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시루봉에서 바라 본 섬진강 -산행일: -어디: 왕시루봉과 봉애산능선 -함께한 이: 울 직원과 셋이서
산행 길 헬기장에서
나의 산행버릇은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구례 벌판을 지나면서 이제야 산행 목적지를 잡았다. 왕시루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왕시루봉을 선택한 이유는 해 년마다 이맘때면 이곳을 찾았었지. 07년도 08년도 이곳에 오면 뭔가를 보여주곤 했던 산행이었다. 오늘도 그 기대 하지 않지만 또 다른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헬기장에서 바라 본 산그리메와 함께한 직원
왕시루봉! 지리산을 알고 난 뒤 지정과 비지정의 2분 법 잣대를 드리워 머물러 던 곳. 외인들의 별장을 지금은 ‘지리산 선교 문화 유적지’로 지정 해 달라는 곳 곰들의 방사지역으로 우리 산꾼들의 발을 묶어 놓은 곳. 그런 비지정의 사슬을 묶어 논 왕시루봉을 조심스럽게 걸어 간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뻗어 내리는 능선을 따라 왕시루봉을 찍고 섬진에 몸을 담근 능선의 길이가 자그마치 삼 십 리가 넘는다.
왕시루봉 조망터에서 바라본 천왕봉인데 마침 촛대봉과 함께 한 듯 하네요
구만리 언덕배기를 오르자 벌써 땀이 흥건히 적셔온다. 처음부터 사유지를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성 문구가 어지럽다. 하기야 이곳은 국립공원이 아닌 엄연한 사유지임에 분명하다. ‘산행 시 스패츠와 아이젠을 단단히 준비 해라’ 는 내 구호가 무색하기만 하다.
헬기장에서 무등산 배경으로(상)/모후산배경(하)
이곳을 몇 번 와 본 곳인데도 고도 750에서 잠깐 방심하는 사이 옆 사면 길을 따르다가 엉뚱한 곳으로 잠시 들러 10여분 알바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잠시 후 이내 인공조림지역인 잣나무 단지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때마침 지나는 산 꾼들과 잠시 대화를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네모 클럽’ 사진 동우회원들이었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또 다른 박 팀들이 우리를 반긴다. 두 분이 아는 체를 하는데 도대체 뉘신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아 미안하기도 하다. 지송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 있는데 물어 보기도 좀……
이 텐트에서 조망이 끝내줍니다.07년에 내가 묵었던 곳
드디어 함께한 동료들에게 외국인 별장을 보여주기로 한다. 지난해만 해도 그 때는 장로님께서 관리를 하셨는데. 지금은 여 목사님께서 생활하고 계시네. 우리에게 별장 이곳 저곳을 안내 해 주시는 모습이 너무 과분하기까지 하다.
지리산 선교 유적은 1922년 미국 남장로회 한국 선교부가 조선 총독부와 도쿄 국제대학과 교섭, 묵인 하에 노고단에 천막 7동과 원목 집 6동을 건립했고, 1923년 전남도에서 여름 지리산 캠프를 허락하면서 선교사 수련회와 성경번역, 풍토병과 괴질을 피해 휴양을 하는 수양 관으로 활용됐다 함.
이어 1925년에는 도쿄제국대학이 연습림으로 관리했고, 총독부의 승인을 얻어 10년간 약 10만평을 임대해 사용했다. 1928년 돌집 18채, 강당(예배당)건립, 건축물 32동이 완공됨 1935년 임대기간이 만료됐고, 1940년 선교사 귀국 및 56개 동의 수양관 이 폐쇄됐다. 특히 1948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과 여순반란 사건으로 건물이 훼손되어 노고단에서 지금의 왕시루봉에 1962년에 건축됐다. 현재 국유지로 되어 있고, 관리자는 서울대학교로 되어 있다 함.
사진작가님들의 포토라인에서
봉애산 능선에서
목사님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섬진강의 포토라인에 올랐다. 섬진강의 물줄기가 은빛으로 반짝거리며 금방이라도 은어가 뛰어오를 것만 같다. 부드러운 한낮의 햇살 속에서도 잿빛으로 반기는 겨울 잡목들. 비록 운해의 광경을 볼 수 없지만 산 밑 자락을 아스라이 휘돌아 가는 섬진강. 사진작가 임소혁님은 이곳에서 꽃을 보았을까, 산을 보았을까, 강을 보았을까, 그 속에 묻힌 자신을 보았을까, 한참이나 이곳에 머물면서 목사님과도 헤어질 줄 모른다.
무등산과 모후산이 잘 보이죠
왕시루봉 찍고 봉애산 능선으로 하산 지점을 잡았다. 조망 터에 앉아 점심상을 차렸다. 내가 준비한 쭈꾸미 주물럭이라면 준비한 내용물을 내 놓고 버너에 불을 지핀다. ‘세상에 이럴 수가……’ 버너 노줄에서 휘발유가 새고 있어 몇 번이고 접촉을 시도 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 혹 원시인 일행이 이곳에 온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연락이 될까 하여 수 십 번의 연락을 취했지만…… 그냥 맨밥과 김치 하나로 점심을 해결한다. 준비한 쭈꾸미는 배낭에 다시 넣고 출발 하려는데 그 때서야 서북님에게 전화가 온다. “형님, 이곳 별장으로 오시죠” ‘굶었으면 굶었지 더 이상 못 올라간다’ 그 때는 능선의 고도를 한참 낮추는 시간이었다.
봉애산능선 고도 800 전망터에서
어차피 봉애산 능선은 나로서는 처음 길이었다. 중간에 2~3군데의 암봉 우회 구간도 없고 생각 보다 위험한 구간이다. 때로는 잡목들이 목덜미를 후려치는가 싶더니 이내 콧구멍까지 후벼 파 댄다. 지리산 산행이 두 번째인 동료들에게 안전 산행을 몇 번 강요를 하지만 불안 하기도 하다.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헬기장 고도 1120에서
이윽고 고도 620에서 사면으로 휘 돌더니 자연히 나도 모르게 우측능선을 따르게 된다. ‘어~ 잘못 왔네’ 봉애산 능선은 직진하여 목아재에서 또 하나의 고도를 올려야 하는데 잠깐 하는 사이에 송정마을로 향하는 산 능선을 타고 말았다. ‘그냥 가자~ 어차피 이 길도 처음인데……’ 갑자기 찬 바람이 불어 온다. 서울에 있는 큰애 한데서 연락이 온다. 무척 춥고 엄청 많은 눈이 내린다고…….
잠시 후 송정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키를 달라는 직원에게 키를 맡겼는데 어느새 구만리로 달리고 있었다. 걸어서 30분이라 했더니 ㅋㅋ 젊음이 좋긴 좋다. 단숨에 달려갔던지 40여 분만에 내 차를 코 앞에 갖다 댄다. 기다리는 내내 이곳 섬진강 강바람은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청산 전 치 옥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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