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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기다림이 보여주는 지리산 중봉의 아침

by 청산전치옥 2011. 1. 22.

 

기다림이 보여주는 지리산 중봉의 아침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날도 있었노라고

 

이곳이 지리산의 겨울 새벽이라고......

 

-지리산 중봉에서-

 

 

 

 

-언제: 2011.1.18~19

-어디를: 지리산 중봉

-누구와: 나 홀로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단어를 올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새벽이었습니다.

그렇게 북풍 한설이 몰아치는 이른 새벽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얻겠노라고 카메라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장터목을 떠나는지

마빡에 불 밝혔다지만 코 앞에 떨어지는 초라한 불길을 걸으면서

몇 번이고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어차피 인생은 일방통행이다라고

 

 

 

 

하필이면 오늘이 뭐야하고 자신에게 책망을 해 봅니다.

그렇게 좋은 날씨 두고 어제 출발할 때부터 좋지 않았으니까.

청명한 하늘색을 볼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우선 바람과 추위와 맞장을 떠야 한다는

그것도 모르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는 심보로 지리산에 들었지요.

제석봉 저녁노을과 중봉 일출이라……

 

 

 

, 3개월 입니다.

지난해 1020일 천왕남릉 산행시 무릎을 다친 뒤로 산행다운 산행은 처음입니다.

병명은 내측측부인대와 전십자인대 파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시간이 흐르면 낳겠지

하면서 하루 이틀을 보냈지만 결국은 좋아지지 않아 거의 한 달이 지난 후에서야

전문적인 치료와 재활단계를 거쳐 엊그제 지리산 필생기로 바래봉 한바리 한 후

괜찮다고 판단되어 드디어 12일 천왕봉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한창 여물어가는 단풍과 지리산 눈 소식은 솔직히 괴로웠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겨울 내내 지리산에 눈이 오지 말았으며 하는 마음도 가졌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산사람들도 멀어지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 그들을 멀리하는 그 두려움이 가장 컸었습니다.

생각하면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평범한 진리도 알게 됐고요……

 

 

 

아직 온전하지 않은 무릎이지만 그래도 지리산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조심스럽게 백무동에서 서서히 아주 천천히 고도를 올립니다.

참샘을 지난 뒤로부터 기온이 급강하를 하더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이런 날씨일수록 운해까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은 바빠지더니 이내 그 버릇이 또 도집니다.

 

 

최대한 배낭무게를 줄인다고 몇 번이고 삼각대를 넣다 뺏다 하다

카메라 장비만은 어떻게 할 수 없어 꾸리고 나니 무게가 만만치 않네요.

엊그제 산돌림의 발열내의글을 봤는데 그 생각이 납니다.

산행 중 더워서 입고 있던 내의를 꾸리면서 또 헛웃음이 나오네요

아픈 주제에 4시간 못 미쳐 올라왔으면 빠른 편이지만 제석봉 저녁노을은 허 당입니다.

 

 

그래도 행여 몰라 카메라만 들고 제석봉을 올라봅니다.

갑자기 엊그제 탐구산행 팀들이 되돌아 왔다는 그 바람을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래도 제석봉 데크까지만을 고집 하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사진 4장 박고 왔습니다

이제 내일의 기상상황은 천주님께 빌 뿐이고

정말 오랜만에 대피소의 비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루를 유 하게 됩니다.

 

 

 

새벽 5시 못 미쳐 장터목을 출발 합니다.

이번에는 발열내의까지는 꼭 챙겨 입고

희망 없는 인생은 없다는 진리와 같이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중봉으로 향합니다.

북풍한설 불어오는 바람에 산길은 때로는 다져지고 없어지고

누구 한 명도 나서는 이 없는 차가운 북풍 한설을 맞으며 인생길 일방통행을 합니다.

이따금씩 폐부로 흡입되는 새벽 한기를 마시면서

다시 거친 숨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나의 터벅걸음은 희망이다라는 끈을 놓지 않습니다

 

 

천왕에서 중봉으로 내려서는 사면에서 한바탕 보기 좋게 덤불 링 합니다.

다친 데는 없어 다행이었고 너무 일찍 도착한 중봉에서 시간을 지켜 보지만

대륙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어찌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도 좋지만 우선 손발 시럽을 감당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혹 모를 찰나의 순간을 담으려고 삼각대를 거치합니다.

 

 

 

순간의 광풍이 불어오다가 이내 중봉 주변으로 불바다를 이룬 것도 잠시

결국 삼각대 헤드를 움직이려는 순간에 아름다운 섬광의 광영은 칼바람과 함께 사라지는가

이윽고 한 줄기 불 칼의 섬광이 번쩍인다.

마치 태양이 구름을 뚫고 비상하고 있는 것처럼……

 

 

또 다시 북풍의 칼바람을 피해 적당한 곳 한 켠에서 기다림의 희망을 그려 봅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살아오는 동안 기다림은 계속 되겠지요

막막할 땐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공들인 기대만큼 어떤 보람이 오기를 기다리지요

칼바람이 부는 순간에서도 나는 저 구름을 거쳐가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군요.

 

 

미칠 듯이 중봉에서 샷터놀음을 마치고 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하늘색을 드러냅니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우리가 알겠습니까마는

다만 우리는 그 변화무쌍한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거스르지 않은 평범한 산 꾼에 불과 합니다.

지리산, 이대로의 모습이 좋으니 그대로 놔 뒀으며 하는 작은 바램을 덧붙여봅니다.

 

 

왔던 길 발길을 돌려 배낭꾸러미를 찾으러 장터목으로 향합니다.

잠시 천왕에 들러 엊그제 다녀간 탐구산행 팀들을 생각하며 몇 개의 각자를 담아봅니다.

아직도 잠자지 않은 바람은 새벽 보다는 약해졌지만 상석을 붙잡지 않고는 버텨낼 수가 없네요

다시 왁자지껄 요란한 장터목에 도착하여 늦은 아침식사를 먹으면서 산행을 정리 해 봅니다.

 

 

 

새해라 명명한 시간이 한참을 지났지만

남들이 하는 새해 지리산 일출을 하지 못해 늦게야 지리산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날이 그날이지만

지리산과 다른 곳의 일출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부로 새로운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열어가겠습니다.

여러분도 한 해 열심히 뛰시고 건강하시길 빌면서 산행기를 마칩니다.

 

2011. 1. 19

청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