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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세월은 그렇게 말없이 가고 있는데……

by 청산전치옥 2006. 11. 30.


세월은 그렇게 말없이 가고 있는데……

-언제: 2006.11.26.

-어디를: 지리산 서북능선을

-누구와:지다람.서북능선.원시인.토목.YD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80년대 솔개트리오 멤버였던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요절한

김광석의 ‘서른 즈음의’ 노랫말 가사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철부지마냥 감성에 폭 빠졌던 10대 때 순간과

좌충우돌 부대끼며 자신감으로 가득 찬 20대의 욕망은 사라지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나이 서른에 와서는 삶의 일정을 피해가는 듯

40대에 들어서는 지난날 아픔을 생각하면서 또 다른 아픔을 피해갑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오는 세월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듯이

나에게도 이제 50이라는 숫자를 안고 살아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나는 희한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내 살아 온 여백 속에서 스스로를 反芻(반추)하는 노래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동아일보에 연재된 기획 연재물인 ‘대한민국 50대, 2006년의 초상'을

읽고 과연 우리의 세대 50대를 뒤 돌아 봅니다.

유신세대의 嫡子(적자)이자 개발시대의 주역이었던 우리세대인 50대

‘가교세대. 와인세대. 뉴실버세대…… 하는 요란한 세대의 호칭을 안고 사는

50대지만 그 암흑기에도 자신의 장발을 가위질 당하면서도 그 시대의 흐름을

이겨 자유의 깃발을 올린 우리의 세대 50입니다.

그런 세대가 이제는 삶의 불안정 속에서 아무도 기울려 주지 않은 외로움과

맞닥뜨리고 있어 그 시절의 흐른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반추하는 것 같습니다.
 


 

 



 
“오찌 누레바”

비에 젖은 낙엽이라는 일본어 입니다.

일본에서는 50대 회사를 명퇴한 사람들을 일컬어 불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엊그제 이틀간 계속 겨울을 알리는 겨울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셨습니다.

마지막 가을을 알리는 가을 단풍이 결국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鋪道(포도)위에

뒹굴더니 젖은 낙엽은 찰삭 달라붙어 좀처럼 쓸어도 쓸리지 않습니다.

‘비에 젖은 낙엽’

무성했던 낙엽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비워주고 나목으로

버티고 있는 나무가 어찌 우리의 인생과 같지 않으리오.

아마도 일본의 연인들은 정년을 하여 갈 곳 없는 남편들을 무심하게 버리는

습성(?) 때문일까요? 그래서 비에 젖은 낙엽처럼 부인에게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런 인생이 어찌 우리라고 없겠습니까마는……
 


 



 
<비박의 즐거움을 누가 아리오>

만남의 인연 속에서 또 다시 사람들을 만납니다.

산이 좋아 산에서 만남은 시간의 흐름이 아쉬울 뿐입니다.

전나무 사이로 비춰주는 초승달의 운치를 거두고라도

수 많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내게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무아의 경지가

아니더라도 솔솔 한 바람소리 들으며 쪼르륵 따르는 술 잔에서

우리의 산 친구들의 우정은 더욱더 짙은 포도주의 빛깔 보다 더 곱습니다
 


 



 
진하게 우러나오는 곱창 전골의 맛을 누가 알리오마는

미각으로 혀끝에 와 닿는 화싸한 홍어회의 맛과 먹물 튕기는 진수의 맛은

없지만 적당히 새콤하게 맞춰진 초장에 낙지발을 푹 담가 한 입에 틀어넣고

술 한잔 기울이니 이 세상이 내 것이오

이 지리산이 우리 엄니 품이로다.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것인가?

이미 자정이 가까워 오건마는 누구의 선창도 없이 스스로 나오는 한 구절의

콧노래가 조용한 산사의 사면을 타고 흐른다.

이윽고 능선 넘어 저 멀리 남원시에서 비춰주는 불 빛을 바라보며

자정을 향한 시간에 고리봉 정상에 서 봅니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동심의 세계에서 흐느적거리다가 살며시 침낭 속으로

몸을 숨기고 그렇게 밤을 지척이다가

어느새 아름다운 꿈 속에서 나를 보았습니다.

수 많은 생각과 생각 속에서 침낭 속의 대화는 끊어질 줄 몰랐습니다.
 
 

‘총 기상’

아랫마을에서 울려 퍼진 ‘천년소옹’ 아우님의 기상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침낭 속에서 알을 품고 있듯이 좀처럼 나오기가 싫습니다.

맛있게 우러나오는 아침 김치찌개의 맛을 누가 알겠는지요.

진수성찬이 필요합니까?

이런 곳에서 무슨 음식을 가리겠는지요.
 


 



 
갑자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 합니다.

내심 눈으로 변했으며 하는 기분이었지만 그럴 날씨는 아니올시다.

커다란 보따리 배낭을 지고

왔던 길 정령치를 향해 다시 갑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배낭으로 다시 꾸리고 가까운 능선을 향해 오릅니다.

약간의 오름 짓을 하는데도 모두가 힘겨워 합니다

아마도 간밤에 마셨던 이슬의 효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도를 높이며 능선에 닿자마자 모두가 한마디씩 탄성을 질러댑니다.

운무의 향연에 우뚝 솟아있는 반야봉이 마치 안개섬을 형성한 듯하고

성삼재에서 시작한 서북능선은 용의 꼬리를 뒤 흔드는 기분입니다.

한동안 펼쳐진 운무 쇼에 우리는 눈 멀어 갈 길을 잃어 헤맸습니다
 


 



며칠전에 운명을 달리한 만복대 젊은 처자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草露人生을 마감했단 말인가?

그렇게 야속하게 흐르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지 못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 모두 다 뒤로 한 채

모진 인연의 끈을 내 던진 당신은 야속한 사람.

산이 좋아

결국 지리산 반야를 바라보며 처절하게 쓰러져간 무정한 사람아

이제 어차피 우리 곁을 떠나간 님의 처연한 모습에

내 진솔하게 옷깃을 여미며 한마디 독백을 내 뱉습니다.

‘부디 아름다운 세상에서 영면 하시길……’
 


 



 
거리적 거리는 만복대 지능선을 따라 너울거리는 운무 속을 허우적

거리며 내려섭니다. 희미한 능선길은 이어질 듯 하다가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정령치를 향하는 도로에 닿는다

잠시, 언양골의 지계곡인 좌골의 들머리에 발을 내려 놓습니다.

수 많은 고로쇠 수액 파이프는 우리의 눈들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간간히 이어가는 지계곡은 아담한 폭포와 널따란 암반을 스쳐 지나면서

본 골과 합수점에서 점심상을 차립니다.
 


 



 
그렇게 많은 지리산 산행 중에 오늘과 같은 산행도 있구나.

시간이 더디게 가는 산행

또 다시 추적추적 비는 내리지만 누구 하나 먼저 가자는 얘기는 없습니다

오고 가는 술잔 속에 의미 있는 산사나이의 우정은 피어나고

피어나는 우리의 우정 속에 밝은 미래가 올 것 같습니다.

본 골의 산행이 어쩌면 지계곡 보다 더 초라함이 엿보입니다.

고도를 높이자 이내 다가오는 운무는 이제 우리의 머리 위를 맴돕니다

한 시간의 오름 짓 후에 닿는 곳이 정령치입니다.

오늘 함께하지 못한 청소산행에 스스로 우리가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주워 온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고 짧지만 의미 있는 카페산행을 마칩니다.

산행을 함께 해 주신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2006. 11.26

서북능선에서 청 산  전 치 옥 씀
 
 
<일정정리>
 
08:20 고리봉 개령암지
 
08:45 정령치
 
09:30 만복대
 
10:25 정령치 도로
 
10:35 언양골 지계곡 들머리
 
11:25~12:30 언양골 합수부(점심)
 
13:15 정령치(산행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