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초가을 아침에☆
-일시: 2014년 9월 10일
-다녀온 흔적: 반야봉
반야에서 쓰는 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을 채웠네요
그 때 몸서리치도록 운해의 광란 속에 7월 여름이었죠
그 뒤 반야만 오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의미의 날들
그 때 간절한 소망 하나 말하지 못하고
떠나 오면서 뒤 돌아 보고 또 돌아보면 흘리던 눈물이
지금은 가을의 문턱에 서서 무심한 하늘만 쳐다 보고 있네요
이른 새벽 오늘도 마빡에 불 밝히면 반야에 오릅니다.
성삼재 지나 노고단 길목에 정확히 3시 못되어 도착하지만
국공의 노고단 지킴이는 어김없이 나타나 나의 동태를 살피더니
"종주 하시는 겁니까"
'네 종주 하는 사람입니다'
기어이 선뜻 큰 배려를 하는 듯이 3시 조금 못되어 문을 열어준다.
흑과 백의 조화 속에 어둠을 가른다.
추석 연휴라지만 마지막 날이라서 인지 산 객이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암흑 천지다.
성삼재 도착했을 때만 해도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별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노고단을 지나면서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흑색의 천지다.
불빛에 빛나는 하얀색은 분명 구절초 내지는 쑥부쟁이 일거고
검붉은 색으로 나오는 산오이풀은 분간을 못할 지경의 어둠의 반야길
무슨 청승으로 그 어떤 희망으로 이렇게 오르는지
열정 하나 빼면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더냐
우리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 무엇인가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 속에 자신의 삶의 보람과 빛나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구상나무와 잣나무 숲길에 반갑게 맞아주리라 생각했던 달님은 이내 꼬리를 감추고
무심한 검은 새털 구름이 내 머리 위에 맴돌고 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돌아 봐도 나 혼자 뿐
싸늘한 바람만이 초가을의 분위기를 더 하는 듯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가늘게 떨리는 풀 줄기의 흔들림과 내 발자국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른 가을 아침을 노래하는 새소리의 하모니
그렇게 반야의 초가을을 알리는 시간들 속에서
지리산에 내가 있고 내 맘 속에 지리산이 있다는 분명한 사실 하나...
반야봉의 아침
이내 보여주지 않을 듯 한 날씨는 바람으로 검은 구름을 밀어내더니
억겁을 질러 거룩한 담금질처럼 황금 일출은 시작된다
천왕에서 시작되어 이어지는 산그리메들은 황금 불빛을 받아내는 듯 열기가 달아 오른다
검붉은 햇덩이 뒤로 립스틱 색상 같은 연홍의 파장이 출렁이고 있다
아~ 어쩌면 저렇게 고운 빛깔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랑스런 누이들의 입가에서도 옛 여인들의 입가에서도 볼 수 없는 그 빛...
반야의 정상도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정상석 주변에서 인위적으로 휘둘러진 칸막이가 내 키만큼이나 솟아있어 꼴불견의 단편이다
그렇게 찬란했던 아침도 해가 솟자마자 곧바로 짙은 연무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능선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서둘러 내려가라는 뜻인가
그렇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질 때 꼭 다시 찾으리라...
2014년 9월 10일
글.사진 청산-전 치 옥/지리산 반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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