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향적봉
-언제: -어디를: 7암자 코스를 -누구와: ok체리카페 회원들과
가을같은 겨울 백장암 가는 길에서
참! 세월이 빠르다. 엊그제 送舊迎新(송구영신)를 외치더니 벌써 1월도 중순을 넘긴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서 나이에 무덤덤해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한다. 그건 내 가족과 내 집이라는 울타리에 정착한 보상일수도 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는 萬古不變(만고불변)의 진리인 無常(무상)에서 깨달음의 여유일수도 있겠지만 나이는 곧 시간이고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시간의 변화를 즐기고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선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산행전 날 아내와 함께 백장암에서(결국 7암자 산행을 했구나 ㅋㅋ)
그래서 마흔, 쉰이라는 생소한 나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맞는지 모르겠다. 그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마주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느 누가 나이라는 숫자의 개념에 억 매어 살아가는지 우리 세대에게 물어보라. ‘나이가 들수록 젊음을 먹고 산다’ 는 것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젊은 시절 스무 살 시절로 다시 건너가 그때의 아름다운 청춘과도 같은 시절처럼 이 세상을 부딪치는 과정에서 지난날을 反芻(반추)하면서 그 아프고 따스한 마음을 回憶(회억)해 보리라 그 시절 보다 더 아름다운 참다운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산내면 대정리 퇴수정에서
갑자기 제 자신이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 저의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어찌하랴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이 새삼 자신에게 주워진 흐름의 시간을 숨길 수 없으리라 조용히 지난날을 뒤 돌아보며 홀로 여유를 즐기면서 되 돌아 보는 즐거움이 7암자코스인데 오늘은 사람과 사람들이 부대끼는 정을 느끼면서 산행을 하고 싶다. 오늘도 우리들의 산행코스에 축복의 눈발이 내린다.
실상사 경내에서 어디를 갈까 만복대와 바래봉을 두고 날씨타령을 하다가 결정된 코스다. 다행히 어제저녁부터 이곳 지다람 집에서 하루를 묵었기에 아침산행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아침부터 날씨는 흐려 있었지만 해탈교를 건너 양 옆으로 도열한 돌장승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3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때 이 코스를 따라갔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때도 하얀 눈이 내렸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증각대사 응료탑비와 극락전에서 ‘아~이 무슨 절이 이래’ 하고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나라 사찰 중 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통일 신라시대의 고찰인데도 지형이 낮다는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인공의 미를 가미하지 않은 이유에서인지 요즘 달라지는 사찰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는 사찰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언제부터 받는 입장료이기에 아쉬워서 들려야 한다는 말에 잠시 실상사의 경내를 둘러 본다. 보광전 앞 뜰에 놓인 실상사의 삼층석탑과 석등이 예사롭지 않더니만, 이윽고 스님들이 머무는 요 사채를 지나 걸으면서 거북 모양의 탑비를 만난다. 실상사 중각대사의 응료탑비로 의미 있는 보물이기에 한 컷을 담아 본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 임도를 따라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은 채 약수암을 따라 올라 간다. 그때도 그랬듯이 오늘도 어김없이 짖어대는 하얀 흰둥이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함께한 모든 이들이 맛 좋기로 소문난 약수샘에서 한 모금으로 물맛을 음미 해본다. 차갑지 않으면서도 시원한 그 맛도 그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실상사의 末寺(말사)인 약수암을 등에 두고 산 능선을 따라 올랐다.
개짖는 삼불사에서 고도를 올릴수록 눈은 더욱더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초반에 힘겨워 하던 아내를 부추기며 어렵사리 고도를 올렸지만 또 내림을 반복하는 사이 좌측으로 희미하게 삼불사가 우리에게 다가 왔다. 이윽고 삼불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짖어대는 개소리에 쉽게 접근 할 수도 없거니와 마음 놓고 조망을 즐길 수도 없었다. 잠시 그곳을 떠나 등 뒤의 삼불사를 쳐다 보았다.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파란연기와 함께 어우러진 함박눈의 조화가 동화 속의 나라가 아닌 이곳 지리산에서 현실을 음미하고 있구나.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풍경인가.
아쉬운 설법을 뒤로 하고
제법 눈은 쌓여 있었고 문수암을 향해 올라가는 우리 팀은 흥겨워 콧노래를 부른다. 날씨도 차갑지 않아 좋았지만 아쉬운 건 설마 눈이 다 녹을까 하는 마음. 이윽고 문수암에 도착한 우리는 도량이 넓으신 도봉스님과 인사를 나눈다.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이 오는 대로 주변을 계속 쓸고 계셨다. 이윽고 자신의 ‘나누는 美學(미학)’ 에 대해서 說法(설법)을 하신다. 천인굴 저 만치에 쌀을 놓고 이곳 짐승들과 함께 나누는 미학을 듣고 잠시 우리가 그곳을 침범(?) 하는 사이에 그들이 오지 못함을 못내 미안해 하였다. 우리는 스님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라는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즐겁게 성찬을 마치고 그곳을 내려오면서 몇 번이고 뒤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지켜 서 계시는 스님은 또 어떤 그리움을 안고 계실까.
감동은 큰 것. 특별한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날. 작은 것에서 오는가 보다. 오늘 함께한 카페 산친구들과 아름다운 미담을 전해 들으며 우리 사람과 사람들 사이 부대낌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정과 나눔에 대해 작지만 소중한 감동과 함께 하면서 도봉스님과 아쉬움을 남기며 작별을 고 한다.
현기스님이 머무는 상무주암에서
이윽고 30여분의 오름 짓을 하면서 현기스님이 20년 동안 이곳에 계시는 상무주암에 닿는다. 오늘도 그때와 다를 바 없었다. 사립문에는 작대기 두 개가 빗장 쳐져 있는 모습과 가지런하게 정돈된 신발이 감히 문을 열고 스님을 부르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 몇 번을 왔지만 올 때마다 호통을 치시는 모습에 처음에는 불쾌하기도 하였지만 원래 호탕한 성격에서 나오는 모습이려니 어찌 그 뜻을 내가 아리오마는 사립문 밖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다가 마음에 펼쳐진 천왕을 조망하며 자리를 떠난다.
영원사를 향하는 내리막에서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찧고 2시쯤에 빗기재에 닿는다. 잠시 너덜길과 지리산에서 제일 오래된 것 같은 주목을 스쳐 지나고 신라 때 영원대사가 창건한 절로 조선시대는 수행 처로써 이름난 고승 109명이 安居(안거)하였다고 한 영원사에 닿는다. 너무 여유를 부렸을까? 아쉽지만 도솔암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6암자 산행으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하얀 눈은 더욱더 내리고 그 여운을 길게 남기며 눈 길을 더 걷고 싶어서인지 날개님의 제안으로 눈 내리는 아스팔트 길을 내려오면서 스님과 나눴던 대화와 자신의 뒤 모습을 바라 보면서 오늘을 마무리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추억’ 이라는 단어를 새기며 그 자리에 머물러 하려고 한다는 사실도 화려한 그 순간에도 행복했던 그 순간에 우리 인간은 세상이 멈추어주기를 얼마나 고대하였는가? 순간을 영원으로 길게 끌어내기도 하며 현재에 끌어다 끼워 넣기도 하면서 마음만은 이미 그때로 되 돌아 갔는지 모른다. 세상을 그때 그 모습으로 되돌리는 듯 착각하면서…… 한참 동안 행복한 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현실 속의 나는 이미 또 다른 내가 되어 버렸다.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처럼……
지금까지 나는 행복을 더 많이 세월에 실어 보냈을까? 아니면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더 많이 세월에 실어 보냈을까? 앞으로 ‘나는 또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라는 命題(명제)를 남겨두고 7암자 산행을 마친다.
청 산 전 치 옥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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