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날 반야에서 반야에서 바라 본 일출>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每年 그러했듯이 또 한번 어수선했던 지난날을 다시 뒤 돌아보면서 좀더 뜻있는 삶을 위해 꿈꾸고 계획해 보는 여유로운 산행 送年山行의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미래에 대하 불안과 기대가 혼재되어 마음은 벌써 지리산에 가 있다. 며칠 전부터 함께하기로 한 산 친구들도 갑작스런 스캐줄 변경에 의하여 오늘 송년산행은 나 홀로 산행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잘됐는지도 모른다. 이런 날은 나 홀로 산행을 하면서 수 많은 단어들을 토해내면서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홀로 산행의 참 맛을 찾을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 ![]() 섣달 그믐을 나 혼자 보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집을 나선다. 성삼재의 많은 차량과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핸들을 돌려 피아골 직전마을로 들어서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간다. 썰렁한 분위기의 주변 식당은 명절 맞은 상가처럼 어느 곳에서도 한끼를 보충하기가 어려웠다. 되는대로 해 달라는 나의 부탁에 마지못해 백반 한 그릇에 나물과 석화국이 전부였다. 밥을 먹으면서 정통코스를 통해 반야를 갈려면 함선생님께 인사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페트병 소주가 없어 병 소주 몇 개를 집어넣으니 허리가 휜다. ![]() ![]() <노루목에서 바라 본 반야봉과 남부능선> 예상은 하였지만 갈수록 짓누르는 배낭무게가 발길을 부여 잡는다. 표고막터를 지나 숨을 헐떡이면서 올라가는 자신을 바라다보면서 내려오는 산 객들께서 한마디씩 거든다. ‘먼~짐을 고렇게 많이 싸 갖고 다니십니까’ ‘병술년 버려야 할 마음의 진 빚 모두를 갖고 갑니다’ 라고 내 마음 속으로 답을 보낸다 ![]() <반야의 전나무와 일출> 지난 봄과 가을에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이곳 구계곡 폭포에서 한참을 생각했었지. 앙증맞은 가지에 움이 뜨고 히어리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할 무렵과 엊그제 늦가을이 다가가도록 단풍이 들지 않는다며 투정거리던 사람들 이제는 그 누구도 쉽게 찾지 않은 이곳이 적막감을 더하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나 뒹구는 나뭇잎은 殘雪에 파묻혀 추위를 견디지 못한 양 그렇게 부르르 떨고 있었고 그렇게 화려했던 여름날의 열정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월에 삭은 노인의 주름살처럼 회백색으로 오롯이 서 있는 나무만이 삭막한 계곡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 ![]() <직전마을 가는 길에서 만난 젊은 산친구인 무골호인(좌)과 모스님>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계절의 순환과정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변화와 이렇게 닮았는고…… 나는 지금 人生四界에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자연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만 우리 인생은 누구나 꼭 그렇지 못할진 데…… 어떤 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계절은 그렇게 빚 바래가는 잎사귀처럼 가고 있는데…… ![]() ![]() <반야의 낙조는 기대 이하였다> 적막감이 흐르는 피아골산장에 도착하자마자 함선생님을 찾았다 어느 누구의 외인도 허용하시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뜻인지 몰라도 밖으로 통하는 모든 문은 굳게 잠겨있었으나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선생님께서는 분명 계신 것 같았다. 여름에 뵐 때보다 더 건강해 보이셨고 잠시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는 선생님의 권유를 마다하고 건강하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반야를 향해 급히 올라 갑니다. ![]() ![]() 그렇다고 국내 변산의 낙조 역시도 보지를 못했지만 지리10경중의 하나인 반야의 낙조를 언제부터 꿈꾸고 있었다. 반야의 落照(낙조)를 보기 위해 5시 이내에 여유롭게 도착하리라는 생각은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주능선에 도착하니 4시를 넘긴 시간이 되다 보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도중에 광주에서 홀로 오신 여성 산님과의 대화에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어 좋았고 임걸령에서 잠시 조망으로 보아 낙조의 모습은 무난하리라는 희망은 있어 좋았다. ![]() ![]() 매몰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비켜 갈 수 없었다. 잠시 그럴듯하게 넘어가는 해넘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마침 큰 행운을 얻는 듯 하였으나 잠시 자신의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수줍은 모습을 구름 속으로 파 묻고 만다. 어느새 모두가 자신을 남겨두고 자신들의 안식처를 찾아 떠나고 없었다. 어디로 갈까 한참을 주변을 방황하다가 정상석 넘어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폈다. 대충 자리를 꾸려놓고 아무도 없는 쓰러진 반야의 돌탑에 나 홀로 칼 바람을 피하며 마지막 남은 구름 속의 노을을 바라본다. 2006년 해는 이미 구름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 흔적은 높디높은 하늘에 자신을 불사르는 입자를 마지막까지 흩뿌리고 있었다. 2006년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허전함을 주체 할 수가 없다. 갑자기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떠 오른다. “인생은 낮 선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과 같다” 아~듀 2006년이여……. ![]() <2006년 아쉬운 한해를 보내고......> 시린 손을 비벼가며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끊였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들이키면서 잠시 여유로움을 찾는다. 그러나 그 여유로움도 잠시 칼 바람을 막을 수 없어 이내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저녁 7시 30분인데 길고 긴 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행이 계속 밀려 들어오는 문자메세지를 받아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또는 통화를 하는 사이 9시를 훨씬 넘기고 있었다. 이웃마을에서는 고기 굽는 소리와 이슬 돌리는 소리에 군침만 흘리다가 문득 자신이 소외된 느낌이 다가와 나 혼자만이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느끼면서 갖고 온 비스캣만 축내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수 십 번의 모래성을 쌓고 또 쌓는 과정에서 어느덧 어둠이 걷히기 시작 한다. ![]() ![]() <잠시 후 구름 속에 가려버린 일출/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2007年 새해가 밝았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다시 출발선에 들어섰다. 왜 자신은 곧추선 겨울 한복판인 지리의 반야봉에서 오들오들 시린 가슴을 움 추리며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걸까. 시작이란 결국 준비의 속성을 갖고 있는데 丙戌年 한해 모든걸 다 비워내고 떠나 보냈는데도 무엇이 아쉬워 이곳 반야에서 빈자리를 지키며 다시 채울 준비를 하는지…… 여명이 동트기 전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구름 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난밤 저들은 무슨 생각으로 수 많은 성을 쌓았는지 (무너진 반야의 돌탑이나 쌓을 것이지……)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는 저마다 작은 소망을 빌고 있겠지 ![]() ![]() <행여 일출을 놓칠까 하며 반야를 오르는 사람/아쉬운 일출> 한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비켜났다. 일몰과 일출을 그것도 몇 번이 아닌 한번의 등정으로 일거양득을 할 수 있다는 욕심이었지만 결코 실망은 하지 않는다. 썰물처럼 밀려난 사람들 속에 자신도 반야의 정상석을 뒤로할 때 오후에 근무라는 현실을 알고 발걸음이 빨라졌고 불무장등 능선을 따라 직전마을로 향하는 하산 길에서 젊은 산친구들을 만났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러했듯이 무심코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십중팔구는 이 길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일인데 그들도 이 길로 잘못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나의 닉을 단번에 알아보고 무척 반가워 하는 사이 무사히 직전마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 숨가쁘게 살아온 일년이기에 만족과 보람을 느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시간이 아쉬움과 후회로 원망이 가득한 한 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왜 그럴까 왜 이리 허전하고 답답하기만 할까?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아직도 맘을 비우는 방법을 모르고 있으니, 그래 다가오는 2007년 새해 떠오르는 태양 앞에 마음을 비우는 해로 만들어 보자 비우고 또 비워서 가볍고 깨끗해진 마음으로 살아야지 가까운 시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 <순천만의 낙조를 한컷 했습니다> 2007年 초 하루 지리산 반야봉에서 청 산 전 치 옥 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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