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리아넬 이야기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붉게 물든 철쭉과 안개 너머의 나무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이 풍경은 현실과 환상이 맞닿은 경계선— 엘프가 숲 속을 지나고, 고대 용이 산등성이 뒤편에 깨어나는 듯한 상상의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따뜻한 햇살은 그 세계의 신호이자 하루의 마법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다가옵니다.
이 순간을 바라보는 나는 일상의 무게를 벗고 잠시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문장에서 말한 엘프 리아넬은 현실의 존재하기보단, 풍경이 주는 환상성과 서정성을 상징하는 상상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하나의 짧은 환타지처럼 풀어보겠습니다
여명과 안개의 경계에서 걷는 자, 엘프 리아넬의 이야기
리아넬은 안개가 걷히기 전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엘프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잠든 시간을 걷는 수호자이자, 새벽과 어둠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자. 황룡강 습지가 아직 말없이 숨을 쉬고 있을 때, 리아넬은 붉게 피어난 철쭉 사이를 조용히 지나며 그날의 첫 빛이 세상에 아프지 않게 닿도록 인도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발 아래 물안개는 길이 되고 그녀가 스쳐간 자리엔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끔 아주 이른 새벽에 도착한 자만이 그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지요. 바로 지금처럼…
엘프 리아넬을 중심으로 한 짧은 환상 이야기
〈안개의 시간〉 - 리아넬 이야기
1. 안개 너머의 존재
사람들은 모른다 황룡강 장록습지에 세상이 숨을 죽이는 새벽 5시 무렵 안개 사이로만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리아넬. 그녀는 '여명 이전의 자'라 불린다. 세상과 세상의 틈 빛과 어둠의 교차점에서만 숨 쉬는 엘프. 이른 새벽, 사람의 발걸음이 채 닿기 전 그녀는 강가를 걷는다. 그 발자국은 남지 않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이슬이 꽃처럼 피어난다. 그녀의 임무는 단 하나. '다시 세상이 깨어날 수 있도록, 밤의 기억을 거두는 것.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어둠은 더디게 물러나고, 가끔은 빛조차 길을 잃는다. 리아넬은 느낀다. 이 세상이 무언가를 잊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더 깊숙이, 더 오래, 그녀는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인간을 만난다.
2. 이른 침입자
그날은 이상했다. 바람은 숨을 죽였고, 물안개는 제때 피어 오르지 않았다. 리아넬은 발끝으로 안개를 끌어올리며 습지 한가운데로 향하던 중, 무언가 깨어 있는 기척을 느꼈다. 그건 인간이었다. 흙 위에 남은 온기, 아직 사라지지 않은 발자국. 그것은 사람의 것. 이 시간에,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건— 균형이 어긋났다는 뜻이었다. 리아넬은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습지 끝자락, 철쭉 아래 앉아 있는 그는 카메라를 들고 물안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마치 이 세계의 문턱을 처음 열어본 아이처럼...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리아넬은 눈을 떴고,
그는—놀랍게도 그녀를 봤다.
“……누구시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리아넬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법칙상, 인간은 그녀를 볼 수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3. 균열
“당신은, 꿈인가요?”
그의 질문에 리아넬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너희가 잊은 세계의 조각이야.”
그가 깜빡였을 때, 리아넬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머릿결은 안개처럼 흐르고, 눈동자엔 새벽빛이 스며 있었다.
“당신은 이곳에 들어오면 안 돼. 이곳은…… 기억의 저편이야.”
리아넬의 말은 단호했지만, 목소리엔 흔들림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조차 처음이었다. 인간과 이토록 가까이 선 것은.
그의 이름은 수현.
그는 매일 새벽, 잊히고 싶어서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어서.
그리고 그 말은,
리아넬이 처음 느껴본 슬픔이 되었다.
그날 이후,
리아넬은 매일 같은 시간,
그가 올까 봐 두려우면서도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4. 새벽을 함께 걷는 자들
리아넬은 알 수 없었다.
왜 그를 향해 자꾸 걸음을 옮기게 되는지.
왜 이 세계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그를 기다리는지.
수현은 매일 새벽 황룡강에 나타났다.
손에는 낡은 카메라, 눈엔 피로한 고요.
그는 웃지 않았지만, 그녀와 있을 때만은 침묵이 따뜻했다.
어느 날, 수현은 그녀에게 물었다.
“왜 여긴 늘 안개에 덮여 있나요?”
리아넬은 대답했다.
“안개는 이 세계의 기억이야.
너희가 잊고 지나간 감정들, 끝내 말하지 못한 고백들.
그 모든 것이 안개가 되어 흐르는 거야.”
수현은 아무 말없이 안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나는 아주 많이 잊고 사네요.”
리아넬은 그 말에,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개가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올라
수현의 뺨을 스치고,
그가 지닌 한 장의 추억으로 흘러들어갔다.
소녀와 나무 그네,
어린 날의 여름과 이별.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실.
리아넬은 눈을 감았다.
“네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어.”
5. 균형의 파문
그날 이후로,
리아넬은 점점 사람의 감정에 물들기 시작했다.
아침이 빨리 밝았고,
안개는 자주 길을 잃었다.
그리고 어느 날,
리안—숲의 수호자이자 리아넬의 오랜 동료가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싸늘했고, 목소리는 안개보다 냉랭했다.
“그는 인간이야.
너의 존재는 새벽 이전의 균형 속에 있어야 해.
너희가 계속 교차하면…… 문이 열릴 것이다.”
리아넬은 고개를 돌렸다.
“이미 열리고 있어.
하지만 그 문 너머엔, 우리가 잃었던 것들이 있어.”
리안은 안개를 헤치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엔
밤의 검은 기운이 천천히 번져가고 있었다.
6. 선택의 시간
그날 새벽, 수현은 리아넬을 보며 물었다.
“당신은 진짜 어디에서 온 거예요?”
리아넬은 물안개 속에 서 있었다.
등 뒤로 아침이, 눈앞엔 어둠이 있었다.
“나는 경계의 아이야.
너희가 더 이상 보지 않는 세계에서 왔어.
하지만 이제, 너를 보게 되었지.”
수현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디로 가요?”
리아넬은 멈칫했다.
그의 손을 잡는 순간,
자신은 이 세계의 ‘안개’가 아닌
'빛'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손을 잡았다.
7. 문 너머
리아넬이 수현의 손을 잡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변했다.
황룡강의 습지는 정적에 잠기고,
수면 위 안개는 마치 거꾸로 흘러가는 듯 흔들렸다.
그리고,
그들 발밑에서 빛의 틈이 열렸다.
리아넬은 처음으로 인간과 함께
‘문 너머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곳은 이 세상이 잊어버린 풍경들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어린 날의 웃음소리,
손끝에 남은 따스한 감촉,
끝내 전하지 못한 작별 인사들—
모든 감정의 파편이 안개가 되어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여긴……?”
수현이 숨죽여 물었다.
리아넬은 대답했다.
“이곳은 기억의 심연.
너희가 잊은 모든 감정이 머무는 곳이야.
우리가 지켜온 세상이기도 해.”
하지만 그 풍경 한가운데,
검은 균열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건 단지 틈이 아니라,
무언가가 이 세계를 삼키고 있는 구멍이었다.
8. 그림자, 그리고 리아넬의 경고
리아넬은 다시 나타났다.
그의 눈엔 더 이상 차가운 경고가 아니라
절박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그 문은 열려선 안 되는 곳이었다.
수현이 들어옴으로써, 기억의 심연에 균열이 생겼다.
여기 있는 ‘잊혀진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면
인간 세계는 감당하지 못해.”
리아넬이 말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누군가의 진심이야.
우리가 잊고 살아온 것들이기도 해.”
리안은 눈을 감았다.
“진심은 항상 아름답지만,
제자리를 잃으면 독이 된다.
이곳의 문은 ‘한 번만’ 열릴 수 있어.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돌아가야 해.”
9. 선택의 저편
수현은 리아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안개 속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생명이고,
그가 처음으로 끝까지 바라보고 싶은 존재였다.
리아넬은 미소 지었다.
“내가 남으면, 이곳은 닫혀.
네가 남으면, 너는 기억으로 사라져.”
수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떠날게.”
리아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기억’이 아니야.
너는 지금 살아 있는 존재야.”
그녀는 조용히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안에 피어 오르는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너는 돌아가야 해.
잊은 것을 다시 기억해내고,
그 기억을 잃지 않도록 살아가야 해.”
빛이 수현의 발밑에 다시 모였다.
문이 닫히려 하고 있었다.
리아넬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우리의 새벽은 여기 까지야.
하지만… 네가 기억해준다면
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10. 에필로그 – 여명이 지나간 자리에서
황룡강 습지,
이제는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에
수현은 다시 돌아온다.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흐릿하지만 분명히 느낀다.
안개 사이를 지나가는 발소리.
이슬 위에 피어난 작은 발자국.
리아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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