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호남의 용아능선 문덕봉~ 고리봉
산행.
-산행 일시: 2004. 11.
28.
-산행구간: 내동마을- 성재골- 문덕봉- 그럭재-
두바리봉- 삿갓봉- 고리봉-
만학골-
택촌마을.
-함께한 사람: 체리가족
(방장님.산죽님.블랙님.자유님.여유님.옥전님.그리고나).
우리의 만남을 시기라도 하듯이
좀처럼 열리지 않은 하늘을 바라만 본다.
섬진강 주변에서 피어 오르는 물 안개는
스스로 무게를 견디지 못하더니만
이내 햇빛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지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끝내 희뿌연 연무를 발생시키며
부끄러운
섬진강의 모습을 감춰버린다.
<문덕봉 오르기 전 금지벌판과 암봉을...>
-05:20 집밖을
나서면서.
어제 체육대회의 뒤풀이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지만 산에 간다는 즐거움에
새벽 4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물 챙기고 하는 사이 금방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냥 간단한 김밥으로
점심을 떼 우려 하였으나…… 집을 나서면서 하는 말 ‘누가 시켜서 한다면 어찌 하겠는가’ 왜 진즉 이런 취미생활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이른 새벽이라 거칠 것 없이 달려와보니 어느덧 섬진강까지 다가왔다. 남원 근처에 와서는 한치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로 위치파악을 할
수 없어 산죽님에게 핸폰을 날린다. 다행 이도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서울에서 오신 자유님 내외분과 함께 조우하고 오늘의 산행 지를 찾아
나선다.
<문덕봉 들머리: 성재골이 아닌가요>
-문덕봉 들머리를
찾아서.
오늘 산행은 문덕봉에서 고리봉으로 연계산행이 계획되어있다. 금지면 고리봉 날머리인 택촌 마을에 내 차를 주차 시켜놓고 체리님께서 준비해주신 얼클한 복어 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주위의 짙은 안개와 쌀쌀한 아침날씨로 인하여 차 안에서 나오기를 거부한 우리는 오늘의 문덕봉의 들 머리를 찾아 나섰다. 한 시간 이상의 길
찾기는 계속 이어졌다. 문덕봉의 들 머리는 어디메뇨. 몇몇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되 돌아온 답은 “문덕봉이 어디여요” 였다. 이윽고 왔던
길 다시 찾아 내동 마을 교회 앞에 주차시키고 성재골로 들어선다.
<앞으로 넘어야 할 암봉들과 우리가 올랐던 계곡>
-성재골에서.
9시가 넘어서야 산행이 시작되었다. 성재골의 초입은 올 여름 많은 비로
인하여 산사태를 발생시켜서인지 계곡인지 길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지만 계속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300m를 오르니 정상의
안개는 걷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조망은 어렵다. 어제의 운장산 산행이 부담이 되셔서 일까. 그만 여유님께서 너덜지대에서 넘어지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넘어진 여유님이 무슨 죄입니까. (죄 지은 사람 자수하세요).
<저 멀리 삿갓봉과 고리봉을 향하여>
-문덕봉에서(589m).
문덕봉 못 미쳐 개척산행이 이어졌다.
가시덩굴을 헤치고 잡목을 쓰러뜨리며 어렵게 찾아 든 문덕봉에 서있다. 금지 벌판으로는 또 다른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철탑 밑의 그럭재와 삿갓봉
더 멀리 고리봉까지 이어지는 하늘 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북쪽으로는 88고속도로의 자동차들이 이따금씩
건너뛰는 모습이 귀여운 성냥갑의 장난감처럼 보인다. 연신 샷터를 눌러대는 향적봉님과 산죽님은 순간 순간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정신 없고,
여유님께서 너무 여유를 부리시다 다친 다리에 피 멍이 들었는데도 산행 때는 계속 먹어야 된다면서 맛있는 호박빵을 계속 들고 계십니다. 나는 계속
과일을 깎아대고 우리 여자분들 조망하느라 정신 없습니다.
<사진 위: 문덕봉을 지나면서. 아래: 철탐 밑의 그럭재와 두바리봉을 바라보며>
-그럭재를 지나
두바리봉까지.
문덕 봉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곧바로 이어지는 릿지길이
나타난다. 여자분들은 군대에서 해보지 않은 유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암봉과 암봉사이를 비집고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암능을 타고 다시금 송림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서는가 싶더니 또다시 버티고 있는 암봉 위로 일행을
올려놓기를 반복하더니만 쉽지 않게 네 번째 암봉까지 넘어선다. 설악의 공룡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산죽님의 말처럼 아기자기한 재미와 암봉에서
자생한 소나무의 괴송은 호남의 작은공룡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윽고 고도는 갑자기 낮아지는가 싶더니 그럭저럭 오다 보니 그럭재에 도달하였다.
이곳에서 두바리봉까지는 빡센 오르막길이다. 송림 우거진 호젓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는 솔솔 한 재미는 발걸음을
가볍게한다.
<사진위: 그럭재와 송대리 마을. 아래: 솔잎과 어울리는 암봉을>
-블랙님 이게 어찌된
겁니까.
일행의 선두에서 리드하는 블랙님이 띵깡을 놓고 있습니다. 사면을 우회하지 않고 봉마다 다 넘으시더니 체력이 바닥났습니까. 갑자기 주저앉으시며 배가 고파 못 가겠다는 겁니다. 이거
어쩌죠. 산죽님이 알아서 하세요 (지는 책임 못 져요) 이윽고 향적봉님께서 초콜렛으로 꼬드겨 봅니다. 제가 판단한 건데 여유님이 블랙님의 호박
빵 사건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초콜렛의 효과는 있었는지 삿갓 봉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꼽싸리 끼신 우리 방장님(울~체리는 어디에...) >
-삿갓 봉에서 점심을…
두바리봉에서 삿갓 봉까지는 살짝 내려섰다가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야
한다. 이윽고 또 다른 암봉 지대가 나타난다. 삿갓 봉 정상을 바라보니 소나무가 있어 별로 조망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양지바른 무명봉에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제 각자가 꺼내놓은 것들이 집안의 반찬 모두를 옮겨놓은 모습 그대로이다. 블랙님의 청국장 맛과
찰밥의 진미는 정말 끝내줍니다. 향적봉님의 매실주는 오늘도 인기입니다. 구재삭님이 양주와 바꿔 먹었다는 매실주의 맛을 자유님과 여유님께서 흠뻑
적셔 넣는 것 같군요. 우리가 준비한 갈비살도 부드럽고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장님께서 울~체리 하면서 외쳐 됩니다. 홀로이신 산행이
외로웠을까요(체리님 안타까웠습니다). 산행 뒤의 달콤한 휴식을 아쉬워하며 고리 봉을 향하여 떠납니다.
<고리봉에서 한 시름 놓고서. 지나온길을 되돌아보며>
-고리봉(709m).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 봉의 이름은 소금 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시내를 관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蓼川)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
성 동쪽 오수정(五樹亭: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 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 봉 동쪽 절벽에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남원시 문화 자료에서>.
<또 다른 암봉과 금지벌판을 바라보며>
두바리봉 넘어서면서부터 옥전님도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이 간단한 산행이 아니라는 둥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지리산 산행 때보다 더 힘들다는 등 ….
삿갓 봉에서 이곳까지는 고리 봉 못 미쳐
10여분은 또 다시 암능을 타고 마지막 정상을 향하여 나갈 때 오늘의 조 망대 고리 봉에 닿았다.
고리봉 정상에서 펼쳐진 세상을 바라본다.
남원의 문덕봉, 삿갓봉에서 시작하여 금지벌판을 싸 안아 감아 도는 산세는 저 멀리 지리의 주 능선이 희뿌연 연무 속에 아스라히 보이며 섬진강 의
물줄기는 고기비늘마냥 하늘거리며 뱀의 형상을 뽑낸다.그뒤로는 곡성의 동학산과 대비되는 이름 모를 산들이 세를 형성하고 있으며 한적한
금지평야에서는 마지막 가는 이 가을, 겨울채비에 여념이 없었다.
<사진위: 만학골에서 고리봉 능선을. 아래: 만학골 계곡>
-만학골에서.
아쉬운 시간이 자꾸만 흘러 산행의 촉박함을 느낀다. 벌써 시간이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으니 우리가 산행한 시간도 벌써 6시간을 초과하고 있었다. 우리 남자들끼리의
산행이라면 전만리 장군묘를 거쳐 섬진강으로 하산할 수도 있으련만 산행의 욕심은 여기서 접기로 하고 만학골로 내려선다. 만학골로 떨어지는 지능선은
이따금씩 급경사를 이루지만 바위길이 나타날 때면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으며 이끼 낀 바위로 인하여 결국 엉덩방아를 찢기
일쑤다. 갈수기인데도 계곡의 물은 제법 흐르고 있으며 마당바위들이 가끔씩 산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오늘 결국 지리의 모습을 끝까지 감추던 연무도 이곳 만학골을 내려올
때서야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에 일말의 기쁨도 얻을 수 있었다. 동네 어귀에 다 왔을 때 짖어대는 황구는 정녕
우리를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아니한 반가운 이웃으로 생각하리라 여겨본다. 시골 인심이던가. 올 김장배추가 유난히도 싸든가 넉살 좋은 그 집 사위가
우리 산 객들에게 무 하나씩을 건네준다. 벌써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 카페회원 모두 문덕봉, 삿갓봉, 고리봉의 종주
산행을 마친다. 끝으로 오늘 산행을
함께하지 못한 회원님들께도 다음 산행 시 동참하기로 하고 이만 산행 기를 마침니다.
이천사년 십일월 그믐날에.
전 치 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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