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골 산행기
*도장골의 어원*
고대어에서 [산]을 나타내는 말 중에 [달]이 있으며
[달]을 뿌리로 하는 말 중에 지역에 따라 모음이
변하면서 [닫] 혹은 [돋]이 있다. 돋 + 안쪽 골 > 돋의 안골 > 도댠골 > 도잔골 > 도장골
결국 도장골은
산의 안쪽에 있는 골이라는 보통명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도장골을 수도하는 도장이 있었다거나 하는 뜻 풀이는
도장골의 한자 지명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라고 보면 대부분 틀림없다
*자빠진골의 어원*
거림골에서 박단샘(한벗샘)으로 오르는 골짝이 [자빠진골]인데
이곳 외에도 지리산에 자빠진골이란 지명이
많다.
올라가다가 자빠지기를 잘한다고 지명 유래를 말하는 경우가 있으나
지명 유래의 기본을 생각하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
능선에
삐뚜름하게 붙어 자빠진듯 생긴 모양을 보고 [자빠진골]이라한다.
*智異山 十臺...( 빨강색은 자신이 다녀 온
곳)
지리산에는 옛부터 수도처로 10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최화수님의 "지리산 365일"에는
반야봉 7대,천왕봉 5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반야봉 7대는 문수대,묘향대,종석대,만복대,금강대,무착대,서산대...
천왕봉 5대는 향적대,문창대,영신대,소년대,향운대...
어떤 분은 장군대를 추가하기도 합니다.
김경렬님의 "다큐멘타리 지리산"에 나오는
소년대,영랑대는 하봉 주변에 있는 것 같고,
종석대는
차일봉,우번대,관음대의
다른 이름으로 동일한 지명인듯 합니다.
종석대 아래에 있는 암자를 우번대 라고도 합니다.
요즘에도 남아 있는 곳은
1.노고단 아래에 질매재로 가는 길에 있는 문수대...
2.종석대 아래에 있는 우번대...
3.반야봉 중봉
아래의 해발1450m 의 묘향대...
4.피아골 산장 위의 서산대...
5.불무장등에서 직전마을 내림길에 있는 무착대...
6.하봉 아래 두류능선의 향운대...
7.법계사 위의 문창대...
8.영신봉 아래의 영신대...
9.장터목 산장 샘터 옆의 향적대...
10.그외 금강대는 뱀사골에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장소는 아직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10대의 공통점은 모두 뒤에는 암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10대 에는 현재 수도하는 분이 머물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묘향대,문수대,우번대에는 현재 수도 중인것
같습니다.
무착대,서산대,향운대는 현재 암자를 철거해 버려서 머무는 분이 없었습니다.
다만,10대를 찾을때 마다
느끼는 것은 주위 풍광이 과연
수도처 답게 氣를 느낄수 있고 신령스러운 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 지리산 10대가 어떤
문헌에 나와 있는지는 몰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지리산 관련 문헌에는 없음...)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것과 요즘 인터넷 영향으로
다시 추가되고 수정된 것도 있는것 같습니다.
향운대는 절터로 알려져 있었고,무착대와
서산대도
사람이 머물기 시작한것은 얼마되지 않은것 같습니다.
(지난 80년대 이전에는 이런 명칭을 듣지 못했슴...)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臺)는 뒤에는 바위 절벽이 솟아있고
앞에는 샘물이 솟아나는 곳으로 전망이 좋고 물과 햇볕이 있고
수도처나 암자가 자리잡기 좋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는
묘향대,영신대,문수대,문창대,향적대,종석대(우번대)는 지리산 10대로 논란이
없을 것이나 그밖의 곳은 사람에 따라 다를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집중탐구에 올려진 문창대의 위치는 잘못되어 있고,
만복대는 수도처의 10대가 아니라 속리산 문장대 처럼
전망이 좋은 봉우리를 뜻합니다.
만복대,장군대,영랑대,소년대등은 같은 의미로
뒤에 절벽이 있고 앞에는 물이 나오는
수도처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지리산에 잊혀진 수많은 암자터,수도처를 찾는 산행도 좋을듯
합니다.
<지리99에서 중봉님의 글>
*음양수샘의 전설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러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의 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일시:2005.5.17.
-산행코스:도장골-삼신봉-영신봉-영신대-박단샘-자빠진골-거림
-함께한 사람:산노을님과 함께.
길상암의 새벽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길은 이어졌다 끊어짐의 연속:계속 계곡을 따라서.
계곡 사이로 보이는 삼신봉.
와룡폭포는 가까워 지고.
와룡폭포에서.
와룡폭포에서 내려다 보며
계속 이어진 계곡에 철쭉은 피고
삼신봉의 외출
일출봉의 모습.
삼신봉을 오르면서.
삼신봉을 오르면서:연하봉
일출능선
천왕을 바라보면서.
삼신봉에서 세석쪽의 전망대에서
저도 천왕을 바라보면서
세석산장과 촛대봉
영신대의 병풍바위
영신대 재단
영신대 옛터
음양수 샘터
음양수 밑의 절구
자빠진골의 날머리
거림골과 자빠진골의 합수점
도장골의 모습.
-일정정리.
06:00 산행시작(길상암)
06:25 이정표(이정표:0.8)
이영희 아지트와 삼나무 군락지 지남.
06:32 도장골 본류를 따름.
06:52~07:10 계곡 옆의 왼쪽 길과 만나 능선길로 오름.
07:40~07:55 와룡폭포.
09:13 도장골의 계곡 상류부 도착.
09:50 삼신봉(20여분 알바로 인하여 시간 보냄)
10:35 촛대봉(1703)
11:00 연하봉(1651)
11:25~11:55 영신대에서.
12:10 영신봉
13:00 석문
13:50 박단샘(한벗샘)
14:35 거림골과 자빠진골의 합수부.
15:00 산행종료(길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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