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덕평봉) 가을편지
-언제: 2012. 9. 22 ~23.-어딜: 삼정마을~벽소령~덕평봉~오토바이능선~ 삼정마을-누구랑: 원시인. 삼수니. 이중위
소슬찬 바람 하늘에 머물러
능선 감고 돌아 찾아 드는 그 환영(幻影)
태풍 "볼라벤"과 "산바"를 이겨내고
가을이 왔노라고 눈웃음치는 쑥부쟁이
덕평 구절초 흰 웃음 짓자
그 웃음 비위 맞추려는 저녁노을 어디 가고
갑자기 나타난 훼방꾼, 짙은 먹구름에
아직도 가을 애상(哀想) 애 저림에 눈시울만 적시누나
2012. 9. 22. 덕평봉에서
태풍 “볼라벤”과 “산바”가 할퀴고 간 지리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키 큰 나무들이 허리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혀져 있는 모습들이 처참해 보인다.
그래도 등로에는 주인을 만난 듯 잘 정돈돼 있었지만
등로를 벗어난 샛길에는 아직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 듯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동부팀과 함께 지리산 길을 걷다.
오를 때 빡센 산행을 피하기 위해 벽소령 제 길을 걷기로 하다.
그 동안 지리산에 목말라하는 분도 있었고 유난히 9월 들어 산길을 막는
장애물이 발생했다면 푸념을 늘어놓더니 이내 벽소령 까마귀가 우릴 반긴다
지리산 까마귀를 이곳으로 다 불러 모은 듯……
최대한의 시간을 보내면서 벽소령에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덕평에 닿는다
벽소령에서 선비샘 근처의 쑥부쟁이와 구절초 그리고 용담은 이제 제철을 만난 듯
때 묻지 않고 산골 소녀 같은 꽃 구절초의 은은한 향기와 짙푸름을 덧칠한 용담
애절한 시집살이 설화를 그려낸 며느리밥풀꽃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태풍에 없어진 줄 알았는데 대지를 할퀴고 간 그 자리에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선비샘에서 1시간 이상을 그들과 대화 하면서 적당한 시간에 덕평을 오르다.
어디를 갈까 몇 번이고 망설였던 오늘 산행 목적지가 덕평이었다.
지리산 어디면 어떻겠는가 마는 요즘 워낙 단속이 심하다 보니 산행지 결정이……
차선의 방법이 그래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반야의 저녁노을을 기대하고 암봉에 오른다.
좋아질 듯 하다 이내 검은 구름이 앞을 가린다.
아~ 아쉬운 반야의 노을 빛
자연은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의 빛으로 보라는 뜻인가 보다
자신에게 위로를 한다.
오늘은 겉만 보지 말고 속살까지 보라는 이유라고 ......
술친구가 없어서인지 도통 술이 줄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 놓은 산친구 원시인
밤하늘의 별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청산
1년 만에 지리산을 찾는다는 이중위
닭 가슴살을 냉동고에 보관 해 놓고 오늘을 기다렸다는 삼수니
그렇게 덕평 만찬과 함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천왕봉 우측에서 올라오는 아침 빛은 박무(薄霧)와 함께 합니다.
남 사면에 섬진강과 백운산이 보일 듯 말 듯 하고 태풍에 부대낀 낙엽은 보이지 않고
북 사면에는 그래도 올 가을 단풍의 즐거움을 줄마냥 익어가는 가을 빛이 보입니다.
순박하고 맑아서 눈물이 고여 있는 듯한 구절초 형제들이 슬픔을 이야기 합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면서 가을을 채색하고 있네요
깔끔하게 정리하고 난 뒤 오토바이능선을 선택합니다.
잠시 허정 움막터에서 조망을 즐기며 한시름 내려 놓고 이내 오토바이를 탑니다.
2번의 태풍으로 내버려진 능선에는 잦은 통나무들이 앞을 가로막고
때로는 낮은 포복으로 결국 생채기를 새기며 어렵게 능선을 벗어나더니
이내 중철굴암에 여유를 부리면서 정확히 오리정골 다리에 닿으면서 산행을 마칩니다.
함께하신 분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사진한다는 이유로 모처럼 편한 산행이었다고……
2012. 9. 23
청산 전치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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