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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지리산을 그렇게 멀리 할 수 없었다

by 청산전치옥 2007. 5. 13.
 
지리산을 그렇게 멀리 할 수 없었다
(바래봉과 팔랑치 철쭉의 화원에서) 
 
 
-언제: 2007년 오월 열이틀

-어디를: 지리산 바래봉 철쭉나들이

-누구와: 청산부부
 
 
 
그리움
 
 
희뿌연 황사비가 흐린 하늘을 가득 덮었다.
 
아직도 눈앞에는 작년에 왔던 연분홍 꽃 길로 마음이 채워졌건만
 
그리움 하나 만들고 그리움 하나 남겨 주려고 나 이곳까지 왔는데
 
무심한 하늘은 내 마음을 몰라주고 시샘을 한다.
 
 
 
일상의 스침 속에서 어떤 사물을 보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물에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본다. 아마 그 속에 스며있는 따스한
 
사랑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일에 몰두 하다가도 문득 스치는 그리움의 연정
 
예쁜 꽃을 보면서 오버랩 되는 아련한 추억들,
 
서울의 관악산과 북한산에서도
 
무심코 길을 걷다가도 떠오르는 얼굴들
 
그 그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 가는데…… 
 
 
 
 
 
 
올 봄부터 유독 이도 곱게 물든 쌍계사의 벚꽃이며
 
아기자기 피어 오르는 지리산하의 야생화의 꽃 소식과
 
온 산하를 붉은 색으로 도배했다는 진달래의 화음을 뒤로하고라도
 
정녕 놓칠 수 없는 철쭉의 향연에서 진한 그리움을 토해놓고 싶었다.
 
 
 
이런 그리움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행복한 삶의 한 부분이리라.
 
아픔도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무뎌지는 것일까?
 
무뎌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이 메말라간다는 뜻이리라 하는
 
생각에 활짝 가슴을 열고 그리움의 대상을 찾아 떠난다.
 
분명 그 무뎌지는 그리움이 사그라지기 전에……

 


 
 
 
이번 토요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리산의 흙 냄새라도 맡고 싶었다.
 
프로젝트 관련하여 지리산을 멀리한지가 자그마치 한 달이 다 돼간다.
 
가끔씩 날라오는 문자 메시지와 핸폰을 받아보면서
 
또는 이곳 사이트에서 바라보는 님들의 산행모습에
 
마음은 콩 밭에 가 있었으니 그리고 어느새 그리움이란 대상을 만들었다.
 
물론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움이지만……

 
 
 
 
비가 오는데 산에 갈 거여요
 
지금, 무슨 소리야 산에 간지가 언젠데……’
 
아침부터 아내와 티격태격 하는 사이에 아들놈이 은근히 끼어든다.
 
아침부터 왜 싸우시는 거여요하는 사이에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 11까지 일에 시달리다가 모처럼 집에 오면 쉬면서
 
보내지 하는 아쉬움에서 분명 하는 말이라는 것을 내가 왜 모를까.
 
더 이상 말없이 배낭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지리산을 향해 달릴수록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는다.
 
옆에 앉아 있는 아내는 몹시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애초에 주 능선을 거닐며 반야봉을 찍고 산행을 마무리 하려 했으나
 
코스변경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래봉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라리 배낭을 차에 남겨두고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각각의
 
우산을 받쳐들면서 그렇게 비가 내리는 많은 사람들 중에 끼어들었다.

 
 
 
힘겨운 산행이 될까 봐 고도를 높일수록 쉼의 반복이 되간다.
 
저 만치 따라오는 아내를 뒤로 하면서 아침 일을 뒤돌아본다.
 
그렇다.
 
어쩌면 일주일 내내 남편만 기다리다가 모처럼 같이하고 싶은 심정을
 
몰라주고 홀로 산행을 하려고 하였으니……
 
바래봉과 팔랑치로 나뉘는 삼거리에 도착해서야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한 손에 우산을 받쳐들고 한 손에 카메라 샷터를 눌러댄다.
 
바래봉이야 뭐 볼 것은 없지만 아내를 위해서 다녀오기로 하다.

 
 
 
 
바래봉 정상에서 운무로 가득한 주변 모습을 바라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터 오르는 것 같았다.
 
열심히 아내에게 주변 설명을 하지만 알았는지 모르는지 연신 고개만 끄덕인다.
 
질퍽거리는 바래봉능선을 따라 팔랑치를 향해간다.
 
때로는 우산과 우산의 부딪음으로 때로는 질퍽거리는 땅바닥에
 
주저 앉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깔깔거리는 모습들이 더 인상적이다
 
아마 비가 와서 다행이지 않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으니

 
 
 
 
팔랑치에서
 
참 아름다운 자연이다.
 
초록빛과 철쭉의 화음 속에 운무의 색깔을 덧칠했으니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기는 처음이다.
 
저 아래 팔랑마을과 부운마을로 펼쳐지는 운무의 향연 속에
 
넋을 빼앗긴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비록 오늘은 비가 내리지만 내일은 더욱더 초록의 생명력이 짙푸르게
 
나타나 너울너울 춤추며 꽃들의 잔치마당인 이곳 지리산 팔랑치에도
 
꽃 화음의 전주곡이 퍼져 가리라.

 
 
 
 
<기쁜인연을 만나다>
 
팔랑치 언덕배기에서 열심히 샷터를 눌러대는 낯익은 사람
 
혹시 하면서 실례를 무릎 쓰고 한방 날리려고 하는데
 
! 이사람 기쁜인연 아우가 아닌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방긋 웃으며 찾아오는 인연 그것은 바로 기쁜인연이었다.
 
지리산을 매개로 나와 같이 인연을 같이 한 사람
 
오늘도 그 얼마나 지리산을 열심히 사랑하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갖고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 그냥 내려왔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다음에 지리산에서 기쁜인연으로 만납시다.

 
 
 
인연아우와 헤어지고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또다시 어두운 색깔을 뒤 집어 쓰고 능선을 향해간다.
 
배도 고파오고 이제 아무래도 그냥 내려가야 할 듯 하구나.
 
지금까지 무사하게 산행을 하던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결국 진흙탕 언덕배기에서 굴러 넘어진 것이다.
 
다친 곳은 없어 다행이지만
 
차마 웃을 수도 없고 하여 지금 이 산행기를 쓰면서 웃고 있다.
 
산덕리를 향해가는 포근한 오솔길은 오히려 밝기가 너무도 포근했다.
 
인적 없는 이 한적한 길은 평소에는 비 지정으로 묶여 있다가도
 
이때만큼은 항상 풀어 놓은 한적한 길이다.
 
주변에 많은 야생화가 눈에 들어 오지만 차에 놔 두고 온 실수를……

 
 
 
<에필로그>
 
우리네 인생사
 
살다 보면 우리들의 삶에 오늘처럼 소나기를 만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다툴 수도 있다.
 
실연이라도 소나기도
 
이별이라는 소나기도
 
때로는 어떤 미움으로 다가오는 소나기 등등……
 
오늘도 나는 왜 하필 비가 내리는가 하고 불평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분명 나는 오늘 빗방울의 전주곡이 있지 않았는가
 
실연과 미움을 통해 사랑을
 
이별을 통해 소중함을 나에게 가리켜 준 교훈들.
 
그리고 오늘 비기 아니었다면 어찌 이런 운무의 비경과 어우러진
 
지리산의 꽃 화음을 기쁜 인연으로 만날 수 있었겠는가?
 
오늘
 
또 다시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끈끈한 가족애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때늦은 점심을 차 안에서 맛있게 먹으면서 산행을 마칩니다.
 
2007. 05.13
 
청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