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암자 묘향대를 찾아서
-산행한 날: -어디를: 직전마을-반야봉-묘향대-직전마을
-함께한 사람들: K1님. K2님. 그리고 나.
옅은 잠 속으로 들리는 차 바퀴소리와 베란다 창 너머 “후드득. 또~옥 똑” 들리는 빗소리에 눈을 뜬다. 어둠이 거둬지지 않은 창 밖에는 분명 겨울 비를 재촉하고 있었다. ‘요즘 왜 이런지 몰러, 내가 산에 가려고 하면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려면 원 없이 쏟아져 겨울 가뭄을 해소 시키던가? 아니면 하얀 눈이라도 펑펑 쏟아져야지 겨울에 무슨 비야……’ 이른 새벽부터 궁시랑 거리면서 오늘 아침을 연다. 길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고 흐릿한 가로등 불빛에 내리는 빗줄기의 몸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늘 함께한 친구들을 불러놓고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는데 처음 산행하는 친구 역시 “겨울비가 오면 얼마나 오겠어요. 갑시다” 하면서 재촉한다. 더군다나 오늘 지리산 처음 입문하는 K님인데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도 지리산을 향해 달리는 애마의 차창에는 좀처럼 브러쉬 작동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들어 갑자기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 졌다. 올 겨울은 유난히 가뭄이 심해 지리산 山門(산문)도 다른 해에 비해 일찍 닫혀야 한다는데 고도를 올리면 그래도 눈이 내리겠지 하는 기대를 하면서 직전마을에 닿는다.
차창 밖에 내리는 겨울 비는 다행히 섬진에 와서야 멈춰 선다. 섬진 강가에 피어있는 안개 속에는 금방이라도 봄과 같이 아지랑이가 튀어 나올까 싶더니 저 편 너머 이랑 밭에는 봄의 준비를 위한 村老(촌로)의 발걸음이 부산스럽게 느껴져 온다. 아직도 강가 버드나무는 江風(강풍)의 겨울을 이기지 못해 못내 고개를 내밀지 못하건만 시절이 시간을 초월하는 올 겨울이 우습게 넘어 갈까 염려스럽기까지 한다. 겨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건만……
최근 함선생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심상치 않아 잠시 위로의 말씀이나 드리고 싶어 가까운 슈퍼에서 이슬 2병을 챙겨 든다. 반갑게 맞이 해줄 요량으로 급히 서둘러 왔건만 굳게 잠긴 문은 요동을 하지 않았다. 아마 최근에 심난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자리를 비우신 것 같기도 하다.
잠시 그 분의 손길이 닿는 곳곳을 둘러보며 회상에 잠긴다. 이곳 피아골을 지날 때면, 안을 한 번씩 들러보곤 했다. 맨 처음 내가 그 분에게 호된 신고식을 했던 기억과 3년 전 홀로 반야 산행 길에서 산장 바로 곁에 '무애막(無碍幕)이라는 간이 휴게소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지리산과 빨치산’ 과거와 현재의 지리산 그리고 앞으로 문명의 이기로 다가올 케이블카…… 지리산 역사를 귀동냥했던 일들이 이제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짙어 온다.
"죽어도 지리산에서 죽고 싶고, 산사람으로서 영광스럽게 산에서 죽고 싶다"는 평생을 지리산과 함께 해오신 분을 산에서 내쫓으려는 일련의 사건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입니까? 원칙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道義(도의)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함선생님께 산에서 내려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도 같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일인지. 자기들의 잇속만 챙기려 하지 말고, 지리산을 지키려 하는 마음도 챙겨야 할 것입니다.
22년간의 자신의 손때를 묻혀 아쉬움이 짙어진 피아골 산장을 떠나기가 힘든 것처럼 우리들도 그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몇 컷의 흔적을 남기며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도 1000을 넘기면서 간간히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산행 후 3시간 만에 임걸령 샘터에 닿는다. 처음 이 주능을 걸어 본다는 K님이 신기한 듯 주변 상세한 입간판에 한참을 머물더니 현재의 위치를 물어 오며 우측 불무장등의 엉덩이 모습을 보더니 “저 곳이 반야봉입니까” 하고 물어 온다. 우리가 올라야 할 반야봉은 짙은 비구름으로 덮여있어 보이지 않으니 그럴 수 밖에……
불무장등이 반야봉처럼 보입니까 ㅋㅋ
또 한번의 고도를 올리고 노루목에서 휴식을 취한다. 사실, 오늘 처음 산행하는 친구들이 어떻게 산행에 임해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 그래서 용수골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윽고 반야를 향해 오른다. 이제 고도를 한층 더 올리니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한다. 마음은 벌써 묘향암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지리산을 수 없이 다녔지만 최근에 갑자기 눈 오는 묘향암의 운치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허물어졌던 반야의 돌탑은 누가 지어놨는지 서서히 본 모습을 찾는 것 같았고 대구에서 오신 산님은 돌탑 옆에서 왠 라디오를 그렇게 크게 틀어 놓고 있는지 잠시 말을 걸었더니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 는 등 더 이상 지체 할 여유가 못되어 찝찔한 마음에 묘향암으로 내 달린다. 제발, 산에서만은 타인을 배려하며 자연을 벗 삼고 여유를 부렸으며 하는 마음인데 이런 제 마음이 잘못된 생각인지를 다시 묻고 싶다.
잠시 찝찔한 마음을 반야 深雪(심설) 눈 길에 파 묻기로 하고 그리고 이곳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갖고 온 육고기를 암자에서 먹을 수도 없고 해서 ㅋㅋ 다행이 날씨가 따뜻해 준비한 점심상을 눈 밭 아무 곳에 깔아도 괜찮았다. 꺼낸 음식으로 내리는 눈과 함께 범벅이 되어 입으로 들어 갈 때면 차가움은 느꼈지만 그래도 좋았다.
중봉을 지나 묘향암 가는 길은 허벅지까지 차는 말 그대로 흔적 없는 심설 눈 길이다. 이따금 언제 다녀간 희미한 발자국의 흔적이 사라질 때면 간간히 묘향암을 가리키는 표시기를 따라 길을 찾는 데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딴에는 은근히 석가모니의 설산고행(雪山苦行)을 기다렸는지 모른 데…… 짙은 운무에 싸락눈까지 제법 내리는 운치 있는 날이다. 급한 내리막에서는 몇 번이고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늦은 시간에 묘향암에 닿는다.
"스님, 계세요" 하는 말에 반갑게 합장으로 맞이 해 주신다. 불교도인도 아니지만 언제나 이곳에 올 때면 법당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내가 바라는 祝願(축원)을 마음으로 읊조리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법전에서 스님과 대화를 이어 가다가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 본다. 함박눈이면 더욱더 좋았을 것을 그래도 아쉽지만 다행이다 싶다. 주변은 짙은 운무와 흐릿한 날씨로 시계확보가 몇 미터 앞을 재지 못했다. 다만 마음으로 볼 수밖에…… 스님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벌써 시간은 다음에 여유 있을 때 하루쯤 묵어 가라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묘향암을 나온다.
반야봉 사면을 타고 묘향암을 빠져 나오는 길은 의외로 포근함으로 다가왔다. 너무 늦은 것 같아 빠른 걸음을 재촉 해 보지만 마음만 급하다. 이왕 왔으니 늦더라도 함께한 산님들에게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5거리에서 불무장등으로 그냥 내려가자는 제의를 뿌려 치고 삼도봉을 보여준다. 이제 시간은 불무장등도 그렇다고 무착대도 들려야 할 시간은 없다. 길을 재촉하여 직전마을로 향했다.
언제나 이 길을 가면 신경을 세워야 할 코스이다. 능선 주위는 녹지 않은 눈과 습한 냉기와 뿌연 수증기 속의 시야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직전으로 향해야 안부쯤에서 흔적은 사라지고 만다. 이 사람이 여기에서 하늘로 날랐나 아니면 땅 속으로 들어갔나…… ‘직전마을 코스는 분명 우측 이곳인데’ 하면서도 자신을 믿지 못해 원시인에게 지원 요청을 해 본다. 분명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맞긴 맞구나.
한참을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는 감이 서지 않는다. 그러다가 귀신에 흘린 듯 내가 어디쯤에 온 기억이 없다. 그것도 모르고 잘만 따라온 우리 산친구들. 능선의 먹구름이라도 걷히면 감각을 찾으련만 급히 사면을 휘 돌면서 또 한번 지원사격요청 한바탕 요란을 떨면서 바로 앞 무착대 입구에 50여 미터 앞에서 요란을 떨었으니 원 ㅋㅋ
어둠이 내려오기 전에 내려서야 한다는 압박감에 발 길을 재촉한다. 다행이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따라준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고도 800 전망바위에서 오랜만에 여유 있는 휴식을 취하면서 오늘 산행을 정리 해 본다. 이윽고 이동송신탑을 지나고 짙은 어둠이 드리우기 전 닿으면서 10시간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끝까지 잘 따라준 2K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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