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담아내는 대소골의 小景
-일시: 2008.10.18
-어디를: 지리산 대소골
-누구와: 화희님. 지리산꾼님. 나

그래 이제 홀로 산행을 하는 거야
가을을 향유하고픈 남자에게도 스스로 고독을 맞이하고 싶었다.
가을 낙엽이 눈처럼 쌓인 이른 아침부터 우수에 젖어 들게 하고 싶었다.
지난 늦여름 반야봉을 홀로 찾았을 때 자신과도 약속했었잖아
‘내 다시 찾아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나간 세월의 번민과 번뇌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다’ 고
금요일 천안연수를 다녀온 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오자마자 산에 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도시락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예전에 했던 그대로 헝그리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일단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례로 가기로 하였다.
갑자기 저녁 밤근무를 해야 하는 중압감에 가까운 반야근처를 다녀올까 하고,
고구마 2개와 사과2개 그리고 물 하나 혹시 몰라 김밥 한 덩이 달랑 들고 나섰다.
산행 중에 어디로 튈지 몰라 애마를 구례읍 한 켠에 주차를 한다.
일단 성삼재까지 가기로 하고 표를 구하고 아침 겸으로 오뎅 2꼬지를 입에 물고 나섰다.

“어머~ 청산님 아니세요”
“아니, 왠 일이야” 하면서도 ‘산 꾼이 왠 일이냐고 산에 가겠지’
우연찮게 만나는 지리산꾼인 김정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함께할 태세로 덤벼드는 모습에 그저 황당할 수 밖에……
어디를 가냐고 다그치는 그녀에게 ‘나, 그냥 주능선을 걸어 보려고……’
이래서 우리는 한 패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산행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도 있고 하여서
그래서 오늘도 홀로 산행을 해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늘도 예외일 수 없듯이 천은사 지킴이는 여지없이 문 앞을 지키고
성삼재를 오른 뒤 북 사면의 단풍을 바라보니 오늘 예감이 예사롭지 않구나
더군다나 노고단에서 또 한 사람의 미모의 여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니
‘나 오늘 대박 터진 겁니다’
양 옆으로 미모의 여인을 앞세우고 산행을 한다.
그것도 낙엽 쌓인 지리능선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울 마눌 알면 시기를 할 텐데 ㅋㅋ’

성삼재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9시다.
한번씩 올 때마다 변하는 풍경들이 사뭇 다르다.
지난 8월에 올 때 한창 도로공사를 하더니 넓고 잘 다듬어져 있었다지만
산길이란 다듬지 않은 흙 길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지리산 천왕봉까지 인위적인 길을 만들라나.
노고단 산장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닉도 얼굴만큼이나 예쁜 ‘화희’님 이시단다.
이른 새벽에 도착하여 한 숨을 부치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우리를 기다리셨다니. 원
첫인상인데도 어디에서 많이 본 느낌 그대로이다.
세월의 애잔한 흔적을 보냈을 것인데도 우리가 생각한 그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고
오히려 맑고 순수함이 베어 나오는 그 모습에 내가 오히려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사진 찍는 분, 존 말할 때 나오세요” 하면서 금방이라도 덤벼들 기세다.
노고단 중턱에는 포트레인과 덤프가 오가며 군 시설물 철거 중이며
정상에는 새끼줄 쳐놓고 전기톱 들이대며 요란 범석을 떨면서 공사 중이다.
참! 나이도 한참 어린 녀석이 공단이라는 완장을 둘러차고 그곳을 지나는
산 객들에게 여지없이 내 뱉는 말 한마디다. 그럴 거라면 뭐 하러 개방을 하는지 원~
이곳에 올라와 가을풍경을 보니 좋다만 마음 한편에 씁쓸한 뒤 맛을 남기며 떠난다.
아까부터 카메라 조짐이 이상하다 싶은데 또 말썽을 피운다.
지난 산행 때도 문제를 일으켜 어렵게 복구를 하였는데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다.
혹시 집에 가면 복구할 수 있을까 싶어 그냥 샷터를 누르기로 하였다.
그때 카메라 바꿨어야 하는데
업그레이드 한다 하면서 부족한 돈을 채울 요량으로 주식에 투자 한 내가 바보지.
아~ 이제 언제 바꿀까 D700

주 능선에 아직도 하늘거리는 구절초가 게으른 벌들을 유혹한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 게으른 벌들은 무엇을 찾겠다고 바둥대는지
그들도 곧 북에서 부는 찬바람에 마음이 바쁠 텐데
한동안 좋은 시절 무엇을 하였는고
임걸령 샘터를 지나 노루목 아래에서 점심상을 폈다.
나의 초라한 점심상에 비해 두 산님의 먹거리는 생각보다 푸짐한 상이었다.
더군다나 이틀 동안 산행 양식을 이곳에 다 내놓은 듯한 푸짐한 먹거리
두 여성 산님께 잘 먹었다는 말씀을 산행기를 통해서 전 합니다.

“누가 이런 세상을 알까요”
계곡 아래를 따라 내려 오면서 화희님께서 건네는 말 한마디다.
칙칙한 도시의 공기를 들이키며 살아왔던 그녀가 보는 대소골의 小景(소경)이
충격과 다름없는 신비스런 별천지로 보였는지 모른다.
‘신선 놀음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지요.
무릉도원의 행복을 몰래 훔쳐온 도둑이 우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체포될 수 없는 당당한 도둑이었다.
계곡 사이로 빛이 들면서 노랑과 붉은 단풍은 더욱더 고운 자태를 드리운다.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진 단풍은 눈부신 白雪花(백설화)처럼 햇볕을 빨아 드리고 있었다.

蕭瑟(소슬) 찬바람에 낙엽이 쏟아진다.
가을 지리산에 띄우는 마지막 사랑의 연서처럼
반야에서 무등타고 대소골 계곡 아래까지 내려와 퍼진 사랑의 연서인 낙엽은
바람에 부추기면서 휴지처럼 나 뒹군다.
노랑과 빨강 그리고 미쳐 여물다 시들어버린 낙엽은 불에 구운 듯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잠시 바람은 멎었지만 우리의 화음에 따라 넘실대는 낙엽은 껑충껑충 춤을 춘다.
한 잎 두 잎 굴러진 낙엽은 이골 대소골이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것처럼.

가을이오면 스산하게 뒹구는 낙엽의 슬픔보다 더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낙엽이 물들은 모습과 청명한 하늘거림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낙엽을 손에 잡아본다.
내 손마디가 순식간에 벌겋게 물들어버린 것 같았다.
자연의 순리 앞에 갑자기 숙연해지는 나는
천만다행으로 아직 내 감정이 삭막하게 말라붙은 콘크리트 가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이 가을 더욱 센티메탈해지는 내 가슴이 황량하기만 한 이유는
나도 어쩔 수 없이 가을타는 가을남자인가 보다.
잠시 고도를 낮추면서 마음이 바빠져 온다.
4시40분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잡아 타야 저녁근무에 지장이 없을 텐데……
이미 늦어진 것 같아 또 여유를 부려본다.
지금쯤 우렁차게 흘러야 할 대소골의 풍경은 오 간데 없고
실개천으로 변모된 흐르는 물소리에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잠시 멈춘다.
가을 물 속이 유리알처럼 맑다.
그 물결 속에 투영된 자신의 내면 세계를 바라 본다.

마침 심원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로 갈아타고 성삼재를 향했다.
버스 뒤 켠에 앉아 서산에 머물던 해를 바라본다.
각박한 현실,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공통분모인 ‘산’을 통해
세상과 통하고 낯선 사람과 통하는 소통의 장인 산에서
‘너와 나’가 ‘우리’가 될 수 있고 같은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땀 내음으로 범벅이 된 윗도리 주머니에서 점심 때 건네준 검은땅콩을 입에 갖다 댄다.
땅콩의 고소함이 한참을 입안에 머물다 갔지만 왠지 허전함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 나도 가을을 타는 남자인가?
2008.10.21
청산 전치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