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그리움(중봉 산행)
-일시: 2013. 10. 3~ 4
-어디를: 윗새재~ 치밭목~ 써래봉~ 중봉 왕복구간
-누구랑: 나그네. 산죽. 잉꼬. 시골처녀. 여우사이
생각지도 않은 산행을 벼락산행이라 해야 할까요
산행 전날 나그네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지리산 갑시다"
'안됩니다, 저는 근무 입니다'
"내일 꼭 오이소" 하면서 전화는 끊겼다
개천절
날씨도 날씨려니와 올 지리산 중봉 단풍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과연 어떤가 하는 의아심
써래봉 단풍 상황은 어떤지도 알고 싶지만
무엇보다 더 아마도 사람이 그리웠을 게다
지난번에 함께했던 산 친구들도 보고 싶어 퇴근하자 마자 곧바로 배낭을 꾸리며 집을 나섭니다
치밭에서 묵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윗새재 적당한 곳에서 묵을 계획으로 차를 거칠게 몰았습니다
치밭쪽 아는 지인들에게 문자를 넣었는데 아직도 답이 없는 것으로 봐서 그들도 그곳에 있을까
그 기대를 예상하면서 덕산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출발한다.
6시 15분 윗새재 출발
잠시 뒤 마빡에 불 밝히며 고행의 산행은 이어집니다
앞만 보고 가는 산행이라 8시 5분전에 치밭에 닿았습니다.
그 때도 혼자 걸었습니다.
아득한 새벽 길 마다 하지 않고 그렇게 혼자 걸었습니다.
행여 넘어져 다칠까 두려워 하면서
때로는 어둠의 공포를 마다하지 않고...
칠흑 같은 밤,
두려움이 홍수처럼 몰려오는 밤
어둠 속을 헤드 랜턴 하나에 의지하고
첫새벽의 광명천지가 열리는 선천개벽을 보겠다고
그 때 그 그리움 때문에 오늘도 혼자 걸었습니다.
내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설마 했는데 문자 넣은 그 사람을 어둠 속에서나마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별빛 시린 영롱한 치밭 밤하늘과 산 사람들이 좋았고
내일을 기다리는 어린애 마냥 마음의 풍선은 부풀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가 싶더니만
수 십 번 뒤척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새벽 3시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어둠의 산길을 걷습니다
정겨운 산 친구들과 맞춰 걷는 밤하늘에 어렸을 때 보았던 수 많은 별들의 속삭임 속에서도
진주 시가의 화려한 불빛과 산청분지의 아련한 불빛이 대조를 이룹니다.
써래봉의 잠시 여유도 어둠으로 묻혀 버리고 보이는 것 희미한 천왕의 위용과 중봉의 그림자.
철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오를 때면 손바닥에 전해지는 찬기가 오히려 좋았습니다.
11개의 철 계단을 언제 오를까 싶었는데 어느덧 중봉에 와 있었습니다.
잠시 후 중봉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밤새 참았던 광명이 터 오르면서 세상은 빛으로 출렁입니다.
얕은 흔적만 남기고 우리들 시야에 사라져 버리는 아쉬운 운해지만
대신 끝없이 펼쳐지는 산그리메 속에서 황홀한 오르가슴을 느낍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내 곁을 멈춰버린 시간들 뿐......
사념(思念)에 끈을 달아 연을 날리듯
사랑하는 이에게 황홀하고 고요한 중봉의 아침 그림을 띄웁니다.
자, 이제 내려 갑시다.
함께하는 어떤 이 하봉으로 가자
천왕봉과 투구봉을 보고 오자는 등...
그런 욕심을 물리고 어둠의 써래봉을 보지 못한 이유로 다시 올랐던 그 길을 내려 섭니다.
오를 때 느낌과 내려서는 느낌의 감흥이 다르듯이
써래봉 가을은 고도 1500까지 그렇게 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다음 쉬는 날 한번 더 오자"
함께하신 산 친구들 수고 하셨습니다.
2013. 10. 04
글 사진: 청산 전 치 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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