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에 대한 몇 가지 언급(
허공다리골
허공에 뜬 달이란 의미의 허공달골과 헛방짚다란 의미의 허방다리골이라 부른다는 의견이 분분함.
90년 대 초인가 조선일보의 월간 산에서 실수로 허공다리골로 소개되면서 정식 명칭으로 굳어짐.
두류암 터
조선시대 유 몽인 선생이 용유담에서 출발하여 두류암, 청이당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음.
지금은 부도 1기 만이 절터였음을 얘기해 주고 있음.
청이당 터
과거 천왕봉에 이르는 길목으로 당집이었을 것으로 추정 됨.
쑥밭재
위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 함. 현재는 샘터 삼거리(청이당 터)에서 진주 독바위로 가는 도중에 우측으로
내려가는 뚜렷한 갈림길(조개골 첫번째 철모 이정표로 내려감)을 말하는데, 샘터 삼거리가 쑥밭재가
아니겠냐는 의견도 많음. 옛날 마천 사람들이 윗새재를 거쳐 덕산에 가는 주요 통로였음.
윗쑥밭재, 아래쑥밭재로 구분되나 현재는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음.
어원은 숙박을 했던 곳이란 설과 쑥이 많았다는 설, 어떤 현상이나 기세가 차차 줄어들다란 의미의
'숙지다'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음. 즉 숙진 곳에 위치한 고개.
진주 독바위
남쪽 지방 방언으로 돌을 독이라 부르는데 돌바위가 됨. 또한 항아리(남도에서는 독아지, 독이라 부름)를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 마지막으로 한자의 대머리 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가 미약 함.
상내봉
향로봉에서 음운 변화를 일으켜 상내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함. 벽송사 능선 상에 있는 봉으로서 예전
에는 현재의 상내봉 삼거리(새봉, 벽송사, 함양독바위 갈림길)를 상내봉이라 불렀음. 바로 곁에 조망바위
가 있으며 왕등재와 왕산이 가까이 잡힘.
안락문
전에는 단순한 석문에 불과했는데 몇년 전 누군가 안락문이라 새기고 붉은 페인트칠까지 함.
함양 독바위
지형도에는 노장대로 표기되어 있고, 함양에서 만든 이정표에도 노장대로 소개 함. 하지만 실제 노장대
는 좀 더 아래쪽에 있어 수정이 필요한 상황 임. 조선시대에는 독녀암이라 불리기도 했음. 노장대 전망
대란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바라보면 다섯 손가락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음. 또한 전망대에서는
상내봉의 부처바위(견불동이란 명칭이 부처바위를 가장 잘 볼수 있는 동네에서 유래)를 조망할 수 있음.
선녀굴
빨치산의 아지트로서 사철 샘물이 솟아 천혜의 요새였음. 선녀굴에서 이름붙여 송대계곡을 선녀골이라
부름.
기타
함양 독바위 주변은 영험한 지형 탓인지 옛날 부터 암자와 당집이 많았다고 전해짐. 조선시대 점필재
김 종직 선생의 글에서도 주변의 많은 암자와 바위를 열거하고 있음.
화암, 지장사, 환희대, 선열암, 묘정암, 신열암, 독녀암, 고열암, 의론대, 삼반석, 향로봉, 미타봉 등등
최근 두류록 탐구팀이 옛길을 조명해나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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