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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山 戀歌

반야봉, 초가을 아침 풍경

by 청산전치옥 2014. 9. 17.

반야의 초가을 아침에

 

 

 

-일시: 2014 9 10

-다녀온 흔적: 반야봉

 

 

 

반야에서 쓰는 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을 채웠네요

그 때 몸서리치도록 운해의 광란 속에 7월 여름이었죠

그 뒤 반야만 오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의미의 날들

그 때 간절한 소망 하나 말하지 못하고

떠나 오면서 뒤 돌아 보고 또 돌아보면 흘리던 눈물이

지금은 가을의 문턱에 서서 무심한 하늘만 쳐다 보고 있네요

 

 

 

이른 새벽 오늘도 마빡에 불 밝히면 반야에 오릅니다.

성삼재 지나 노고단 길목에 정확히 3시 못되어 도착하지만

국공의 노고단 지킴이는 어김없이 나타나 나의 동태를 살피더니

"종주 하시는 겁니까"

'네 종주 하는 사람입니다'

기어이 선뜻 큰 배려를 하는 듯이 3시 조금 못되어 문을 열어준다.

 

 

 

 

 

흑과 백의 조화 속에 어둠을 가른다.

추석 연휴라지만 마지막 날이라서 인지 산 객이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암흑 천지다.

성삼재 도착했을 때만 해도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별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노고단을 지나면서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흑색의 천지다.

 

 

 

불빛에 빛나는 하얀색은 분명 구절초 내지는 쑥부쟁이 일거고

검붉은 색으로 나오는 산오이풀은 분간을 못할 지경의 어둠의 반야길

무슨 청승으로 그 어떤 희망으로 이렇게 오르는지

열정 하나 빼면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더냐

우리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 무엇인가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 속에 자신의 삶의 보람과 빛나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구상나무와 잣나무 숲길에 반갑게 맞아주리라 생각했던 달님은 이내 꼬리를 감추고

무심한 검은 새털 구름이 내 머리 위에 맴돌고 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돌아 봐도 나 혼자 뿐

싸늘한 바람만이 초가을의 분위기를 더 하는 듯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가늘게 떨리는 풀 줄기의 흔들림과 내 발자국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른 가을 아침을 노래하는 새소리의 하모니

그렇게 반야의 초가을을 알리는 시간들 속에서

지리산에 내가 있고 내 맘 속에 지리산이 있다는 분명한 사실 하나...

 

 

 

반야봉의 아침

이내 보여주지 않을 듯 한 날씨는 바람으로 검은 구름을 밀어내더니

억겁을 질러 거룩한 담금질처럼 황금 일출은 시작된다

천왕에서 시작되어 이어지는 산그리메들은 황금 불빛을 받아내는 듯 열기가 달아 오른다

검붉은 햇덩이 뒤로 립스틱 색상 같은 연홍의 파장이 출렁이고 있다

~ 어쩌면 저렇게 고운 빛깔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랑스런 누이들의 입가에서도 옛 여인들의 입가에서도 볼 수 없는 그 빛...

 

 

 

 

 

반야의 정상도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정상석 주변에서 인위적으로 휘둘러진 칸막이가 내 키만큼이나 솟아있어 꼴불견의 단편이다

그렇게 찬란했던 아침도 해가 솟자마자 곧바로 짙은 연무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능선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서둘러 내려가라는 뜻인가

그렇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질 때 꼭 다시 찾으리라...

 

 

 

 

 

2014 9 10

.사진 청산-전 치 옥/지리산 반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