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異山 戀歌

지리산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청산전치옥 2014. 3. 19. 17:14

 

★지리산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2014. 3. 15

-노고단~시암재의 왕복구간

-나 홀로

 

 

 

생각대로라면 하얀 봄밤을 산정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집 나간 사람도 아니고 허구한날 지리산만 다니는 나를 두고 마눌님 원성이 극에 달한다

"지리산에 숨겨둔 작은 각시 쌀 떨어졌냐" ...

'지리산에 춘설이 내렸다잖아'

다시 꺼낼 일 없는 겨울장비를 챙기면서

그 어떤 희망을 품어본다

 

 

 

 

이른봄 새벽을 달린다.

어제 성제봉 산행 때 내린 눈이 얼마만큼 내렸는가 확인하는 셈치고

하얗게 물들어버린 凍土(동토)의 領土(영토)를 향해 달린다.

기어이 봄은 오는가 싶더니

결국 봄은 직진이 아니듯 춘설과 함께 칼바람이 꽃 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지난번 바래봉 산행 뼈아픈 과거의 상처가 있기에

선뜻 나서기가 겁부터 나지만 어찌하리오 마지막 春雪(춘설)일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시암재에 파킹을 하기로 하는데 상당한 눈이 내렸다는 예감

마빡에 밝히면서 오르는데 하얀 눈빛(雪光) 눈부심이 유독 더한다

 

 

 

 

노고단을 향한 평탄한 오름 길이지만 쌓인 이른 새벽

지난 숱한 삶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아른거린다

깊은 슬픔과 기쁜 감동 앞에 때로는 눈물을 보여야 했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그저 순간들의 喜悲(희비)이건만

집착이라는 단어를 내려놓지 못했던가 후회도 밀려 온다.

지금도 굴레를 벗지 못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누군가 그랬듯이

배부른 시인은 알토란 같은 서정의 글을 남기지 못하고

목젖이 찢어지는 아픔 없이는 맑은 노래가 흘러 나올 없다 했듯이

가슴 시린 사람만이 진정 뜨거운 입김을 불어 있다는 ...

앞으로 남아있는 삶의 여정에서 다른 고통은 없지 않을 텐데

오늘 새벽 유독 시린 마음이 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달의 둥근 달은 점점 기울어 간다.

 

 

 

 

봄은 봄인 갑다 했더니

노고단 정상에 여지없이 불어대는 칼바람은 매화꽃도 산수유에게

봄의 문턱을 넘으며 겪어야 하는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시리게 하얀 눈꽃세상

 

 

 

 

비록 고통의 몸부림에 잉태한 서리꽃이 없더라도

일출의 아침 빛이 부족한 노고단의 여명이지만

그래도 보여줄 있는 춘삼월의 눈꽃세상

하지만 춘설로 가득 쌓인 이곳 지리산은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4. 3. 15

사진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