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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山 戀歌

秋色물결과 함께 나를 뒤 돌아보는 지리산종주

by 청산전치옥 2006. 10. 7.


秋色물결과 함께 나를 뒤 돌아보는 지리산종주

-언제: 2006.10.03.

-누구와: 토목님과 YD님. 나

-어디를: 성삼재-천왕봉-중산리 매표소



<법계사 내림길에서 천왕남능>


<고사목과 하늘:제석봉에서>


‘형님, 지리산 왕복종주 한번 합시다’

‘갑자기 먼 소리여 그냥 종주나 하지’

며칠 전에 YD님과 토목님이 나에게 전화한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리산 주능선의 단풍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을 기회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요즈음에야 태극종주니 태극왕복무박을 하고 있는 지금에 지리산

왕복종주가 그리 대단한 것이겠습니까마는……

일단은 하자고 했는데 과연 할까 하는 의심 속에 종주길에 오릅니다.





<천왕을 오르면서>


그 동안에 4번의 지리산당일종주가 있었지만

성삼재에서 시작하는 이번 종주가 가장 가벼운 종주길인 것 같다.

최근에 왼 무릎의 통증으로 종주 길을 신청 해 놓고 여간 신경을 쓴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전에 분명히 반야봉에서 일출이나 보고 내려온다는 생각으로

산행에 임할 것이다. 혹시 몰라 23:00에 깨워달라고 해 놓았지만 곧 펼쳐질

주능선의 추색물결이 어른거려 한 숨도 붙이지 못하고 일어난다.

‘큰 벼슬을 하러 가나, 심야 끝나고 못 잔 잠이나 자지’ 구시렁거리면서도

그렇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은 아내가 고맙기도 하다.

어느새 도시락 두 개와 반찬이 배낭 옆에 놓여 있었다.







<지리 주능선의 단풍>


성삼재에 도착한 시간이 02시15분.

이제 어둠을 뚫고 헤드랜턴에 의지한 채 긴 험로를 향해 가야 한다.

벌떼처럼 버스 안에서 쏟아내는 산님들 속에 묻혀 행여 장터 속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양 이름을 불러보면서 어둠의 터널을 향해 간다.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산으로 내 모는가?

‘산을 좋아한다’ 는 공통분모 하나만으로 이렇게 어려운 종주를 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내려 올 산을 왜 오르느냐’고

‘우리는 곧 죽을 몸인데 왜 사느냐’ 고 답변을 하면 타당할까?

모두가 나름대로 어떤 철학이 있어 산에 오르겠지만 나는 거창하게 말할

필요 없이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냥 편하기 때문이다’

마냥 편하기 때문에 산은 자신과 나눌 수 있는 대화자라고 말하고 싶다.





<연하선경을 걸으면서>


어둠 속의 딱딱한 시멘트 길을 걸으면서 하나 둘씩 추월해 가고

고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단숨에 노고단 산장을 지나 돌탑 위에 와 있다.

반야의 아름다운 모습이 흑색으로 투영되고 왼쪽 아래 심원마을 불빛은

이곳까지 透射(투사)되고 있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불빛이로다.

어둠 속의 산행길이라 거칠 것이 없었다. 돼지령에서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동쪽의 천왕과 북쪽의 만복대를 마음으로 바라 본다.

더군다나 지금쯤 주변에 펼쳐진 추색물결을 마음으로만 바라보며 거닐고

카메라를 내 밀지 않으니 더욱더 속도를 낼 수 밖에……





<재석봉에서>


임걸령 조망대에서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스산한 이른 새벽바람을 맞는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 어느새 내 머리에는 땀과 이슬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토목님이 건네는 미숫가루로 목을 축이며 삼도봉을 향한다.

산행 후 2시간에 삼도봉에 도착하였다. 지금 4시15분인데 언제 반야에서

일출을 기다린단 말인가? 거칠 것 없이 그대로 전진이다.







<천왕봉 오름 길에서>


공포의 날나리봉 계단을 헤아리다가 어느 순간에 잊어버렸다.

화개재에 내려 오니 이제부터는 토끼봉을 향해 또 오름 짓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 보니 우리 셋 이외는 아무도 없었다.

왜 이렇게 어둠이 길어진 걸까 하면서 토끼봉에 도착하니 주변으로 약간씩

여명이 터 오고 있었다. 슬며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05시45분에 연하천에 도착하니 선두의 산악회 회원 4명이 쉬고 있었다.

우리 셋은 늦은 줄 알았는데 선두와 간격을 두 번째로 유지하고 있었다.

연하천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나는 먼저 일출촬영을 해야 한다며 그 자리를

벗어나는데, 왜 이리도 형재봉은 멀어만 보이는지……







<형제봉에서 바라 본 섬진강 자락>


<형재봉에서>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오늘도 하루를 알리는 떠 오르는 태양을 천왕봉을 향해 맞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늙어 간다는 것이 아닌가?

새삼 반백 년이라는 말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스스로 내 자신에게 물어 본다

나잇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호박에 줄만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 것처럼

나의 분수를 알고 모든 것을 너그럽게 끌어 안을 수 있는 마음부터 배워야겠다고

떠 오르는 태양 앞에 조심스럽게 약속을 해 본다.

‘형님, 좋은 작품 사진 찍었습니까’ 하면서 분위기를 깨면서 어느새

가까이 그들이 내 곁에 와 있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종주길에 함께오른 YD(좌)과 토목님>


이제부터는 더딘 산행이 되리라.

주변의 풍경과 조망 그리고 내 마음으로 느끼는 사색의 산행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빡센 산행도 아니거니와 함께하는 그들이

‘이제 형님덕분에 널널산행 좀 해야겠습니다’

‘그래 우선 너희들 먼저 가고 있어’ 하면서 카메라를 목에 건다.

벽소령에 와 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주변에 비박하는 사람. 밥 먹는 사람.

어수선하여 그 자리를 비켜서서 한적한 곳을 찾아 아침상을 차리자 알고

왔는지 까마귀가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선비샘에서 바라 본 섬진강자락/가야 할 천왕봉/그리고 칠선봉에서>


지금부터 지리산 종주에서 가장 힘들고 지루한 벽소령과 세석간 6.3km

코스이다. 맨 처음 지리종주 때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구간이었다.

물론 그때는 화엄사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럴 법도 하겠지. 잠시 후 선비샘에 도착하였다.

며칠 전에 다녀간 우리 회원들의 청소산행의 덕분인지

주변이 깨끗해져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칠선봉에서 함께하는 토목님과 YD님의 증명사진 하나 박았다.

이윽고 그들을 또 다시 먼저 보내고 자신은 서서히 그 뒤를 따라 나선다.







<영신봉에서 본 촛대봉/세석 주변의 단풍/한신계곡을 바라보며>


<촛대봉에서>

눈부시게 푸른 가을하늘이 여기에 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신이 우리에게 내려 주신 아름다운 자연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 아름다운 축복을 나 혼자 볼 수 없어 카메라 앵글을 갖다 댄다.

가깝게는 천왕을 향한 연하선경과 내가 지나온 반야의 뒤 모습

세석평전의 가을 색과 저 남부능선 건너 왕시루봉의 섬진강의 운해는

지금도 나를 따라 오는 것만 같았다.

어찌 돈과 명예와 연관 시키는 것이 축복이라고 하겠는가?







<촛대봉/연하선경과 천왕봉/촛대봉에서 반야를 바라보며>


갑자기 옛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을 떠 올린다.

40대가 되면 잘생긴 놈이나 못생긴 놈이나 같고,

50대가 되면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같다.

60대가 되면 남자나 여자나 같으며.

70대가 되면 가진 놈이나 없는 놈이나 같으며

80대가 되면 아픈 놈이나 안 아픈 놈이나 같고

90대가 되면 산 놈이나 죽은 놈이나 같다는 옛 말을……







<연하선경에서>


지금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능선구간인 연하선경이다.

사계절 관계없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지리의 10경에 넣었겠는가

얼마 전에 내려간 일출봉능선과 일출봉의 기암괴석 그 아래 도장골의 단풍

사방팔방으로 탁 뜨인 전망과 북쪽으로 한신계곡과 연하북능으로 뻗어

내리는 부드러운 곡선미까지 곁들인다면 어찌 이 길을 걸으면서 마치

신선이 아니 되겠는가? 쉼 없이 와 보니 장터목에서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하선경에서 장터목을 향하면서>


장터목에서 잠시 쉬면서 한마디 거든다.

‘천왕복 찍고 턴 해서 성삼재 갈 준비됐지’

‘아이고 무슨 소리입니까’ 더는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나 역시 상당히 다리를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버텨주고 있었다.

또 다시 지금부터는 단풍의 극치인 천왕의 주변 추색물결이 펼쳐질

오색의 향연으로 빠지기 위해 재석봉을 건너 간다.







<천왕봉 가는길의 단풍>


산행 후 10시간 못 미쳐 천왕봉에 닿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렇듯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왕봉 정상 어디에도 좀처럼 발 붙일 틈 조차 없었다.

저 아래 한쪽 어귀에 앉아 잠시 다리 쉼을 갖던가 아니면 점심이라도

먹어 볼 요량을 하였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천왕샘 근처 어디에서

쉬기로 하고 그냥 내려왔다. 천왕동릉의 능선과 써래봉 주변으로

순한 단풍이 곱게 물들어 우리의 시선을 쫓게만 한다.







<천왕을 내려 오면서: 법계사 가는길>


이제 내려가야지.

추색물결로 춤추던 능선을 벗어나고 천왕을 뒤로한 채 하산을 서두른다.

오르는 사람들의 힘겨워하는 모습과 흐르는 땀이 눈에 보이지만

그들은 정상을 향한 의지만은 누구도 꺾을 수 없어 가벼운 눈인사를 건넨다

천왕샘을 지나고 개선문을 지나서 법계사까지만 단풍이 피어있었다.

함께하던 일행을 먼저 보내고 로타리 산장의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 오늘 종주의 일원이신 6학년6반 어르신과

함께하는 하산길이 되었는데 그 분께서는 스틱 없이도 여유롭게 내려가신다.

정년 퇴임하시고 그 뒤 산을 찾아 산악회에서 몇 번 뵌 분이시다.

올해 들어 당일종주만 3번째 하시는 그 분이야말로 산을 내려오듯 인생의

하산방법을 성실히 준비하신 정말로 멋지게 사시는 분이 아닌가 싶다.





<법계사 가는길에서>

<에필로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아직 깨어나지 못한 어둠 속의 나를 지리산 종주 길로 불러내어

낮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꿈을 가졌던 어린 시절의 아련함도

성장과정에서 차츰 변화된 가치관의 성숙에 따라

이제는 잔가지를 쳐 내고 자를 것은 자르는 정체된 자신의 모습에서

더 이상 무엇을 추구 할 것인가.

현재의 자신의 위치가 남보다 높으면 어떻고 낮으면 어떻겠는가.

아쉬움과 애달픔으로 절절 매던 헛된 욕망도 마음도 비우고

이제 반백 년 되는 삶에서 이뤄지든 그러지 못하든 계획을 세워 보자고

지리산 너를 품에 안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해 본다.





<천왕 가는길에서>


한 세상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잘 사는 삶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나름의 철학에 따라 남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며 하는 삶,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삶,

또 다시 욕심을 부려본다면 먼 훗날 뭇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 열심히 살다가 간 사람,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었어” 라고

후일담을 나눠 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무엇이겠는가.

이제 반백 년의 아름다운 삶의 멋진 마무리를 위하여 지리산 종주 길에서

자신과 다시 한번 약속을 해 보면서 산행기를 마치련다.


2006.10.7

청 산 전 치 옥 씀.



<천왕주변의 가을풍경>


<구간별 시간정리>

02:20 성삼재(산행시작)

02:45 노고단 산장

03:15 돼지령

03:35 임걸령 샘터

04:15 삼도봉

04:52 토끼봉

05:45 연하천

06:20~06:30 형제봉

07:05~07:30 벽소령(아침식사)

08:55 칠선봉(1558)

10:00~10:15 촛대봉

11:10 장터목산장.

12:05~12:15 천왕봉(1915)

12:40 개선문(1700)

13:10~13:20 로타리산장

13:40 망바위

14:15 중산리 매표소(산행종료)


-소요시간: 12시간.

-산행거리: 33.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