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만이라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이라면(
"정작 새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지금 당장 떠날
용기가 없다면, 그는 영영 자신의 굴레로부터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 위 제목의 책자, 지리산 호랑이 함 태식 님의 글 중에서
현재 피아골 대피소에 머물고 계시는 함 선생님은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역사와 함께 한 산 증인이다.
67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에 산행객들의 안전을 위해 71년 노고단
무인 대피소가 처음 들어섰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않아 쓰레기장이 되다시피
한 이곳에 72년 8월 함 선생님이 오르시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게된다.
'조용히, 깨끗이'를 강조하시며 올바른 산악문화와 황폐화된 노고단 일대의
보호에 앞장서던 그였지만, 87년 11월에 새로운 대피소가 완성되면서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직영으로 운영하게 됨에 따라 16년에 걸친 노고단에서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피맺힌 한을 가슴에 담고 눈쌓인 질매재를 거쳐 88년
1월 4일에 지금의 피아골 대피소로 옮기게 된다.
피아골 대피소는 1984년에 건설되어 아직껏 위탁관리를 해 오고 있는데, 급경사
너덜의 골짜기에서 대피소가 있는 곳이 유일하게 평탄한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먼 옛날 종녀촌의 전설과 더불어 가까이는 무수한 빨치산의 아픔이 묻혀있는 곳
또한 여기가 아닌가 싶다.
대피소 건설 당시 인골이 한 트럭 분이나 나왔다고 하니까.
그 이후
다시 피아골로 내려갔지만, 노고단에서 밀려난 응어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나 보다.
요즘도 매일 술에 의지해 보내시는 모습을 자주 보고 듣게 된다.
76년 6월 멀리 세석에서 노고산장에 찾아와 한숨과 울분 속에서 이틀간 머물다가
전설과 함께 지리산 속으로 영원히 사라진 지리산 산신령 허 우천 선생님을 그리워
하시는 것은 아닌지?
사족으로 선교사 별장에 대해서는 오래 전 언급한 것처럼 노고단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린튼 가에서 정상부에 물이 풍부한 왕시루봉 일대를 임차하여 조성한 62년
이래 91년 말까지 이 강협 님이 관리해오다가 많은 변화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_^) 지다람 / 윤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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