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신록에 초대받은 사람들

-언제: 2008.5.4
-어디를: 지리산 주 능선을 거닐며
-누구와: 우렁각시. 사니조아


함께한 사람:사니조아(좌)우렁각시님/사진 아래: 화엄사골
5월은 푸르다.
산과 들도 푸르고 내 마음도 덕분에 푸르다.
이 푸르름의 정기를 받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희망은 나이를 초월한다.
3일중 하루쯤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을 찾기로 하였다.
요즈음 하루가 다르게 새 생명으로 채워져 가는 들판을 달린다.
엊그제만 하여도 헐벗은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의 군상들이 똑같아 보였는데
이제 저마다 다른 모양의 빛깔로 꽃을 피우고 잎이 돋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가?



돼지령에서 왕시루봉과 피아골을 바라본다.
성삼재를 향하는 차 안에서 밖을 내다 봤다.
온 산하가 질리도록 짙어지는 녹색의 바다에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초록의 단조로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고도를 올리면 오릴수록 푸르름과 멀어져 간 곳이 또한 지리산이다.
그만큼 순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자연의 섭리를 우리는 왜 터득하고 있지 못하는고……



노루목에서 조망
오랜만에 성삼재 이 길을 걷는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쉽게 성삼재까지 올라왔다만
노고단을 향하는 길에서 또 한번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으며 했는데 심한 먼지를 일으키면서
그 많은 자연석은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도로를 까부수고 난리법석이다.
중산리에서와 같이 혹시 이곳에서도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을까 겁부터 난다.


얼레지와 연등골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을
‘아니, 뉘신가’
‘청산님 아니세요’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산친구들.
어디에서 많이 뵌 분이다.
마침, 이곳까지 달려오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마냥 반겨주는 사람
우렁각시님과 사니조아님 이시다.
언제부터 함께 산행하고 싶은 사람중의 한 사람 조아님을 만나 더 없이 기뻤다.
비박짐을 챙기고 나서는 두 분을 보니 내 배낭은 초라하게 보였다.
산행하는 사람들 모두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거든다.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면서 어깨 끈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노고단에서 반야를
올 봄 유난히도 요란스러웠던 꽃 잔치에 언제나 자신은 소외되었다.
황금연휴 중 하루라도 어디를 다녀와야 생활의 충전이 되지 않을까 해서
카메라 가방을 들고 유유자적 야생화나 찍으러 지리산으로 왔는데
금상첨화라 할까 야생화와 산 친구들까지……
그들은 비박짐이 무거워 빨리 걷지 못해서 좋고 나는 사진 찍으면서 여유 있게
산행 할 수 있어 좋았다.



노고단에서 만난 처녀치마와 개별꽃
주 능선 곳곳에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나뭇잎을 이불 삼아 덮고 따뜻하게 지냈던 부지런한 족두리풀인데
이곳 지리산 1500 고도에서는 이제야 기지개를 펴고 있구나.
땅에 엎드려서 보아야 할 정도로 작은 야생화인 개별꽃과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허리에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바람난 봄처녀가 엉덩이를 흔들며 요염하게 눈웃음치듯 바람결에 살랑거리고 있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넋이 나가 끌려가듯 우리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 녀석의 이름은 현호색
잎의 생긴 모양에 따라 성이 다르게 나온다는 조아님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다.



족두리풀과 현호색
올 봄 진달래 꽃구경을 하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이곳 능선에서야 볼 수 있었다.
아직은 때이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윽고 가다 쉬 다를 반복하다가
고도 1500 이하에서 펼쳐지는 연녹색의 향연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세상의 모든 색이 사라지고 무지개 색깔 중 한가지만 선택하라면
나는 무슨 색을 선택할까 하고 말이다.
젊음을 대표하는 초록이라고 말하려다가 내 옆 진달래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고 만다.

삼도봉 내려 오면서 목통골을

화개재에서 뱀사골을

토끼봉 현재의 모습
우리네 사는 이야기와 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연하천까지 왔었다.
이곳에서 소박한 점심상을 차리고 각자의 위치로 쪼개져야 한다.
나는 왔던 길 다시 되돌아 가면서 오늘 산행을 되 짚어 본다.


토끼봉의 진달래

연하천 가는길에서 산태골을 바라보며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고 한 피천득 선생의 글귀가 생각난다.
산을 좋아한 뒤로부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만남 중에서 산과 인연으로의 만남을 빼 놓을 수 없다.
예정된 만남과 우연한 만남이 있었지만
예정된 만남은 설렘과 기다림이 동반된 만남이어서 좋고
우연한 만남은 기쁨이 배가 되어서 좋다.
이런 산상에서의 만남 역시 모두가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다.
오늘도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산친구 두 분을 알게 되었다.
가식 없는 진실은 이곳 토끼봉에 피어 오르는 진달래처럼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가슴 한구석에 차지하고 있으리라
그 이름 우렁각시님과 사니조아님.

연하천에서 함께한 사람들

명선봉에서 바라 본 천왕

명선봉에서 왼골을
2008.5.4
청 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