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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왕시루봉에 초대받은 사람들

by 청산전치옥 2008. 1. 1.

 

丁亥年 송년산행의 왕시루봉

 

 

 

-산행 일시: 2007.12.29~30

-어디를: 지리산 왕시루봉

-누구와: 산구화. 풍경. 바바. 원시인. 물안개. 초지. 수정. 서북능선과 나.

 

 

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그곳을 스칠 때마다

언제 한번 찾을 수 있을까?

정녕,

그곳은 갈수 없는 또 하나의 지리산으로 남겨둬야 할까?

왕시루봉!

항상 나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아마 침범하지 못할 이국의 땅이 되어버렸듯이

지정과 비지정의 이분법적인 잣대를 드리운 채

왕시루봉은 그렇게 멀어져만 갔었다

 

 

 

이 글은 2003 1월 맨 처음 왕시루봉을 갔을 때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렇다.

왕시루봉은 흔히들 '바라만보는 산'이라고 말한다.

주 능선을 거닐 때 바라보면 왕시루봉은 마치 독립된 하나의 산처럼 멀리 서 있다.

또 섬진강 변 도로를 따라가며 올려다보면 실제 고도보다 훨씬 더 높게 보여

쉽게 오르지 못할 산처럼 생각된다.

그런 왕시루봉이 오늘 벌써 4번째의 산행인 것이다.

 



 

당신, 이사 가는 거야

패킹을 하기 위해 어지럽게 널 부러진 내용물들을 보고 한 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박짐을 보면 한숨부터 내 쉬는 아내.

그러면서도 나의 산행에 응원 군이 되어주는 마음이 고맙다.

커다란 배낭도 부족하여 한 손에 카메라 장비까지 챙겨 들고 집 밖을 나선다.

그 동안 날씨가 겨울날씨 같지 않더니 어제부터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눈이 오지 않으면 그곳에 가지 않겠다

눈이 없으면 그날 저녁에 다시 내려 오겠다 등등 여러 말들이 오갔다.

 

 

 

 

눈이 온다 안 온다

온갖 잡음이 많다가 결국은 일기예보대로 눈은 올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간다.

어디에서 시작 할까 하다가

가장 가까운 거리를 서서히 오르기로 하고 토지면 소재지에 파킹을 한다.

만만찮은 짐을 챙겨 들고 오르는 산행길은 고행의 연속이 되리라.

콘크리트 임도에서 고도를 한동안 올리고 잠시 포근하고 유순한 송림 숲에 닿는다.

 

 

 

남는 게 시간이라고 쉬엄 쉬엄 오르다가 이윽고 샘터에서 이른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비록 라면과 김밥으로 해결한 점심이지만

이따금씩 내리는 눈발을 맞으면서 국물과 혼입된 눈라면을 누가 먹어 봤을까.ㅋㅋ

비박산행을 할 때면 누구라고 먼저 할 것 없이

먹거리를 먼저 내 놓은 습관(?)은 참 보기 좋은 현상인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 . . 김밥. 곶감. 등을 ……

 

 

 

 

샘터에서 왕시루봉까지는 가파른 길은 아니지만 꾸준한 오름 길이다

봄철에는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 길인데,

잠시 후 가파른 길을 감아 돌아 오르면 시야가 밝게 틔는 능선길이 나타나는데

오늘은 흐린 날씨로 백운산등의 조망은 볼 수 없구나.

잠시 후 오늘 예약한 시간 보다 너무 빠른 감이 있어 이곳 전나무 밭에서 쉼을 갖는다

다시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이제 초원지대다.

우리의 입산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심한 칼바람이 우리를 붙잡아 놓는다.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관리인께서 직접 차를 대접해주고

따뜻한 온정에 얼었던 마음도 녹아 이제 살 것만 같았다.

외국인 별장

정확한 이름은 ‘한국 주재 선교사 수양관 촌’ 이다.

1962년에 노고단에서 이곳 왕시루봉으로 옮겨 와 지금까지 현존하는 폐허의 건물이다.

그런데 최근에 소유주인 서울대학교와 한국 기독교 협회와의 잦은 언쟁이 있는 모양이다.

누구의 소유가 되어야만 우리 모두에게 이로움이 있을는지는

우리 모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각자의 분담 아래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추운 날씨인데도 샘터의 물줄기는 오줌줄기 보다 적게 나오고 있었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땔나무는 주변 전나무 근처까지 와서 간벌한 나무를 옮겼다.

이윽고 벽난로의 불을 어렵게 댕겼고 준비한 저녁 만찬이 이어졌다.

아쉬운 것은 발전기 시설이 고장 난 상태라 헤드렌턴으로 불을 밝혀야 한다는 점.

마을 내려가서 양초 몇 자루 사오라고 부탁하려 하였더니만

평소에 말을 잘 듣던 사랑하던 후배들도 산에만 오면 말을 안 들으니 어찌 하오리까……

오늘은 서북까지 말을 듣지 않으니 원……

 

 

 

 

한배 두배 건배를 하는 사이 우리의 산친구들의 우정은 깊어만 간다.

2007년 정해년의 한 해를 보내면서 지난 날의 의미를 되 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다.

새해를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조용히 우리 자신들을 뒤 돌아 보면서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의미를 되새긴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아 왔던 살아온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그 흔적이 싫든 아름답던 우리들의 추억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시간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흘러가지만

세월이 남기고 간 흔적,

우리들의 산사랑의 흔적은 고스란히 우리의 삶 속에 남아 있겠지.

 


 

이윽고 우리가 있는 이곳이 결국 기독교와의 밀접한 곳이기도 하기에

잠시 물집사님께 우리를 위한 2008년 무자년 새해 기도를 부탁 드렸는데

거룩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아버지시여.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 합니다.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죄지은 인간들

2007년 참회의 밤을 보내면서 회개를 하고 있으니 모든걸 용서하여 주시고

<중략>

새로운 무자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됨으로써 발전된 동부팀이 되게 하소서……’

<그런데 물집사, 잘 나가다가 거기서 신발끈이 왜 나와 ㅋㅋ>

 

 

 

 

밖에는 그렇게 몰아치는 바람소리와 함께 눈발이 내리고

저 멀리 구례읍에서 비춰주는 빛 줄기는 야음을 타고 이곳까지 전해오건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미로운 음률은 왕시루봉의 능선을 따라 섬진강으로 흘러 보내니

벌써 자신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졌는지 들려오는 핸폰의 문자소리에

이 밤은 깊어만 간다.

이렇게 흐르는 시간은 그 자리에 멈춰 설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자정이 다가오고

내일 산행을 위해 초지 아우의 한바탕 원맨쑈를 끝으로 밤을 마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간밤에 누가 내 코펠을 그렇게 두들겨 팼기에 쭈그려져 있는지 원

 

 

 

일출의 기대를 하고 잠에서 일어났는데 너무 욕심이 많아서일까

밖은 온통 하얀 눈꽃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심한 칼바람은 우리들의 낮을 베어버리겠다는 듯 무섭게 불어 온다.

도미 매운탕으로 아침을 잘 먹고 서북아우의 헛구역질을 핑계 삼아 러셀은 쉬워진다.

뒤에서 뽐뿌질 해대니 먼저 가겠다고 야단인데

왜 서부기가 뒤에 가겠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쏟아 내고 나니 좃터냐)

 

 

 

 

사방으로 조망은 볼 수 없지만

이따금씩 서북쪽에서 불어주는 심한 칼바람으로 인하여 잠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기쁨은 동시에 사라지곤 하였다.

작년 1월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듯이 우리가 왕시루봉에만 오면 우리의 기대를 허물지 않았다.

이렇게 눈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구나.

왕시루봉의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눈꽃 길을 따라 내려선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면서 어느덧 느진목재까지 왔다.

이제 칼바람은 한풀 꺾여있어 다행이다.

서서히 내림 길을 내려 서면서 우리들의 추억 쌓기 2007년을 마감한다.

 

 

 

그래. 1년이 저물었다.

세월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는 게 맞는 이야기인 성싶다.

내 나이가 한 살 불어나게 되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시간이 빨리 가겠지.

군자(君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그 마음가짐과 행동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고 한 다산 약용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도 무언가 새로운 마음가짐과 행동할 일들에 대한 다짐을 해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송구영신의 마음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기대와 설렘으로 또 2008 무자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 연초에 계획했던 마음으로

올 한해도 동부팀회원 여러분의 무궁한 발전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무자년 새해는 밝았습니다. 올해도 복 많이 받으세요

 

戊子年 정월 초하루에

청산 전 치 옥 씀.

 

http://blog.daum.net/jeon8204

      에냐 / Book of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