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상백운암 명성은 어디에...
어제는 만복대에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맘 먹고 모처럼 백운산을 찾기로 했다.
늦은 오후 유난히도 폭염은 그칠 줄 모르지만 핸들을 백운산으로 돌렸다.
저녁 겸 아침용으로 간단한 옥수수 빵과 옥수수 2자루를 옥룡계곡 입구에서 샀다.
백운사에 차를 파킹하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왜 이리 더디는 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그래도 올라야 할 백운산
그렇게 비지땀을 흘리면 올랐는데 보여주는 풍경은 없다.
긴 아쉬움에 오늘 기거할 내 작은 집을 짓는다.
헐~ 그런데 매트를 챙기지 못한 불상사......
주변 잡초를 뜯어 타프 아래 뉠만한 공간을 마련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게 퇴색되어버린 하늘은 이제 아래의 밝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적막하고 고독한 밤이 이어진다.
몇 수십 번의 몸을 뒤척이다 마음 줄 공간을 찾는가 싶더니
이내 슬피 우는 풀벌레 소리에 그만 잠을 깨고 말았다.
그렇게 허무한 밤을 보내고 기어이 아침은 짙은 안개와 함께 열리기 시작하더니...
아침은 먹을게 없다.
그래도 배낭 구석진 곳에 놓여진 커피 한 봉지를 발견하고 맛있게 커피타임을 갖는다
젖은 타프와 주변을 정리하면서 하늘이 열리기를 기대하지만...
남는 게 시간이라고 그 동안 벼르고 별렀던 상백운암을 들르기로 하다.
아마 기억으로 2~3번 가 본적이 있었던 희미한 기억뿐이다.
이윽고 상백운암에 닿는데 스님이 갑자기 부엌으로 달음질 한다.
내 마음을 알기라 하듯이 큰 사발에 가득 물을 부어 나에게 건네는 인정이 가슴에 닿는다.
그렇게 스님께서는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도량이 버릇처럼 돼 버렸는가
다음은 정륜스님께서 저에게 건넨 불교신문에 기고된 상백운암 관련 내용을 요약해 본다.
상백운암
상백운암은 백운사의 산내 암자로 제19교구 화엄사 말사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상백운암은 백운산의 정맥이 삼존불 봉황의 둥지 터를 형성했다고 하여
주천하지(周天下地) 제일도량으로 불렸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처음 움막을 짓고 수행한
이래로 1181년(명종11년)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중창하고 혜심국사 진각스님이
법을 인가 받았다고 전해진다.
광양 상백운암의 인법당 현재 모습
조선시대에는 1437년(세종 19년) 다시 중창했으나 1597년(선조30년)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되고 1638년(인조 16년)에 다시 세워졌다. 이후 1792년(정조16년) 법운화상이 중건하고
1843년(헌종9년)에 중수했으며 1872년(고종9년)에 법운선사가 다시 대규모로 중창했다.
1914년 눌암스님이 사재를 털어 다시 재건했으나 1948년 여순사건으로 경찰에 의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57년 구산스님이 임시 인법당을 지은 이래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상백운암은 조선조에는 팔도도총섭 벽암각성, 회은응준, 호암약유 선사가 수행했으며 근래에는
금오스님, 구산스님, 활안스님 등 수많은 고승 대덕들이 정진한 천년 수행성지로 회자되고 있다.
가는 길
백운사에서 산길을 따라 도보로 약 1시간여를 오르자 낡고 오래된 양철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 눈에 보기에도 낡고 허름한 건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의 벽면과 여기저기 널린 깨진 기와장과 나뭇가지들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건물 뒤로 보이는 바위절벽. 이곳이 절임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한다.
주변에 무성하게 돋아난 잡초와 돌들은 문명의 이기를 비켜가기라도 한 듯
과거의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8월19일 찾은 광양 백운산 정상 아래 위치한 상백운암.
신라시대 이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 대덕들이 용맹 정진했던 수행 처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요사체 현재의 모습
한국 불교 역대조사들의 수행 발자취가 오롯이 서린 광양 백운사 내 산내암자인
상백운암이 폐허 직전의 상황에 놓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내 곳곳에선 오랜 세월 비바람의 영향으로 지붕에서는 물이 새고 기둥은 썩어 있었다.
여기에 지난해 태풍피해까지 입어 벽은 균열이 가있거나 무너지는 등 크고 작은 생채기의
흔적들이 역력했다. 하지만 복구는 엄두조차 할 수 없다.
해발 1040m의 고지대까지는 차량진입이 불가능해 건축 자재의 운반이 어렵기 때문이다.
백운사 대웅전
2년 전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돼 전기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이 전등을 대신했다.
또한 기본적인 연료나 식료품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의 조달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상백운암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수행자가 있다.
주지 정륜스님이다.
스님은 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계룡산 대자암 무문관에서 3년 결사를 회향했다.
이후 전국의 제방에서 수행하다 직지사 천불선원 하안거 결제를 마치고 3년 전
상백운암으로 들어왔다. 스님은 현재 이곳에서 홀로 수행정진하며 화두를 들고 있다.
말이 쉬운 일이지 모든 것이 열악한 산간 중턱에서 수행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스님은 한 가지 목표가 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명실공히 상백운암의 재조명과 중흥이다.
정륜스님은 상백운암의 복원에 팔을 걷으며 옛 명성 되찾기에 나서고 있다.
스님이 생각하는 상백운암 복원의 밑그림은 폐허 직전에 놓인 인법당과 요사채의 개축,
공양간, 조사전(영정각)을 신축하는 것. 다행이도 스님의 복원 노력에 힘입어 올해
전남도와 광양시가 3억원의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스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지나는 등산객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신다고...
하지만 지원금만으로는 상백운암의 완벽한 복원은 사실상 어렵다.
인법당 한 채만 가까스로 불사할 수 있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스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사채와 공양간, 조사전 복원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대 걸림돌은 운송비다. 지리적 특성상 건축 자재들을 인력으로 운반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 때문에 헬기 외에는 특별한 운송 수단이 없어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건축자재비와 인력비까지 한정된 금액으로는 모든 것이 힘든 상황이다.
이에따라 상백운암의 복원을 위해서는 사부대중의 동참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주지 정륜스님은 “상백운암은 호남정맥의 최고봉인 백운산에 자리해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지리산
상무주암을 갑천하길지(甲天下吉地), 상백운암을 주천하길지(周天下吉地)라 했다”면서
“종교를 떠나 역사 유적과 한국 불교문화의 원형인 상백운암 복원에
사부대중 모두가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2013. 8. 19
광양 백운산 상백운암에서...
'일반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대둔산 (0) | 2013.10.31 |
---|---|
억새 은빛 축제인 천관산에서... (0) | 2013.10.23 |
진달래 없는 주작산 (0) | 2013.04.14 |
3월30일 영취산 진달래 개화상태 (0) | 2013.04.01 |
대신 달려간 백운산 (0) | 2013.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