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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의바람흔적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지리산의 역사38

화엄사 각황전 홍매, 그 때는 없었다 화엄사 각황전 홍매, 그 때는 없었다 이제 홍매화 시즌이 돌아오니 화엄사 흑매가 생각 난다화엄사 홍매를 검색해 보면,숙종 25년 ~ 28년(1699 ~ 1703)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더불어 원통전도 중건하니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파 선사께서 홍매화를 심었다라고 나온다.식민지시대 일본 총독부가 뻔한 이유로 찍은 문화재 사진들이 전해져 온다.화엄사 사진도 몇 점 있다.그런데, 그 사진 속엔 화엄사 각황전 홍매는 없다계파선사가 심어 올해로 320살이 되었다는, 그 홍매는 사진에 없다. 사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계파선사가 조선 숙종 때 심었다는 각황전 옆홍매는 일제 식민지 시기와 1966년 까지는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남은 이야기는.... 화엄사나, 그 내막을 아시는 사람이 해 줄터이다.계파선사가 심지.. 2025. 2. 28.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로 지정되었으며 불국사 다보탑에 비견될 만한 이형(異形)의 석탑인데 원통전 앞에도 비슷하게 생긴 사자탑이 있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이 탑은 각황전 옆쪽에 나있는 108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세련된 조각솜씨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석탑과 앞에 있는 좀 작은 석등인 효대(孝臺)는 연기조사(緣起祖師)가 만들었다고 한다. 석탑의 형식만큼이나 특이한 것은 석탑과 효대 내부에 각각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석상이 있다는 점이다. 석탑 안에 서있는 것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며 효대 안에서 석탑을 향해 꿇고 예배하는 것이 연기조사라 전해지고 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석등을 머리에.. 2025. 2. 25.
지리산, 제석봉 그 날 무슨일이~~ 인간 욕심 향한 경고, 이제 하나 둘 사라지고(퍼 온글) 지리산 제석봉은 해발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천왕봉, 중봉 다음으로 세 번째 높은 봉우리다. 최고봉인 천왕봉이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는 제석봉을 양 옆으로 거느리고 지리산의 위용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그 제석봉은 장터목 대피소와 천왕봉 사이 3㎞ 구간의 사이에 있다. 제석봉은 한자로 帝釋峰이라고 쓰며 남쪽 비탈에 향적사(香積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문헌에 전한다. 장터목에서 5분 거리에 있는데 천왕봉의 성모사당에 향화를 받들기 위해 있었던 절이라고 여지승람 진양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절에는 1489년에 김일손이 묵어갔고 이보다 17년 전에는 김종직이, 이보다 9년 전에는 이륙이라는 분이 묵어갔다고 한다. 문헌에 나오는 그들과 관련된 내용들.. 2025. 1. 22.
1980년대 지리산 제석봉 ▶1980년대 지리산 제석봉의 모습◀ 고사목 군락: 1980년대 제석봉 주변에는 고사목이 많이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사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제석봉의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상봉에서 바라본 제석봉의 고사목 군락은그 시절의 자연을 잘 보여줍니다 좀더 빨리 지리산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1980년대의 지리산 제석봉은 고사목과야생의 자연이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자랑했습니다. 당시의 등산 문화와 자연 환경은 현재와는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저 역시 1박 2일로타리 산장 아래에서 묵었던 그 날이 생생합니다 또한 그때부터 사진을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2024. 11. 23.
삼성궁의 유래 삼성궁의 유래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소재하며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품속 깊이 청암면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Km가량 걸으면 해발 850m에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이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1983년에 고조선시대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민족의 도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하동군 홈페이지 참고]  지리산 삼성궁은 한국의 전통적인 신앙과 관련된 장소로 주로 세 개의 신(삼신)을모신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며 지역주민들과 등산객들에게 중요한 신앙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삼성궁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1)  삼신 신.. 2024. 10. 31.
[벽송사 역사와 전설] [벽송사 역사와 전설] 盡日惺惺坐진일성성좌 乾坤一眼中건곤일안중 有朋草屋來유붕초옥래 明月與淸風명월여청풍 온종일 성성히 앉았 노라니/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벗이 초암으로 찾아오니/밝은 달, 맑은 바람이라 수많은 도인을 배출한 벽송사도 세월의 흐름 속에 영고성쇠榮枯盛衰의 흐름을 타게 된다.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 동조初月東照 대사는 독립운동에 투신해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게 되고,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 정책으로 인해 4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법맥의 요람인 벽송사의 사세도 점점 더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6·25 때 이곳 지리산 일대는 마지막까지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서 당시 벽송사는 빨치산들의 야전 병원이었던 탓으로 우리 국군에 의해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는 비운을 맞.. 2023. 10. 29.
함양 금대암 (金臺庵)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금대암이다. 함양 마천의 3대 중 가장 아름답다는 금대가 자리한 곳이며 3대는 금대(금대암), 도솔대(도솔암), 무주대(상무주암)를 일컫는다고 한다 마천에서 산내, 인월로 가는 지방도에서 우측 임도 따라서 2.5km 더 올라가야 하며 좁고 가파른 임도이기에 운전에 자신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가셔서 여유를 즐기시라 ~~ 차 한잔도 하시고 또한 시주함에 시주는 필수 ...... 지리산 북쪽 산자락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위치한 금대암은 지리산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금대암의 창건 시기 657년(신라 ~고려~ 조선)는 인근에 있는 안국사와 같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승 대덕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이렇듯 고려시대 진각국사의 수행처로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금대암은 조선전기 고승과 성.. 2023. 10. 28.
호젓한 풍경이 함께하는 '운지사' 작지만 호젓한 풍경이 함께하는 '운지사' 겨울이면 설국의 동화를 뿜어내는 바래봉이 있어 좋고 봄이면 또한 어김없이 철쭉 구경 길에 운지사와 맞닥 드린다 굳이 봄이 아니어도 좋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가도 좋다 하지만 난 기꺼이 가을을 함께하면서 잠시 사색의 기회를 갖는다 맨 먼저 반겨주는 문구의 플랜카드가 나부낀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이 좋은 날 작지만 호젓한 풍경이 함께하는 '운지사' 입구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는 강아지는 귀엽기전에 귀찮을 정도다 ㅋㅋㅋ 아마 이녀석도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마치 빛 받은 가을 단풍이 기와와 어울려 고색창연(古色蒼然)하게 빛나고 있다 2023년 10월 23일 "청산의바람흔적"은 운지사에서 2023. 10. 28.
금대암[金台庵] 금대암[金台庵]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읍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조사 행호가 창건한 암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금대사라고도 한다. 창건한 그 뒤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대에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6ㆍ25때 소실된 뒤 금대암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인법당(人法堂)과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1972년 경상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금대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석탑은 행호가 절을 창건할 때 세운 것으로 전해지나, 탑의 조성수법으로 보아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또한 금대암은 지리산 주능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리산 최고의 조망권이다 사진에 보이는 600년이 넘은 금.. 2023.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