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2014. 3. 15
-노고단~시암재의 왕복구간
-나 홀로
생각대로라면 하얀 봄밤을 산정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집 나간 사람도 아니고 허구한날 지리산만 다니는 나를 두고 마눌님 원성이 극에 달한다
"지리산에 숨겨둔 작은 각시 쌀 떨어졌냐" 며...
'지리산에 춘설이 내렸다잖아'
다시 꺼낼 일 없는 겨울장비를 챙기면서
그 어떤 희망을 품어본다
이른봄 새벽을 달린다.
어제 성제봉 산행 때 내린 눈이 얼마만큼 내렸는가 확인하는 셈치고
하얗게 물들어버린 凍土(동토)의 領土(영토)를 향해 달린다.
기어이 봄은 오는가 싶더니
결국 봄은 직진이 아니듯 춘설과 함께 칼바람이 꽃 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지난번 바래봉 산행 때 뼈아픈 과거의 상처가 있기에
선뜻 나서기가 겁부터 나지만 어찌하리오 마지막 春雪(춘설)일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시암재에 파킹을 하기로 하는데 상당한 눈이 내렸다는 예감
마빡에 불 밝히면서 오르는데 하얀 눈빛(雪光)의 눈부심이 유독 더한다
노고단을 향한 평탄한 오름 길이지만 눈 쌓인 이른 새벽
지난 숱한 삶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아른거린다
깊은 슬픔과 기쁜 감동 앞에 때로는 눈물을 보여야 했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그저 한 순간들의 喜悲(희비)이건만
왜 집착이라는 단어를 내려놓지 못했던가 후회도 밀려 온다.
지금도 이 굴레를 벗지 못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누군가 그랬듯이
배부른 시인은 알토란 같은 서정의 글을 남기지 못하고
목젖이 찢어지는 아픔 없이는 맑은 노래가 흘러 나올 수 없다 했듯이
가슴 시린 사람만이 진정 뜨거운 입김을 불어 낼 수 있다는 ...
앞으로 남아있는 삶의 여정에서 또 다른 고통은 없지 않을 텐데
오늘 새벽 유독 시린 마음이 더한 이유는 무엇일까.
봄 달의 둥근 달은 점점 기울어 간다.
봄은 봄인 갑다 했더니
노고단 정상에 여지없이 불어대는 칼바람은 매화꽃도 산수유에게
봄의 문턱을 넘으며 겪어야 하는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눈 시리게 하얀 눈꽃세상
비록 고통의 몸부림에 잉태한 서리꽃이 없더라도
일출의 아침 빛이 부족한 노고단의 여명이지만
그래도 보여줄 수 있는 춘삼월의 눈꽃세상
하지만 춘설로 가득 쌓인 이곳 지리산은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4. 3. 15
글 사진 청산 전 치 옥 씀
'智異山 戀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복대, 그 황홀한 만남 (0) | 2014.05.06 |
---|---|
꽃피는 고리봉에서... (0) | 2014.04.28 |
춘설(春雪)그리고 성재봉(聖帝峰) 산행) (0) | 2014.03.17 |
돌발사고와 바래봉의 상고대 (0) | 2014.02.16 |
그 그리움의 끝은 어디에(천왕봉) (0) | 2014.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