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산의바람흔적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와운골이 나에게 전해주는 교훈

by 청산전치옥 2005. 6. 18.

 

 와운골이 나에게 전해주는 교훈

 

-일시: 2005.6.8.

-산행코스: 반선-와운골-명선봉-토끼봉-범왕능선-범왕교.

-함께한 사람: 나 홀로.

 


(와운골)

 


(자연 탐방로에서)

 

잠에서 깜짝 일어나 깨어보니 새벽5시8분이었다.

나의 일상에서 알람 셋팅없이 언제고 일어나야겠다는 시간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졌는데 오늘은 8분을 초과 한 것이다. 다행 이 어제저녁 배낭은 준비가 되어 있음으로써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었지만 그대신 아침을 건너 뛰어야 한다. 집사람을 깨워 기차역까지 태워 줄 것을 부탁한다.

5시29분에 출발한 기차는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히 미끄러져 가면서 새벽의 아침 신호를 보낸다. 부족한 잠을 보충 할 요량으로 머리를 기댄 채 창 밖을 응시하지만 부지런한 농부의 모내기는 벌써 힘겨운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원 근처의 터미널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 한 나는 이곳 반선에 8시30분에 도착하였다.

 


 

 

 


(뱀사골의 아침)

 

-산행 시작

평일 뱀사골의 아침은 너무도 조용하다. 자연 탐방로의 길을 택해 여유롭게 걸어보고 싶어 계곡 옆으로 빠져든다. 이름 모를 새들과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 살랑거리며 간혹 불어대는 바람이 어쩌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산행 10분이 안되었는데도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 계곡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격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와룡교 근처에서 그것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곳에서 보지 말아야 할 상식의 일들을 보고 기분 좋게 시작한 산행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어디에서 시작한 산 객인지 유흥 객인지 몰라도 10여명이 넘은 인원 모두가 계곡에서 팬티차림으로 알탕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못해 디카를 들이밀자“너 ** 죽고 싶어”하는 소리에 꼬리를 접고 만다(그래 나 살고 싶다 **) 그 중에 똑바른 인간 한 사람만 있어도 이러지는 않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그 자리를 회피하고 만다.

 


 

-처음부터 꼬인 산행.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였다. 넷상에서 준비한 산행의 들 머리를 잘못 해석하여(계곡의 좌측길을 따라 오르면……인데/ 나는 계곡을 좌측에 두고 오르면 으로 해석함) 그만 계곡을 건너 와운능선으로 올라간다. 올라 가면서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계곡과 멀어 질 수가 없을 텐데 몇 번이고 생각하면서 855고지까지 올라와서 작년에 올라왔던 와운능선 길임을 확인하고 다시 백하여 655M 인 계곡으로 되돌아간다. 혹시 몰라 내려가면서 계곡 옆의 비슷한 길을 찾길 여러 번 하였지만……결국 50분의 알바로 인하여 헛된 시간을 소비하고 제일 좋은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처음부터 계곡만 타고 올라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길은 계곡 좌측에서 초입이 있었는데 나는 우직스럽게 우측에서만 길을 찾으려고 하였던 이유는 작년에 좌측 길을 가다가 2~3개의 조그만 지 계곡을 건너면서 영원능선으로 올랐던 기억이 있어서 좌측 길은 애초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게 나의 판단착오였다.

 


 


 


(와운골의 모습)

 

-와운골(누운골)

한번의 호된 신고식을 하고 나니 영 기분이 아니다. 조금 전의 판단착오는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는 나중에 알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자연과 내가 하나되어 초라한 자신을 맡기며 또는 부대끼면서 신비의 비경을 탐닉하고 수정처럼 맑은 청류에서 세속의 때를 벗기며 인간의 한계로 도전하지 못한 초 자연에의 신비를 터득 하리라.  

 


 

 

 


 

하나 하나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도 빨리 갈래야 갈수 없는 곳이다. 물론 계곡의 미끄러움도 발걸음을 더디게 할 뿐이다. 이따금 커다란 장애의 암벽이 가로막고 서있는 곳은 분명히 우회하는 길을 찾아야 하고 희미한 길을 찾았다 싶어 따라가보면 그 길은 이내 모습을 감춰 버리곤 한다. 대개 계곡의 산행은 좌우로 건너 다니면서 길이 나 있는데 이곳 와운골은 그런 계곡과는 달랐다. 그만큼 때 묻지 않은 곳이라 생각된다.

 


 

 

 


 


 

이윽고 11:58에 1140M 의 계곡 합수점에 이르렀다. 우측으로 붙어 오르고 싶은 충동이 앞섰지만 좌측 계곡으로 이어지는 주 계곡을 선택하기로 하고 상류를 찾아 떠난다. 상류로 오르면 오를수록 빽빽한 산죽과 이끼 낀 돌발이 나타나면서 1100고지 이상에서만 자생한다는 앵초와 만나게 된다. 앵초 군락지에서 그의 자태를 담아 보려고 시간을 보내다가 또 다른 외도의 길로 나선다.

 


 


 


 

-또 다른 외도.

계곡의 물줄기는 한결 약해지고 빈약하여 이제 새로운 도전의 길을 찾고 싶어 좌측 계곡을 버리고 우측의 밀림의 세계로 빠져든다. 고도가 1300고지를 넘어서고 있으니 분명히 어떤 길이 있을 거라는 나름대로 상상의 길을 찾아 나선다. 처음에 시작되는 유순한 숲길을 보면서 그래 이 길이야 하는 마음속의 여유와 이제 물소리와 폭포소리를 멀리 할 수 있는 조용함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 해지는 것인가. 좋은 소리도 몇 번을 들으면 싫어진다는 게…… 그러나 얼마 못 가 엄청난 산죽 숲과 언제 쓰러진 고목 숲 속에 묻히고 만다. 힘으로 밀어 부치면 돌격 해 보지만 마치 늪에 빠진 자신은 헤어날 줄 모른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차라리 계곡으로 되 돌아 가는 것 보다 능선을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능선 길을 찾았으나 쓰러진 고목들이 길을 막는다. 넘어가고 돌아가고 반복하며 길을 찾을 때 버티고 있는 커다란 암봉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

 


 

 

 


 


 

하늘이 열리고 산마루가 보이는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곳만 올라서면 되겠지 하는 섣부른 판단이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산죽과 함께 불르스 추고 난리 치며 쓰러진 고목을 껴안는 과정에서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자문 해 본다.

그런 과정과 역경 속에서 결국 헬기장으로 향하는 길과 마주친다. 이런 성취감이 나를 산으로 불러 들이는가. 연하천에 도착한 자신은 물을 마시는   일보다는 우선 시급한 일을 해결 하기로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와운골의 상류를 찾아 다시 내려 가기로 하였다. 화장실 밑으로 연결된 계류는 곧바로 시작되는 지점이다. 조금 내려가니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 하는 것 같았다. 이름 모를 야생화와 앵초 군락지가 나를 반긴다. 연하천에 몇 번 와 봤지만 이런 곳에 또 다른 비경이 있을 줄이야……

 


(하늘이 처음 열리고)

 


 

-무엇이 나로 하여금 山頂(산정)을 오르게 하는가.

지나치게 집착하면 속박이고 집착에서 벗어나면 해탈이라 하였던가. 지리의 품 안이 좋은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곳으로 오지 않았는가. 미지의 길에 또 다른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내 자신을 망각한 채 몸부림 치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전 생애 지리산과 깊은 인연이 아니면 큰 업보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처럼 집착하는지 모른다.

 


(또 다른 외도의 길)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듯이 폐부 깊숙이 이글거리는 자존심을 삶의 활력소로 재생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르는지 모른다.

 


(앵초)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지쳐 쓰러지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山頂에 오르면 거기에는 우리가 살아 가야 할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우쳐주기 때문에 나는 산에 오른다

 


(앵초 군락지에서)

 

정신적 순화와 육체적 보전은 필수적이다. 인간이 살면서 터득해야 할 철학이 산 속에 있기에 그 어떤 심오한 철학을 찾아 나는 오늘도 산에 가는지 모른다.

 


 

“내려 와야 할 산을 왜 오르느냐” 이러한 나의 산행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웃더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장과 삶의 질이 다르기에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듯 나는 산에 간다.

 


 

같은 산을 매번 오르면서 느끼는 감성은 계절에 따라 다른 감응을 불러 일으키듯 그로 인해 정신적 순화를 느끼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산에 간다.

 

 

부지런히 산행을 하다 보니 오늘 오후 6시30분 회식약속이 있다는 것을 명선봉에 오르면서 느꼈다. 2시간의 알바로 인하여 약속장소를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차라리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그런 여유 끝에 뱃속의 허전함을 느낀다. 준비한 개떡으로 입막음을 하여 보지만 도저히 먹히지 않아 방울 토마토 몇 개를 입에 넣고 다시 길을 나선다.

 


(토끼봉에서 반야의 모습)

 



(범왕능선에서)

 

-토끼봉에서

토끼봉에서 바라 본 반야의 모습은 무한한 감동을 안겨주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다분히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내재하고 있는 반야는 풍만한 여인의 가슴을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하는 연인의 품이 주는 부드러운 곡선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15시15분이다. 어쩌면 오늘 회식장소에 시간이 약간 늦더라도 참석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발길을 내디디며 범왕교를 향한다.

 


(비파열매)

 


 

-차 안에서 대화

차도에 내려서자 스틱을 접기도 전에 승용차 한대가 미끄러져 내려온다.

히치를 해 놓고 보니 의외의 인물인 여성 운전자이다. 혼자 운전 하시면서 이렇게 쉽게 태워도 되는 거냐고 물어 본다. 자신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라며 산 꾼들의 마음을 꿰 뚫고 있는 듯 하였다. 자신의 심경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서울에서 고향에 왔다가 칠불사에서 예불을 드렸다는 미혼 여성이었다. 쌍계사까지만 히치 하기로 하였던 자신은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주로 자신이 COUNSELOR 가 되어 그녀의 질문에 답을 주곤 하였다. 그것은 내가 많은 것을 배워서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해서도 아닌 인생의 선배로써 자신이 겪었던 현실세계와 이성교제의 당위성을 논설하기도 하였다. 좋은 인연이 되어 자신이 쓸데없는 내심을 얘기했는지 모른다는 말에 결국 차에 내리면서 한마디 거든다.’내 남자라 생각된다면 자존심을 버리세요. 그리고 붙드세요’

 


(자연 탐방로에서 필자가 쎌프로)

 


 

-에필로그

며칠 전 주위 사람이 나에게 비아냥거리면서 하는 말 “생활에 여유가 있으니 산에 가고 얼마나 오래 살려고 산에 가느냐”고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분명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 산에 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존 하면서 온갖 병치레를 겪는 것 보다 찰나의 죽음이 더 행복 하거늘 나는 산속에 육신을 묻을지라도 내 능력이 따르는 한 산정에 오를 것이다. 인생을 살되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나 보다 심약한 아내를 보필 하려면 내 육신이 건강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내는 알고 있는지……

 

-일정정리.

08:30~09:00 산행 시작(자연 탐방로)와운송3.5KM

09:15~10:05 *알바시간

(09:15 와운골 들머리(655)/09:43 와운능선 855)

10:05 와운골 들머리(계곡 초입 655)

10:53 800M 의 계곡.

11:58 1140M 의 계곡 합수부.

12:56~13:44 **또 다른 알바

13:45 연하천 헬기장.

14:04 연하천(1495)

15:15 토끼봉(1533/고도계: 1525)

15:32 이정표(토끼봉1.0/범왕교3.9)

15:50 참샘(1120)(토끼봉2.3/범왕교2.6)

16:00 표지석(지리16-05)975M.

16:30 산행종료(칠불사와 범왕교의 사잇길)


'智異山 戀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새골 사람들  (0) 2005.07.03
아내와 함께한 칠선계곡  (0) 2005.06.26
운무와 함께한 영신대에서  (0) 2005.06.18
지리산 동부능선의 탐구산행  (0) 2005.06.16
도장골 산행기  (0) 200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