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변방, 백운계곡과 청계계곡을 다녀와서……
-일시: -어디를: 백운계곡-달뜨기능선-웅석봉-청계계곡 -누구와: 산 친구 셋이서
해마다 이맘때면 지리산 변방을 맴도는 지리산꾼들 어디로 갈까…… 태극종주의 시발점인 웅석봉을 깃 점으로 한 원점회귀 산행을 하게 된다. 하기야 요즘은 태극종주를 남강에서 시작하여 100km를 이어가더니 급기야 백운산 능선을 타고 오르는 120km를 이어가는 태극전사들도 있답니다.
백운계곡과 청계계곡 단성 IC를 지나 南沙(남사)마을을 지나면서 청계로 향하는 청계댐에 차를 파킹하고 또 다른 차는 백운계곡으로 차를 돌렸다. 이른 아침 왠 낯선 산 객이 나타났는가 싶었는지 할머니가 우리를 주시한다. 적당한 곳에서 아침을 먹고 가겠노라 하고 아내가 준비해 준 매운탕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사실, 청계계곡으로 오르려다 산행시간이 짧을 것 같아 백운계곡을 출발점으로 선택한 산행이다. 백운계곡은 달뜨기의 남쪽으로 가지를 펼치고 백운산을 끼고 흐르는 아기자기한 골짜기다. 조선 중기 영남 사림파의 거두였던 남명 조식 선생이 가장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한 백운계곡 백운계곡의 수려함이라 할까? 봄 여름이면 수려한 물줄기를 자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오늘에 와 보니 그 이야기는 현실을 근거로 한 내용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좀더 수량이 부족한 듯 하였으나 지금 지리산 어디에 못지않았다. 그만큼 낮은 산에 비하면 수량은 풍부할 듯싶어 수달래 피는 내년 봄 너를 찾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오늘 산행을 시작하련다.
산행 시발점부터 어느 계곡과 다르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름 그대로 구름처럼 흰 반석들과 그 자락을 타고 굽이쳐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침 우리가 아득한 그 옛날의 남명 선생의 일행이 된 듯한 기분이다. 이 물줄기 속에 얽혀있는 전설과 비밀 속에 감춰둔 신비를 하나 하나 풀어 내 놓은 듯 함께한 산 친구인 지리산 달인이신 지**님께서 풀어 내신다.
‘좋~다’ 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을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이런 계곡산행을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다는 토목님의 말이 아니라도 가다 지칠 만 하면 크고 작은 폭포와 깊고 맑은 소가 연이어 나오면서 지루함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처음부터는 우리는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버리고 끝까지 계곡만 고집을 하기로 한다. 계곡의 고도 460 용문폭포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이 계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바위와 노송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여느 계곡과는 사뭇 달랐다. 이름의 그대로 구름처럼 흰 반석들과 그 자락을 타고 굽이쳐 쏟아지는 물줄기 때문에 남명 선생이 그토록 좋아했을까? 한참을 노닐다가 이어진 산행을 한다.
계곡으로 이어나가는 작은 길과 영산산장으로 이어지는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잠시 후 고도 820에서 우리가 가야 할 달뜨기능선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윽고 힐끗 한 고령토 채취장에서 발길을 멈추고 잠시 고령토의 찰흙을 만져도 보고 밟아도 본다. 살에 닿는 느낌부터 여느 흙과는 다르다. 흙의 질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현명하신 우리 조상님들이 이곳까지 와서 고령토를 채취한 분명한 이유는 있었을 거다.
몇 년 전에 홀로 산행한 아련한 기억을 올려본다. 그 때는 산행경력도 미천했고 왜 그렇게 알바도 많이 했는지 덕분에 지금 옆에 있는 지**님이 핸폰 가이드 역할을 단단히 했지. 드디어 달뜨기 능선 최고의 전망치인 1034 전망바위에 만찬의 자리를 편다. 잠시 홀로 산행한 그 날을 기억하고 싶어 그 흔적을 찾았다.
아래사진: 똑 같은 장소에서 05년 12월9일은 천왕봉과 홍계마을(상) 가야 할 달뜨기와 밤머리제가 보인다. -달뜨기 능선의 조망대에서. 달뜨기능선의 최고의 전망대에 들어섭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산자락을 휘둘러 보면서 그 중에 우뚝 솟은 모성의 산 지리산의 천왕을 바라 봅니다. 천왕의 주위로 펼쳐지는 사방의 구름을 불러놓고 지리의 슬픔 역사를 숨기려는 부끄러움이 몹시 슬프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조개골과 쑥밭재에서 이곳을 향해 서러운 달 바라기 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주름진 제 어미의 얼굴을 생각했음을 되 짚어보니 힘 없는 우리 역사의 현실이 서글퍼 지면서 그 당시 자신이 존재했다면 이념의 갈등 속에서 과연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에 힘없는 발길을 돌립니다. (
만찬에서 먹은 쭈꾸미의 별미는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조망은 볼 수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지리산 능선에서 보는 달뜨기능선은 그렇게 완만할 듯싶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다. 날씨만 좋다면 지리산 조망과 경호강의 물줄기를 즐기면서 산행 할 수 있으련만 가깝게 산 허리를 잘라 만들어 놓은 임 도만이 흉물스런 모습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서 웅석봉에 다리를 걸친다. 사방팔방으로 조망은 트이지 않았고 싸늘한 북사면의 겨울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언제 만들어 놓았는지 데크에 몸을 숨기면서 한참을 경호강의 강줄기를 바라본다. 내려가야 할 계곡은 청계계곡이다. 어느 계곡이 특징은 없겠느냐 마는 청계계곡은 백운계곡에 비하면 수량도 그렇고 화려함도 계곡의 깊이도 백운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요즘 현실이다.
그렇지만 청계계곡은 많은 전설을 안고 있는 계곡이다. 지금은 세월의 무상함과 사람들의 무심함이 겹쳐 그 오랜 전통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얼마나 물이 맑았으며 청계라 하였겠는가 마는 지금은 청계저수지에 곱다랗게 올려진 팬션만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다만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단속사지가 청계계곡의 시작점에 있었다는 사실에 산행이 끝난 뒤 우리는 꼭 이곳을 들르기로 하였다.
-단속사지 경남 산청군 단천면 운리 지리산을 알고부터 이곳에 온다 하면서 와 보지 못한 무심한 사람 그것도 아스라히 석양이 서쪽 산마루금에 걸친 어스름한 즈음에. 다행이 마을 어르신들이 우리를 마중이나 나오신 듯 기다리고 계신다. 이곳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귀동냥하면서 개 짖는 소리와 함께하면서 마을어귀를 맴돈다. 본래 이름은 금계사 수 백 칸이 넘는 큰 절 집에 늘 식객이 넘치도록 들 끊는 바람에 스님들이 공부를 할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스님들이 세속과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斷俗寺(단속사)로 지었단다. 이상하리만큼 그 뒤로 사람들의 발 길이 끊어졌다 하니 이름에는 정말 운명을 바꾸는 힘이 들어 있을까요? 청산의 바람흔적은 웅석봉에서 전 치옥 씀.
|
'智異山 戀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하듯 다녀온 서북능선 (0) | 2008.12.12 |
---|---|
천왕봉의 정통코스를 다녀오다. (0) | 2008.12.09 |
지리산 삼신봉 나들이 (0) | 2008.11.19 |
심원옛길을 간다 (0) | 2008.10.30 |
지리산의 만남, 그 인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산행(지리산 두 개의 독바위) (0) | 2008.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