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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아~ 멀고먼 솔봉능선

by 청산전치옥 2010. 3. 14.

 

 
아~ 멀고먼 솔봉능선
 

 

-산행한 날: 2010.3.10

-어디를: 산수유마을- 투구봉-솔봉능선-왼골지계곡-월계마을

-함께한 이: 배재길. 입선. 바다. 쑥부쟁이.

 

 

 

지겹도록 내리던 3월 봄비에 그래도 봄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 듯싶더니만……

이제 막 트고 있는 꽃눈들이 춘설의 장난에 화들짝 놀란다.

어찌 그들뿐이랴

경칩을 지나 잠에서 깨려던 동물들도 이번 폭설에 깜짝 놀랬을 거다.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춘설은 그리움을 가져다 주기보다 아예 가슴을 도려낸다.

봄을 시샘하는 듯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산수유는 춘설에 그만 꽃잎이 애잔하게 이지러지고

나목(裸木)들이 아직도 아쉬운 사랑이 남았는지 백설의 추억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남녘에서 또다시 불어오는 춘풍에는 빙점(氷點)을 지켜내지 못하리라

신난 철부지 산 꾼들이 오늘도 산에 오른다.

 

 

 

형님, 내일 기대 만땅입니다. 지리산에 눈이 온답니다

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 동안 정리해둔 겨울장비를 챙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게 맑게만 느껴졌던 이곳 날씨와는 상관없이 순천을 넘어서자 마자 거북이걸음이다.

재길아우를 만나고 산행코스를 변경하기로 한다.

 

 

 

상위마을로 향하려던 차는 내리던 눈으로 올라갈 수 없어 가족호텔 근처 산수유마을에 안착시킨다.

내리자마자 눈은 더욱더 내리기 시작하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춘설을 보니 우리들은 또 다시 어린애마냥 동심으로 흡수되듯 마냥 광기를 부린다.

흐드러진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보기도 하고 발길질 끌며 길다란 발자국을 남기고

처음 보는 눈처럼 마냥 광기를 부리면서 추억 쌓기에 들어 갑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추억이 많으면 부자라고……

 

 

 

신평리 칠선녀샘물 길을 따라 오르더니 이내 우측 능선으로 달라붙는다.

길을 알지도 모르고 언젠가 와 봤던 울 산행대장인 재길 아우를 따라서.

어차피 눈으로 덮여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적당한 감으로 흔적을 찾아서 떠나는 산행

주변의 조망이 트이지 않아 더욱더 알 수 없는 산행길이 되고 있구나!

 

 

 

어딘가 조금만 가면 투구봉이 나올 거라지만, 눈 속에 정녕 투구봉을 찾을 수는 없었다.

능선을 따라 잡목을 헤치고 알바를 하는 사이에 고도 470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오늘 만복대 찍고 내려오려고 했는데 아마 그곳까지는 무리인 듯싶다.

작년 이맘때 이 길을 갔는데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네

그러나 믿음직한 배대장이 있으니까……

 

 

 

내리는 눈과 땀이 범벅이 되어 옷이 젖는 것은 문제는 없으나 장갑이 젖어 여벌을 준비 못해 아쉽다.

몇 번이고 카메라를 들이밀다 넣고 하는 과정에서 손도 시리고

영제봉능선은 왜 안 나오는 거야 하면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본다……

그러다가 벌써 12 넘어가자 배가 고파온다.

모르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밥 먹고 가자.

일단 북 사면의 칼 바람을 막고 눈맞으면서 밥을 먹을 수 없어 타프를 치니 어느 정도 아늑하다.

 

 

 

 

1시간 넘게 점심상을 차려먹고 나니 한기가 돋는다.

아직도 눈발을 내리고 있고 주변 풍광은 전혀 볼 수 가 없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고도상으로는 영제봉능선이 거의 다 와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또 다시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이제 감이 잡힌다.

작년 이 길을 따라 가족호텔 뒤로 산행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14 25 고도 1000을 넘는 영제봉능선에 닿는다.

 

 

 

이곳에서 다름재까지 가려면 또 다른 능선을 넘어야 한다.

그 수고를 덜겠다고 우리는 적당한 곳 능선에서 바로 보이는 계곡을 따라 내려서기로 한다.

마침 눈도 있어 적당할 것으로 생각 되었는데 왠걸

고도를 낮추니 주변의 너덜 속으로 발이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수 십 번의

넘어지는 과정에서 왼골의 합수점을 맞는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오늘 회식날인데……

 

 

 

-산행을 마치면서-

봄의 문턱을 넘으려면 그래도 꽃샘추위가 있는데

갑자기 내리는 춘설로 인하여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경고가 아닌가 싶다.

겨우내 움츠리고 나태해지는 사람들에게 봄을 기다리다가 해이해진 마음을

다시 잡게 하는 염려의 경고,

그것이 정녕 자연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산행날에 잡아서 내려준 춘설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축복인 듯 하다.

그 축복을 맞이하라고 그렇게 또 산수유는 어여쁘게 피었나 보다.

 

 

2010.3.10 지리산 솔봉능선에서

청산 전치옥 씀  

 

**사진 일부에서 플레어 발생했네요**
계속 눈은 내리죠. 손은 시리고 렌즈 필터에 묻은 습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제거하지 못해 붉으스름 또는 푸른끼가 발생됐습니다.
참고 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