야봉의 진달래

by 청산전치옥 2012. 5. 28.

 

희망 속에 달려본 반야봉의 진달래

 

-일시: 2012. 5. 18

-어디를: 지리산 반야봉

-누구랑: 홀로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갖는다했습니다.

그렇게 바쁘지 않지만 오늘도 바쁜 척 하면서 남들보다 쬐금 일찍 일어나

새벽이 아닌 오밤중12시에 집을 나섭니다.

항상 희망은 안고 사는 철부지 어린애 마냥 오늘도 반야봉의 진달래를 그리며……

 

 

 

산과 사진 하면서 희망이란 단어를 품고 살아갑니다

결코, 내가 이루고자 하는 희망은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우리가 걸어가는 지리산 산길도 처음부터 길들여진 곳이 아니듯

누군가 필요에 의해 걸으면서 길들여져 생겨나듯

희망은 언제나 꿈꾸는 사람의 몫이고 부지런한 사람의 몫이라 생각 합니다.

 

 

 

 

정적이 흐른 노고단의 밤하늘은 별빛만이 아리아의 서곡을 연출하는 것 같습니다.

카바라도시와 토스카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카바라도시가 죽기 직전에 부른 별이 빛나건만들리는 것 같네요

그 운명의 날, 별이 유난히 반짝였다는데 그때의 그 별처럼 유난히 반짝입니다.

 

 

 

 

모든 사물이 어둠으로 치장됐을 때 보이지 않은 흉물스러움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조물주의 신비가 더욱 빛난 지리산 밤하늘을 걷습니다.

밤 땀을 흘리면서도 흘리는 것 같지도 않고 피로의 기색이 노출되지 않은 밤

바람에 부대끼는 충격음이 컸던지 섬찟 발걸음을 멈추며 쭈뼛선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그렇게 2시간을 갔을까?

노루목 삼거리에서 낮 선 불빛이 앞을 비춘다.

잠시 어둠의 정적으로 낯을 가릴 수 없어 묵언의 시간이 흐른다.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시간에 이곳을 올라야 하는 이유 그 하나뿐이다.

처마님과 울산바위(지리99회원님) 그 일행들. 넷 상에서 자주 뵙는 산악사진가들입니다.

 

 

 

 

반야의 일출이 시작된다.

어둠에 숨죽인 식물들이 온기를 받아내면서 광합성 작용에 기지개를 켠다.

무량억겁(無量億劫)을 질러온 거룩한 담금질 해 오름이 시작됩니다.

천왕 동편에 떠 오르는 해 오름이 새색시 립스틱 색상 같은 진한 연 홍색이 일렁인다

이내 서운한 사방을 밝혀 온 세상을 밝힙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진달래는 오 간데 없네요

희망 속에 실망이다.

그래서 어둠이 어쩌면 그렇게 좋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며 몇 놈 붙잡고 카메라 앵글을 들이민다.

 

 

 

 

일출과 함께 장엄하고 경이로운 천왕의 용틀임이 전율(戰慄)을 탄다

때로는 소용돌이 치는 물살처럼 울렁거리다가 부드러운 웨이브를 그리고

한 능선 돌고 돌더니 이내 철썩거리는 파도의 포효(咆哮)처럼

그 어떤 누구도 상대할 수 없게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위엄의 대자연

이 세상 최고의 설치 미술가인 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 홍색 일출도 흐르는 시간을 거역할 수 없듯이 그 흔한 색상으로 돌아 왔다.

한결 여유로워진 우리 일행은 적당한 곳에 아침 겸 간식으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초면이지만 취미생활이 같다는 그 이유 하나로 반야봉의 아침을 맞이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2012. 5. 18

청산의 바람흔적은 반야봉에서

청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