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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지리산의 가을마중

by 청산전치옥 2006. 9. 27.

지리산의 가을마중
(천왕동능과 주능선)

-언제: 2006년 추분 날
-어디를: 천왕동능과 일출봉능선
-누구와: 토목님. 서북능선님.


<천왕의 가을 두 남자와 가을 사람들>

지리산 가을마중
가을을 마중하러 나섰다.
산 꾼이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할 겨를이 있을 수 없다.
지금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구름이 손짓을 하고 서늘한 바람이
나를 기다려줄 지리산으로 가을마중을 가기로 한다.
지난 9월2일 함박골 산행에서 왼 무릎을 다친 이후 근 20여일 만에 하는
시험산행이라는 의미를 두고 있는 산행이기도 하다.



<천왕동릉을 바라보며>

무더운 여름은 가을이라는 신무기 앞에서 넋을 잃었다. 그래도 낮에는 따갑게
내리쬐는 볕이 눈을 시리게 하지만 여름의 햇살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이른 아침 시천 들녘을 따라 달리는 차 안에서 노랗게 물들어가는 벼 이삭들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 하고 논두렁 가장자리에 심어진 콩들이 금방
이라도 튕겨 나올 것 같다. 마을 어귀 야산에는 대추며 밤들이 서로를 시샘
이라도 하듯 자신들의 가을을 알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꽃망울이
보일락 말랑했는데 벌써 그들은 성숙한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천왕을 오르는 사람들>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숨 가쁘게 달려왔건만 벌써 아침 7시가 되었다.
주차장에는 벌써 많은 산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도 그들 속에서
오늘의 산행을 시작하는 순두류의 지루한 시멘트 길을 걷는다. 나의 지리산 수
많은 산행 중에서 정규등산로에서 가장 늦게 밟았던 순두류코스였지,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토목님도 이 길이 오늘이 초행이란다. 아마 지루한
시멘트 길과 천왕봉 오름 길이 더 멀어 이용되지 않지만 오히려 연로하신
분들이나 연약한 사람들은 이 길이 더 낳지 않을까 생각 된다.



<중봉 현재의 가을>

광덕사지와 암범주굴 산행을 언제부터 하겠다고 벼루고 있었던 토목님과
올 봄 이곳 산행을 감행했던 서북능선님은 아쉽게도 광덕사지에서 암범주굴을
찾지 못하고 糞瘻(분루)를 삼켰으니 어찌 다시 도전하지 않을 수가……
나 역시도 이곳에서 아픈 기억은 있었다. 암범주굴까지 무사히 진행했던 자신
은 춘삼월의 눈 밭에서 천왕동능을 찾아 헤맸던 기억이 그리고 결국 개선문
에 다 달았으니, 이렇게 切齒腐心(절치부심)하에 오늘을 기다렸다.



<순두류 아지트에서:오늘 산행중 함께한 마대자루의 시그널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지루한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면서 때로는 바이패스 길을 따르고 하는 사이
어느덧 자연학습원을 지나 정통 순두류코스의 유순한 길을 걷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순두류아지트를 들르고 가자며 잠시 쉼을 갖는다. 함께한 둘은
계곡 건너편 머루와 다래를 찜 해둔 곳이 있다 하여 그곳으로 가는 사이
나는 계곡의 이미지를 담는다. 이어서 철다리를 지나고 잠시 빡센 오름길
을 벗어나니 신선너덜의 터에 닿는다. 이윽고 광덕사지교를 지나 법주굴의
들머리인 광덕사골로 몸을 던진다.




<광덕사골의 3단폭포와 실폭포를>

이곳부터는 최근에 다녀 온 서북능선을 앞세우고 광덕사지부터는 내가 앞서기로
하였다. 한번쯤 왔던 기억이라 아직 잊혀지지 않은 기억력을 동원해서 손쉽게
1.2차 기도처를 찾아냈다. 주변으로 온통 휩싸인 잡목들과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아직 가을이라는 계절의 감을 잡지 못한 곳이었다. 이윽고 잠시
산죽밭 사이의 정돈된 등로를 따라 오르니 광덕사지가 나온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계곡으로 빠져들면서 서북능선이 이곳으로 빠지는 과정에
서 법계사 쪽으로 향했던 이유로 법주굴을 놓쳤단다.



<법주굴 현재의 가을모습과 조망을>

<법주굴에서> 이윽고 계곡을 따라 오름 길을 계속 이어진다. 혹시 왼쪽무릎이 아파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없었다.
그러면서 “법주굴만 안내하고 나는 법계사로 갈거야” “형님, 혹시 다리가
좋지 않으면 이번에는 119를 부를 랍니다” 하면서 몇 번의 농을 거는 사이
법주굴에 닿는다. 고도 1550의 높이에 위치한 법주굴의 주변은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낀다. 굴 앞의 장작더미며 타나 남은 흔적과 샘터 또한 주변
의 무성한 잡풀로 우거져 있는 모습이지만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은
더할 나위 없다. 잠시 그곳에 올라 신선놀음을 하고 태조 이성계의 설화가
깃든 암법주굴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서서히 자리를 떠난다.




<고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채색된 단풍은 곱게 물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디로 갈까 하고 또 잠시 방황을 한다. 지난번 나 혼자 이곳에
왔을 때 주변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산길을 찾아 보았지만 천왕동릉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후퇴했던 아픈 기억, 결국 좌측 사면을 타고 수 십 분의 알바로
어렵게 개선문으로 나왔지. 우측의 뚜렷한 산죽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둘을
붙잡아 세운다. 서북능선도 안되겠다 싶던지 다시 뒤 돌아 나가자고 하는 사이
토목님이 자기가 찾겠다고 하는데, 아래로 잠시 내려 가는 듯 하더니
이내 우측으로 중봉과 써래봉이 보이면서 희미한 길이 보인다. 지난날 왜 이곳까지
왔으면서 찾지 못했을까 하는 바보스런 길치임을 뒤늦게 책망을 해 본다.




이제 이곳부터는 새롭게 맞이하는 천왕동릉길이다. 고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주변 낙엽 색깔이 변색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을은 분명 가을이구나.
우측 능선으로 펼쳐지는 써래봉과 중봉의 초록색에 빨강 노랑 단풍의
점박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퇴색되리라 본다. 고도 1730 근처에서
갑자기 가로막은 암봉이 한때는 당황스럽게 하지만 함께한 토목과 서북능선은
어디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지 도대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여유 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았지만……




<점점이 이어지는 산그매>

어렵사리 주변의 지형물을 이용하여 암봉을 직등하여 오르고 잠시 고도 1800
에서 넉 나간 사람마냥 주변의 풍광에 매료되는데 그때서야 나타나는 두
갑장의 모습은 커다란 포만감에 비시시 웃음을 짓는다. 잠시 전망바위에 앉아
긴 한숨을 몰아 내 쉬며 지리의 가을마중을 하면서 또 다시 색채의 가을마술에
매혹된다. 아직 가을단풍을 말하기엔 이른 가을의 들머리지만 더 없이
솟아오르는 하늘의 파란 바탕에 흰 물감 뿌려놓은 듯 뭉게구름 만들어 색칠을
하고 동쪽 저 멀리 웅석봉에서 시작되는 달뜨기 능선의 너울거림은 점점으로
이어져 결국 또 하나의 산그리매를 그린다. 몇 번의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이 어느덧 힘든 줄 모르고 천왕동릉에 닿는다.





<천왕의 가을사람들>

찰랑거리는 따가운 가을 햇살 속에 온몸을 담근 채 물끄러미 가을이 익어가는
천왕의 가을사람들을 바라본다. 천왕을 밟았다는 벅찬 감격과 함께
익어가는 지리산의 가을마중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한 차례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가지가 휘청거리고 나뭇잎들이 일제히 찰랑대며
노래를 부른다. 머지않아 아직 여물지 않은 초록빛 잎새들도 노랑 빨강
단풍잎으로 바뀌고 낙엽은 가을바람을 타고 미련 없이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리 털어내도 다시 제 자리에 앉는 먼지와 같이 우리
인간의 욕심은 먼지처럼 자리만 이동할 뿐이다. 이리저리 치렁치렁 얽히고
설킨 칡넝쿨처럼 삶의 끄나풀이 서로 끈끈한 인연으로 다가오고 조금만
욕심을 멀리한다면, 조금만 마음을 비운다면 번민하지 않아도 즐거움이
샘처럼 솟아 오를 것인데, 천왕에 서 있는 지금의 저들처럼……



<천왕봉에서 제석봉을 향하여>

천왕봉과 천왕굴 주변에서 점심을 하는 사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보니
1시간 20여분을 소비하고 말았다. 재석봉을 향하는 능선 길은 여유만만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리막길이라 왼쪽무릎에 신경을 쓰기로 하고
서서히 조심스럽게 발길을 돌린다. 함께한 두 사나이는 앞장서 가면서
때로는 기다려주기도 하지만 이 가을을 놓치기 싫어 능선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카메라를 다시 목에 걸면서 걷는다.
재석봉을 스치고 장터목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능선길에 접어드니 어디서
많이 뵌 분 지리산총무님과 조우를 한다.
“지리산총무님 무척 반가웠습니다” 변명 같지만
시간이 있었다면 이슬이라도 한잔 했어야 하는데……




<재석봉의 가을과 반야를 품에 안으면서>

<가자 일출봉능선으로>
지리산총무님이 올라 오셨던 일출봉능선을 향하여 간다.
사실 일출봉능선은 생각지 않았지만 원점회귀 산행을 하려다 보니,
서북능선께서 중산리 백운암에서 일출봉으로 오르는 산행기를 봐 왔다면
적극 추천한 코스이기도 하지만…… 일출봉의 기암과 가까운 주변의
풍광은 볼 수 있었지만 일출봉 위로 떠 있는 먹구름의 그늘에 가려 더
멀리 조망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 단풍은 천왕단풍과는
아직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일출봉에서>

일출봉능선은 연하봉능선과 청래골 코스와 함께하다가 고도 1400능선
분기점에서 갈리는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맨 처음 시작한 능선의
길은 잡목과 키 작은 산죽이 있지만 버틸 만 하고 고도 1300근처의 커다란
암봉을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우리는 직등하여 내려 오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죽과의 싸움은 해 볼만 하지만 내가 생각 했던 것과 같이
그렇게 많은 산죽은 아니었다(연하봉능선에 비해) 이어서 3~4군데의
전망바위에서 펼쳐지는 조망은 능선의 참 맛이 이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서 내려가야 중산리 주차장의 정확한
포인트로 내려가는가 이다.



<오늘을 함께한 토목님(좌)과 서북능선님>

일출봉을 떠난 후 2시간 만에 고도1150 전망바위에 닿는다.
눈 앞에 펼쳐지는 중산리주차장과 남부능선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위로는 천왕의 미소가 우리를 해지긴 전에 어서 내려가라는 무언의
매세지를 주고 있다. 잠시 우리가 어느 능선에서 내려서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주차장을 끼고 첫 번째 지능선이 분명 백운암으로
가는 능선이고 가운데 계곡이 주차장으로 향하는 듯 하나의 지능선은
중산리 상가(천왕사)쪽으로 뻗어 있었다. 우리는 첫번째 지능선을
선택하기로 하고 그 코스의 길을 찾는데, 아뿔사……
도대체 길을 찾지 못한 건지 길이 없는 건지 고도 1115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다행이 전화가 터진다. 더 내려가면 천왕사로 빠지는 뚜렷한 길이 있다는
말에 어차피 차량을 회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곳 적당한 곳에서
계곡을 치고 내려 가기로 한다.




<우리가 내려서야 할 주차장:결국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그 계곡으로 내려 섬>

약 20여분의 알바를 하고 나니 어느덧 산 속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계곡을 치고 내려가고 때로는 처음능선으로 혹시 길이 있나 하여
능선을 붙잡아 보다가 계곡 고도 1005에서 반가운 사면의 길을 만난다.
산죽을 쳐서 만들어 놓은 길은 선명하지 않지만 아마 고로쇠 채취의
흔적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고도를 낮출수록 길은 더욱더 선명 해 지더니
고도 760에서 축대의 흔적과 주변으로 넓은 터가 있으며 우측으로 실계곡이
흐르고 있다. 고도 670에서 민가를 볼 수 있었으며 이내 이 길은 주차장
바로 앞 상가 용궁산장 사이로 이어지는 뚜렷한 길이 나타나므로 서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온전치 않은 무릎부상이 악화되면 어떡할까 걱정했는데 함께하신 토목님과
서북능선님이 리더 해 주셔서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에필로그>

항상 좋은 날보다 아픈 기억이 더 진하게 다가오는 가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가을.
행복했던 시간들보다는 억울해 하며 지난날을 후회하는 가을.
진정 우리는 이 상념의 가을에 얼마만큼의 소득을 누릴 수 있을까 하고
계산하는 계절이 가을이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먼 훗날 미래에 자신이 결코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그런 삶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한때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대단한 삶이 아니란 걸 진즉 알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나에게 주워진 보배로운 시간이다.
知足安分(지족안분) 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후회 없는 삶이되 보자면서
지리산 가을마중을 마칩니다.
2006. 09.26.

청산 전 치 옥 씀.



<일정정리>

06: 50 중산리 주차장(620)
07:30 자연학습원 입구(885)
07:45~08:00 순두류 아지트(960)
08:10 이정표(중산리 4.7/법계사1.1/천왕봉3.1)
08:20 광덕사지교(1155)
08:55~09:10 기도터 & 광덕사지터(1355)
09:45~10:00 법주굴(1550)
11:10 고도 1730에서 암능직등.
11:25~11:40 고도 1810전망바위
12:00~12:50 천왕봉(점심)
12:50~13:20 천왕굴 보고 다시 천왕봉
13:50 제석봉(1808)
14:10 장터목(1653)
14:30 일출봉(1700)
15:10 고도1400 일출봉능선 들머리
15:40 고도 1340 전망바위
15:55 고도1300에서 암릉구간 직등
16:30 고도 1150전망바위
16:50~17:10 고도1115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알바
17:10 계곡등로 만남(1005)
17:40 집터의 흔적과 넓은 터(760)
18:00 주차장(용궁산장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