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산의바람흔적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아름다운 산행(악양 성제봉)

by 청산전치옥 2007. 3. 21.

아름다운 산행(성제봉)

 

 

 

-언제: 2007.03.18.

-누구와: 원시인부부/토목부부/서북능선부부/청산부부

-어디를: 악양 성제봉

 

 

 

가슴이 시려 옵니다.

오늘은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겁니다

산행하면서도 때로는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과의 수많은 대화 속에

부부라는 인연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만남으로 인하여 인생의 곡절을 겪으면서 살아야 하는 부부.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대 마음에 사랑이 한결같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대가 나를 떠나지 않는 이유가 내가 그대를 떠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대 마음 따뜻함이 묻어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라는

어느 수필가의 글귀를 가슴에 떠 올립니다.

 

그래서 마음이 부유해지는 것보다 더 가난해지는 것을 원합니다.

마음이 부유해질 때 보다는 가난해 질 때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이죠.

또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부끄러워하는 것.

기쁨보다 슬픔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비워내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아름다운 동행이라 할까?

아름다운 산행이라 할까?

제목부터 무척 망설여지는 산행기입니다.

언제부터 나의 소원이었고 우리들의 소원이었는지 모릅니다.

산에서 만나는 부부산행의 동행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취미생활이 같아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살림만 하고 생활하는 안 사람들이 워낙 산과의 인연이 멀어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멀게끔 만들었는지 새삼 죄책감을 느끼며 산행기를 씁니다.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서 톡톡 꽃잎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이제는 지리산 산동마을과 섬진강 다압마을에서도 꽃 소식이 밀려 옵니다.

머지않아 꽃 향기에 취한 사람들이 흥청거릴 것이고

그 흥청거림 속에서도 봄 앓이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 봄 앓이의 처방전은 어디론가 떠나야 된다는 현실을 알고 있어

오늘 하루만이라도 봄의 기지개를 키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보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년 말부터 산행이 아니어도 좋으니

부부끼리 모임을 갖자는 제의를 해 놓고도 서로간에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에 까지 오고야 말았습니다.

 

 

 

 

오늘 산행지는 특별히 여자들을 배려한 산행으로 구룡폭포를 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목적지가 바뀌더니 급기야 산행하는 당일

구례까지 가면서도 어디를 갈까 하는 망설임 쪽에서 토목이 핸들을 악양으로 돌립니다

서북능선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 결과는 산행 후에 일어난 일들이 잘 증명 해 줄 것입니다.

  

10시 40분이 되어서 오늘의 산행 들 머리인 청학사 입구에 닿는다.

좌측 대나무 밭 앞으로 널찍한 산판 길을 따르면 곧장 성제봉으로 오를

수 있는 최단코스이지만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경우이므로 서서히 산행을 하기로 한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하는 산행에서 혹시나 하는 염려로

각자의 파트너를 끼고 도는 산행이 너무도 보기가 좋습니다.

10여분 오르고 쉬고,

조망이 좋다고 쉬고 또 가다가 힘들면 쉬고 하기를 반복합니다.

"조그만 가면 정상이다"

'이제, 다 왔네'  하면서

유독 이도 반복하는 우리들의 말 의미를 알 것 입니다.

 

 

 

흔히들 금실이 유별나게 좋은 부부를 천생연분 또는 천생배필이라고 하지요

하늘이 미리 정해 준 연분이요,

하늘이 미리 마련해서 맺어준 배필이라는

금실 좋은 부부를 예찬하는 말이지요.

오늘을 함께하는 부부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무병장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지요

부부가 평생을 함께 하면서 인생의 노년기에 외짝으로 사는 기간이

짧을수록 행복한 삶이라 하는 것이 틀린 이야기가 아닐진 데……

결국,

한 티끌 속에 온갖 세상이 몽땅 담겨 있는 험한 세상을 헤쳐 살아가는

진정한 동행자는 누구인가요?

출가 수행승(修行僧)의 길이 외롭고 멀어 누구와 동반하지 않고 홀로 간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인생을 다하는 날까지 함께할 영원한 동반자인 내 아내와 함께

이 어려운 힘든 산행만큼이나 험한 세상의 길을 가겠지요.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어느새 두어 시간 만에 성제봉에 닿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성제1봉과 2봉사이의 안부로 올랐는데

주변 날씨가 의외로 짙은 개스상태라 확연한 조망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북으로는 원강재 내원재 상불재까지는 희미하게 보이고

남으로는 섬진강 건너 백운산의 윤곽이 뚜렷이 보입니다.

유난히도 서북능선이 좋아라 합니다.

지금까지 최고로 높은 산에 올랐다 는 아내가 대견스러운 모양입니다.

하늘에는 행글라이드의 축하비행이 우리부부들을 위한 비행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만족스런 포만감에 정상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소설 "土地"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들녘의 풍성함과 아름답고 푸르게

흐르는 섬진강의 비경 그리고 섬진강 건너 지리의 지맥이 그대로 이어져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곳에서

오늘의 점심상을 차립니다.

서북능선이 준비한 삼겹살과 토목이 준비한 조개구이와 언제나 산행중에

빠지지 않은 원시인표 홍어는 힘든 산행중에 최고의 별미를 자랑하지요

푸짐한 인심을 내 보이듯 함께한 아내들이 오고 가는 산 객들에게

한 점씩 건네주는 삼겹살의 진미를 그들은 분명 고마움으로 전달 돼 되 돌아 옵니다.

이렇게 2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려갈 길이 바빠졌습니다.

 

 

 

 

올라올 때는 그런대로 올라왔는데

이제 내려가는 길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지요.

신선대를 내려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느새

진한 솔 향기가 먼저 반기며 마중을 나와 달려듭니다.

땅 바닥은 마침 폭신폭신한 카펫이 깔려있는

기분이며 그 역할을 소나무 잎이 대신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내가 가장 머무르고 싶어하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진한 소나무에서 만들어내는 피톤치드의 향

숲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피톤치드.

불치병이라는 아토피를 낫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생활의

활력을 높여 준다는 피톤치드는 도시문명에 찌든 현

대인에게 꼭 필요한 자연의 선물이지요

소나무들이 만들어주는 아늑한 동굴 같은 솔밭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이내 입석마을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 섭니다.

그러나 결국 올 것이 오고 만 것입니다.

여자들의 불안전한 무릎 상태가 거의 다 내려와서 현실로 다가 왔습니다.

다행이 큰 부상은 아닌듯하여 조심스럽게 내려 옵니다.

 

 

 

 

 

어느덧 우리가 다녀 온 성제봉 능선 뒤로 해가 뉘엿거리고

그 능선 아래로 펼쳐지는 연두 빛 청보리와 매화 향기가 코를 자극합니다

들판에는 작고 보드랍고 소중한 생명들이 새 봄과 함께 움직이는 소리가

우리의 마음에도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산행 시간이 의외로 긴 시간이 되리라는 예상을 했지만

그래도 무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 됩니다.

다만 매화마을로 향하는 정체된 차량으로 인하여 진한 매화꽃 향기를

뿜어 내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행을 마칩니다.

 

또한, 오늘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산행 후 성찬에 끝까지 동참 해주신 님들 고생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이런 기회를 갖기로 하지요(토목 노래방 못 가게 해서 미안해^*^)

 

 

 

 

<에필로그> 

우리들 부부에게 이번 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힘든 旅程(여정)의 길목에서 조용히 생각해 본다.

지나온 날들과 남은 나날들의 의미도 되새겨 보면서

눈 높이가 맞지 않는다고, 느낌의 코드가 다르다고 늘 불평했었는데......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돈만이 아닌 그 무엇도 함께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이것을 나의 남은 인생의 과제로 삼아야겠지요.

오늘 아내와 함께하는 동행의 자투리 시간들이, 그리고 남은 날들의 의미를

통장에 넣어야지...... 

그리곤 삶이 허무하다고 느껴질 때 꺼내 봐야지.

 

2007. 03.20

청 산 전 치 옥 씀.

 

흐르는 곡은 트럼펫 연주곡인 '석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