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리움의 끝은 어디에(천왕봉)
일시: 2014. 2. 2 ~ 2. 4
1일째: 중산리~ 장터목
2일째: 일출봉 ~ 장터목 ~ 천왕봉 왕복구간
3일째: 장터목 ~ 천왕봉 ~장터목 ~ 중산리
누구랑: 나 홀로
한 때는 앞만 보고 산행을 했었지
사진을 알고부터 모든 사물을 다시 보고 여유를 느끼는 느림의 미학
3일간 느림의 行步(행보)가 지리산에서 시작됩니다
3일간 묵을 양식과 카메라 장비를 챙기니 무게가 만만치 않아 법계사 버스를 기웃거려 본다
가는 불자가 없어 13시 출발이란다.
입구에서부터 어디를 가느냐고 공단 아저씨들 한 소리씩 거듭니다.
칼바위 못 미쳐 벌써 땀이 범벅이 되어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반팔차림으로 산행은 시작되더니 이내 3시간 넘어 장터목에 닿는다
오후 4시를 갓 넘긴 시간이지만 주변이 어둠으로 흐려있었고
고도를 올렸다는 이유로 차가운 북풍이 스멀스멀 몸을 식힌다.
벌써 방송으로 수 없이 반복되는 소리
예약이 되지 않은 산 객들은 빨리 하산을 재촉하라는 내용의 안내방송...
希望(희망)
인생은 꿈을 찾아가는 여행이라 했지요
살아 간다는 게 희망의 노예가 되지만 그 희망은 기다림과 그리움이기도 하지요
수 없이 지리산을 드나들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으로 담아 내다
이제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는 자신의 극성이 때로는 도를 넘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물러서기까지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일기예보와는 아주 반대의 기상을 보이고 있는 지리산에서
내일을 향한 희망의 끈을 애인 기다리는 심정으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2일째
아침 일찍 일어날 이유도 없습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보조배낭 들쳐 메고 천왕봉쪽 마실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서서히 기온이 내려가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처음으로 3시간 이상을 버텨봅니다
수 많은 번민이 가슴을 울리고 떠나기를 반복 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여정
쉼 없이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 갈 미지의 삶...
★지리산과 함께하기 위하여...★
올 들어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닷가 몽돌 밭에서 일출을 보았을 때
지리산이 내 곁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 찾아
남쪽 한라의 폭설에 빠져들고
덕유의 향적봉에서 날밤을 세던 날
지리산이 떠나버린 것을 몰랐습니다.
서러운 달빛을 담고
눈꽃이 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지는 저녁노을 S라인을 앵글에 담을 때
지리산과 함께했던 나는 지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변 모든 사람들과 희희낙락 거릴 때
나에게 다가오는 사랑은 의미를 잃고
그때서야 박 배낭을 추켜 메고 지리산 천왕에 서 있었습니다.
멀어져 간 지리산과 함께하고 싶어서...
2014. 02. 03
"청산의 바람흔적"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점심은 무슨 점심일까.
점심은 생략하기로 하고 몸을 추켜 세우며 장터목 찍고 일출봉을 향해 걸어 갑니다.
일출봉에서 또 다른 默想(묵상)이 시작됩니다.
시간 때우기 쎌카놀이는 천왕에서 시작하여 이곳에서도 이어 집니다.
이윽고 제석봉에서 반야 넘어 기울어가는 저녁노을을 담아 보면서 하루 해를 보냅니다
3일째
기온은 급강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침 기온이 영하 18도를 넘기고 있습니다.
칼바람이 행여 그치지 않을까 숨죽여 침낭에서 아침을 기다려 봅니다.
이내 몸을 단디하고 내복까지 챙겨 입고 중봉을 향해 갑니다.
제석봉 허허벌판을 지날 때 아니다 싶어 다시 되돌아 제석봉에서 아침을 맞기로 합니다.
제석봉 이정표 주변이 바람 막아주는 최상의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도 추운 날씨인데도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도 밝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렇게 많던 고사목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제석봉
도벌 꾼들의 만행으로 저질러진 이곳 제석봉이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어버린 현실
탐욕에 눈 먼 인간들의 자연 파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제석봉이지만
지금 이른 새벽 제석봉 고사목이 별 빛 실루엣의 아름다움으로 다가 옵니다.
긴 기다림
아름다움을 잉태하기 위하여 그렇게 칼바람은 불어줘야 했나 봅니다.
세상 천지에 기다림 없는 결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간을 전제하지 않은 기다림은 의미가 없듯이
오늘을 기다리는 보람이듯이 깐깐한 성취의 아침을 맞이 합니다.
자연의 순조로운 순환에 기여하는 아름다운 기다림의 잉태...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런데 막상 앵글에 담으려는 마음은 있는데 차마 추워 어떻게 할 수 가 없었다.
2~3컷 찍고 다음을 기다리고 그러는 사이 해는 이미 올라와 버리고
마음은 바빠지며 두 손 호주머니에 넣고 우두거니 하늘만 바라볼 뿐
그렇게 환장할 아침의 제석봉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 세월이란 밧줄에 끌려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끌고 올라 갈 것인가의 몫은 나의 산행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식지 않은 지리산의 열정은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2014. 02. 02~ 04 지리산에서
글 사진: 청산 전 치 옥 씀
'智異山 戀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설(春雪)그리고 성재봉(聖帝峰) 산행) (0) | 2014.03.17 |
---|---|
돌발사고와 바래봉의 상고대 (0) | 2014.02.16 |
내가 지금 행복한 이유(노고단에서) (0) | 2013.12.26 |
중봉의 가을 (0) | 2013.10.08 |
왕시루봉의 아침운동 (0) | 2013.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