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칼 바람
"쾌락에는 교훈이 없지만
고통에는 언제나 깨달음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 아직도 기다림의 날들은 남아 있을까.
내 정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던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란 말인가......
-일시: 2013. 1. 25~26
-어딜: 중산리~천왕봉~장터목(1박)~천왕봉~장터목~세석~의신마을
-누구랑: 첫날: 토목. 지다람. 바다/2일: 나 홀로
최근 들어 주말이면 어김없이 날씨가 좋지 않았던 올 겨울
날씨 타령만 할게 아니라 일단 금요일 휴가를 내고 함께할 수 있다는 산 친구들과 약속
"형님, 카메라만 챙겨오세요"
항상 그랬듯이 나와 함께하는 그들은 상대를 배려하는 편안한 사람들
첫날은 그렇게 기댈 수 있지만 둘째 날과 3일째는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한다
배낭 무게의 압박 때문에 어렵게 산장 예약을 대기 순번에서 턱걸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천왕봉을 향해 달려 간다.
"형님, 날씨가 너무 춥고 바람이 붑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만 두자는 내 말을 듣고 싶기라도 하듯이 몇 번이고 되묻는다.
"그럼, 그만 두자"
"아니요, 이까짓 것 추위 때문에......"
스스로 위안을 찾으며 중산리에 도착하여 산행 출발을 하는데 장난이 아니다.
좀더 오르면 바람이 자겠지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이어지는 칼 바람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하고 로타리에서 잠시 요기를 하고 천왕으로 고~~고
4시간 못되어 천왕 동릉 안부에 점심상을 차렸다.
또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 장터목이 아닌 이곳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쪼개지기로
천왕봉 상석에 입맞춤하고 칼바람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각자로 쪼개진다.
이제부터 홀로 여유 있는 산행이자 샷터 놀음이다.
장터목까지 3시간에 거쳐 요령 있게 시간 활용을 해야 한다 ㅎㅎ
5시에 내 자리 번호를 배정 받고 카메라 메고 제석봉으로 오른다
아~이고 나 죽겄소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장터목 주변을 맴돌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정말 미치겠다.
코고는 비음 때문에 자다 일어 났다 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몇 번이고 밖을 내다 보지만
좀처럼 바람이 자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잠이나 더 자기로 한다.
그래도 천왕 일출을 보겠다고 부지런 떠는 사람들
"어~ 혹시 **회사에 다니는 누구 아니세요"
저녁 내내 옆자리에서 함께 자고도 몰라봤던 울 회사 직원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ㅋㅋ
중봉으로 갈까 하다가 일출은 어차피 볼 수 없을 것 같아 천왕에서 서성거린다.
북사면에서 부는 칼 바람을 어찌할 수 없어 한 켠에서 해 떠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일출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을 무렵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게으른 태양
구름 사이를 몇 번 넘나들더니 이내 천지가 개벽하듯 늦게야 순광이 퍼져 온다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아 있기에 천왕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한 장 박아주소" 하면서 내미는 스마트 폰
장갑 낀 손으로 작동을 할 수 없는 스마트 폰 이기에 칼 바람에 고역이다.
"한방만 더 박아주소"
에고 난 죽었다 ㅋㅋ
왔던 길 다시 걸어 장터목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떡라면이다.
천왕에서 울 직원이 자기 차로 함께 내려가자는 제의를 뿌리쳤던 게 아쉽게도 느껴진다.
'아직도 산행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
별난 취미로 이렇게 고통을 감수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세석을 향한다.
연하선경의 새하얀 이국적인 언덕의 풍경도 잠시 뿐
칼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 추리는 사이 어느새 세석에 닿는다.
벌써 12시가 넘어 버렸으니 점심을 안 먹고 가기에는 너무 늦을 것 같고 해서
이번에도 라면에 남은 밥을 말아 먹고 고구마를 입에 물고 의신마을로 내려 선다.
정확히 3시간만인 4시에 의신마을에 도착했으니 좀 빠른 편인 것 같기도 하다만......
불편을 감수한 산행이었다.
잠자리에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까지
산행에서 어찌 이런 불평쯤 감수할 줄 모른단 말인가.
의신마을~화개~구례~순천~여수까지 3시간 거쳐 집에 들어 왔으니 그래도 빠른 편이다.
칼바람을 대적할 수 없는 너무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허나, 칼 바람이 그렇게 불어도
혹한의 추위가 가슴을 파고 들어도
그리움으로 저무는 저녁노을과 일출 빛을 찾아
그리움이 밀물처럼 몰려들 때면 기꺼이 지리를 향해 또 걷겠습니다.
2013. 1. 26
청산 전 치 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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