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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山 戀歌

지리산 만복대 초설(初雪)과 상고대

by 청산전치옥 2011. 11. 27.

 

지리산 만복대 초설(初雪)과 상고대

 

 

 

 

 

-산행일: 2011. 11. 24

-어디로: 상위마을~ 묘봉치~ 만복대~ 다름재~ 엔골~ 상위마을

-누구랑: 둘이서(지상훈)

 

 

 

 

 

 

 

예전의 가을다운 깊숙한 맛을 보지 못하고

계절은 그렇게 흐르고 말았네요.

다가서는 겨울을 시기하듯

아직도 고도 낮은 지역에는 마지막 가을 끝을 붙잡고 맴돕니다.

 

머지않아 자고 나면 떠나는 나그네처럼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는 가을은

새 소식 같은 싸늘한 초설(初雪)이 나를 반깁니다.

 

이제 다시 맞이하는 설원의 계절에는

정녕 외로움을 다 지우고 떠나는 가을 눈물처럼

겨울은 그렇게 보내지 않겠노라고

초설(初雪)과 상고대가 춤추는 만복대 앞에서 다짐을 해 봅니다.

 

2011. 11. 24 만복대에서

 

 

 

 

 

 

 

엊그제만 하더라도 덥다고 그렇게 야단법석이더니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만 남겨두고

겨울을 알리는 바람이 윙윙거리며 지나는 행인들의 몸을 움 추리게 만듭니다.

해 년마다 이럴 때면 세월의 빠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흐르는 물과 지나가는 화살도 빠르다지만

세월이란 이 놈은 그 보다 빠른 지름길로 오더라는 우탁의 탄로라는 시조가 떠오릅니다.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세월에 대한 인간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좋은 시인데 나이 50줄에 들어서니 정말 빠르군요

 

 

 

 

 

 

 

오늘 산행은 지리산이다

아니, 난 팔영산인 줄 알고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요

함께한 상훈님이 겨울산행 모드로 다시 준비 하겠다며 완벽하게 재무장 하는군요

그렇게 해서 차가운 새벽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곳은 팔영산이 아닌 지리산입니다

만복대의 상고대를 생각했던 이유는 어제 날씨와 기상예보를 활용하고

구례에 도착하니 나의 예감 적중, 왕시루봉과 노고단이 하얗게 구름모자를 쓰고 있네요.

마음은 바빠지고 상위마을에 도착하니 고도 800이상부터 가을과 겨울의 공존입니다.

 

 

 

 

 

 

당동마을에서 성삼재까지 개방한다는 프랑카드가 산동입구에 걸려 펄럭입니다

이곳 상위마을에서 묘봉치까지도 함께 이정표까지 예쁘게 잘 만들어 놨네요

그럼 묘봉치까지만 올라가고 그 다음 만복대까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뜻인가 ㅎㅎ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네요.

차가운 바깥바람을 맞으며 산행을 시작 합니다.

이보다 더 찬 겨울에도 산행을 했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춥게 느껴져 옵니다.

 

 

 

 

 

 

 

누구나 그렇듯 첫눈이 내린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 춘설(春雪)과 초설(初雪)을 또 다른 시각으로 봐야겠지요.

初雪(초설)이란, 세상만물이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내리니

기대하던 손님이 오신 것처럼 기쁘기까지 한 이유는 나만의 생각일까 싶네요.

그 기쁜 마음 안고 만복대 初雪(초설)과 상고대를 맞이하러 갑니다.

 

 

 

 

 

 

 

이정표도 깨끗이 단장되고 곳곳에 페인트로 화살표 표시를 해 놨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차곡차곡 쌓인 낙엽이 발목까지 차 오르고

고도를 높이자 산죽 사이로 내려 앉은 하얀 눈이 바지가랑이를 타고 내려오다가

이내 속살을 파고 드는 차가움에 움칫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높이의 눈이라 발에 닿는 감촉부터 다르네요

 

 

 

 

 

 

 

되도록이면 지체하여 만복대에 닿기를 원합니다.

날씨가 생각보다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검은 구름이 능선을 휘감고 돌고 있습니다.

북풍에서 습한 공기를 실어다 내 놓으면서 상고대는 더욱 더 여물어져 가고

깊은 숨 몇 번을 헐떡이며 올라 본 묘봉치 전망대에서 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봅니다.

이윽고 아무도 흔적 없는 고운 길에 내 발자국을 남기며 만복대를 오릅니다.

 

 

 

 

 

 

 

~ 정말 팔영산 아닌 만복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함께한 상훈님이 몇 번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자기 혼자 보기에 넘 아름답다며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아무리 잘 찍는다지만 눈으로 보는 것 보다 못하다며 계속 감탄사의 연발입니다

묘봉치에서 만복대까지 1시간 40분만의 여유를 부리면서 오른다

사진 찍고 생각하고 노래하고 즐기면서 산행의 여유로움 속에서 날씨는 파란 하늘을 내민다

이왕지사 이곳 만복대 한 켠에 앉아 이른 점심상까지 펼쳐보면서 만복대 찬가를 읊는다.

 

 

 

 

 

 

 

가을이나 눈 쌓인 겨울 그리고 생명이 돋아나는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왠지 산야가 쓸쓸해 보이고 고독을 느끼게 하는 초겨울 산야를 좋아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이런 밋밋한 초겨울의 산행이 그렇게 느껴졌는데

역시 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듯이

초겨울 산야는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여백 미를 드러내며

여유롭고 은은한 동양화 기풍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고독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오늘처럼 때아닌 초설(初雪)

상고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 좋네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없고 이제 온화한 날씨로 바뀌고 있다.

나무들은 솜이불과 상고대가 무거운 듯 가지를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렸다.

정상에서 본 순백의 상고대는 낮은 고도의 잿빛과 조화를 이룬 완성한 한 폭의 수묵화 같다.

그래서 눈을 기다리는 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램인 모양이네요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 고도를 다시 낮추고 상위마을을 향한 원점회귀로 돌아 갑니다.

이곳 만복대에 오면 소홀함이 없이 항상 뭔가를 보여줬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네요.

더군다나 가슴에 묻어둔 삶의 지친 흔적들을 이곳에 토해내면서

마음은 이미 카타르시스 되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우리네 인생 언젠가 바람처럼 떠나겠지만 그 때를 위해 삶의 조각들을 살피고 고뇌할 수 있는 곳

이게 바로 내가 산을 찾은 이유이자 변명입니다.

초설과 상고대 터널을 걸으면서 삶의 이야기와 생각에 잠기다 보니 벌써 상위마을에 닿습니다.

함께 해주신 상훈님에게 감사하며 산행기를 마칩니다.

 

 

 

2011. 11. 24

청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