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무속 (
백무동에 대해 몇 말씀 전할까 합니다.
중산리와 더불어 천왕봉 산행의 제일 기점인 백무동(白武洞)은 마을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아무래도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100명의
무당과 관련된 설화가 그럴싸해 보입니다.
'법우화상이 맑은 날임에도 계곡에 누런 황톳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이상히 여겨
올라가보니 천왕봉의 마고할미가 오줌을 누고 있어 천생배필임을 알고 결혼하여
99명의 무당 딸을 낳아서 전국에 퍼뜨렸는데, 마고 할미 포함 100명의 무당이
배출된 곳'이라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백무동은 무속인으로 들끓었습니다.
산행 초창기에 하동바위를 거쳐 지리산에 들면 등산로 주변 바위 아래에는
어김없이 촛불이 밝혀지고, 가지런히 놓여지거나 버려진 음식이 부지기수였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다행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무속행위를 단속하고 나서부터 화재의
위험과 음식물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행해지던 무속행위가 밖으로 쫓겨나면서 산자락 주변에 수많은
굿당이 생겨납니다. 대표적인 곳으로 인월에서 산내로 향하다 보면 장재골 입구의
삼신암(돌탑)과 뱀사골 매표소 전 인공폭포 안쪽의 굿당 등이 그것입니다.
그 외에 거림쪽이나 중산리 방향에도 자리 좋은 곳에 어김없이 굿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마천의 송알삼거리(휴양림과 백무동 갈림길)에서
백무동으로 들어오는 길에 우측 오공산 자락에 제비 집처럼 매달린 석굴입니다.
옛날, 비만 내리면 도로가 질척거려 하루에 한 두 번 밖에 없는 버스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던 시절에는 바위절벽아래에 움막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번듯한 기와집이 까마득한 하늘에 날아갈 듯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리산의 3대 무속 성소라고 하면 '성모사당, 백무동, 용유담'을 꼽는다고 합니다.
천왕봉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석모석상은 이런저런 세월 끝에 중산리 버스
주차장 위에서 길이 나뉘는 천왕사에 자리를 잡았고, 아직도 기도객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지리산을 유람한는 옛 선현들의 필수탐방 장소였던 송전리(칠선계곡으로 들어가는 의탄교 아래)에 있는
비경 용유담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와 너무 멀어져 접근에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와 종교가 발전해가는 시대에도 무속은 더욱 큰 힘으로 작용하나 봅니다.
지리산은 단지 산행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주변 산자락에 펼쳐진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더욱 풍부해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_^) 지다람 / 윤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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