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손에 잡힐 듯 영롱한 별을 헤는 시절이 그립다.
네온사인 조명과 매연에 찌든 도심의 하늘 아래 있지만
언제나 유년기 마음의 별은 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삶이라는 멍에를 안고 사는 나에게도……

-일시: 2008.9.6~7
-어디를: 장터목-제석봉-천왕봉
-누구와: 지리산 산 친구들


‘어때, 뽀다구 나는 거야’
‘나~ 참 나이 생각을 해야지’
‘내 나이가 어째서……아직도 산에서는 한 참 아래로 보던데.
그리고 나 보다 나이 든 사람도 많아’
泊 배낭을 챙겨 메고 거울을 보면서 아내와 주고 받는 내용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배낭을 꾸릴 때면 넣다 뺐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렌즈 선택을 하는데도 광각과 줌렌즈를 놓고 망설이다가 둘 다 모두를 챙긴다.
그것도 모자라 접사렌즈까지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날씨가 좋다가도 내가 산에만 가면 비가 온다.
아침 날씨는 의외로 괜찮았는데
산행을 시작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 한다.
졸지에 후줄 구리한 우중산행을 하게 되었다.
가다 쉬 다를 반복 하다가 홈 바위 아래 적당한 곳에서 점심상을 폈다.


행여 지리산 별 헤는 밤을 맞이 할 수 있을까?
초저녁부터 노심초사 하면서 저녁을 맞는다.
바로 옆 엊그제 북알프스 산행을 한 부경 산악 팀들과 조우를 한다.
5월에 함께한 **조아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반갑기도 하다.
마시지 못하는 술이지만 인사치레를 하고 왔다.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밤 하늘을 올려다 본다.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추억을 찾기 위해
무언가에 끌리듯 어스무리한 바위 한 켠에 앉았다.
비 내린 초가을의 밤공기는 싸하게 나를 휘감았고
올려다 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빛나는 무수한 별들……


내 언젠가 별을 헤는 밤이 있었던가
갑자기 밤하늘의 별 빛을 따라 유년시절의 별빛을 그리워 본다.
어릴 때 큰 누님의 팔베개를 배고 뜰 방 앞 평상에 누워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을 때 왜 그렇게 영롱하고 초롱 하였는지.
아~ 그 여름 밤의 기억의 파편들이 꼬리를 몰고 이곳 지리산까지 전해온다.


한 참을 소근거리며 우리네 살아가는 인생과 사랑이야기도 나눴다.
어느 누구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차피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로서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온다.
사랑하는 가족이야기와 앞으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떠 올리면서
슬프다고 한잔 기쁘다고 한잔을 하는 사이에 지리산의 밤은 깊어만 간다.
밤 하늘의 별은 초저녁과는 판이하게 물을 퍼 붓듯
하늘 세상에 별 꽃을 피워 물고 있지만 내일을 위해 침낭으로 몸을 숨긴다.



‘낼 아침은 설마 일출을 볼 수 있겠지’
새벽 3시부터 잠을 설치다가 5시 반에 텐트를 차고 나왔다.
어둠을 뚫고 산길을 가다가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적당한 곳에서 새벽을 홀로 맞는다.
간 밤에 숨었던 산릉들이 산 그리 메를 그리기 시작한다.
산릉 위로 가로지르는 잿빛의 수평선은 천지를 가르고 있었다.
태양의 주홍빛과 어우러지는 잿빛의 조화가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구나
그 아래 까망으로 접목된 수림들과 야생화는 색조를 드러내 놓고 있었고
벌써 여명은 이미 지상의 것들을 속속들이 드러냈다.
천왕봉의 주름진 굴곡도 후벼 파낸 듯 선명하게 아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배낭을 꾸리고 그 자리를 떴다.
얼마의 거리를 지났을까? 벌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잠시 장터목의 갈색 탁자에 몸을 가눈다.
한참을 노닐다가 제석봉을 오른다.
언제나 이맘때면 천상의 화원이 되는 제석봉이 그립다.
인간의 방화에 의해 그 오랜 세월을 버텨오면서도
파란 하늘과 풍우에 씻긴 동물의 뼈처럼 회색 빛으로 변해버린 고사목과
어우러진 주변의 야생화.
그 풍경 사이로 멀리 강물처럼 흘러가는 지리의 주능선과 반야봉의 모습이
가슴으로 잔잔하게 전해 온다.



힘들어도 힘들다 말할 수 없이 묵묵히 정상을 향한다.
덜어낼 것 다 덜어 내었는데도 배낭무게는 만만치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용하지 못할 렌즈까지 챙겨오는 我慾때문 이니라.
일행은 저~만치 가고 곧 정상에 도착하겠지만
차마 주변의 풍경을 놓칠 수 없어 내 가슴에 담고 카메라 앵글을 갖다 댄다.
잠시 후 천왕에 도착한다.
유키님의 말처럼 여왕개미의 성스런 결혼비행이었는데도 그렇게 보지 않았다.
주변의 날개미와 어우러진 우리네 흔적으로 오염된 아쉬운 천왕을 보면서
발 길을 돌린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이다’ 라는 것을 느낀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며
자신의 취미생활에 산을 찾는 게 더 이상 어떤 행복이 있을까?
오늘 이 시간도 내일이면 과거로 돌아 간다.
다시는 오지 못할 소중한 시간과 순간들이기에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과 함께하는 여러분들을 사랑하겠습니다.
함께하신 산 친구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2008.9.11
청산의 바람흔적 전 치 옥
http://blog.daum.net/jeon8204
지금 흐르는 곡은 La Playa의 '안개낀 밤의 데이트'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