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산의바람흔적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꼴찌에게도 보여주는 만복대의 상고대

by 청산전치옥 2010. 2. 17.

꼴찌에게도 보여주는 만복대의 상고대

 

 

 

기대하지 않고

흐르는 물대로 순응 했을 뿐인데

지리산 만복대는

하얀 털모자 쓰고 나를 반기더군요.

 

한 밤 중에 소리 없이 서리를 뿌려 주었고

소리 없이 나는 그것을 받아 들였죠......

 

산상에 상고대 차려 놓은 자 누구 입니까?

그 속에 할랑거리며 여유부리 자 누구 입니까?

 

-2010년 정월초이튿날  만복대에서-

 

 

 

-일시: 이천십 년 정월 초이튿날(2010.2.15)

-어디를: 지리산 만복대

-누구랑: 홀로

 

 

 

<상황 1>

설 명절인데 근무형편상 고향에 갈 수는 없음.

집안 식구 모두 고향으로 내려 감.

오히려 부담 없이 산행 하기는 최적의 좋은 기회임

일기예보로 들려오는 눈 소식과 지리산 상고대의 흔적들 등……

 

 

 

 

<상황 2>

혹시 몰라 토목께 산행제의 함.

전화 준다고 해서 아침 새벽07까지 기다림.

전화 없음. 그냥 갈까 말까 하다가 후다닥 배낭 챙기고 떠남.

구례 휴게소에서 한 숨 때림.

 

 

 

 

<전개>

아자씨, 아자씨 만복대 상고대 다 떨어져부요

이런~ 닝기무럴~~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일어 났습니다.

그 소리는 마침 꿈 속에서 나에게 하는 소리임에 분명했다.

늦어도 한참 늦었어

10가 넘어가버리자 괜한 악세레이터만 밟아 댕긴다.

 

 

 

11가 다 되어 시작한 산행은 음지인 이곳 골짜기까지 햇빛이 들어 오고 있었다.

설마 추울까 하고 챙겨 입었던 부속품들은 다 떨궈 내기 시작합니다.

마음은 바쁘지만 어찌 합니까?

발바닥에 집히는 눈 밟는 여음이 이렇게 곱게 느껴질 때도 있단 말인가?

마치 자신이 톱스타들의 핸드프린팅처럼 선명하게 남기며 뽀드득뽀드득 박수를 쳐줍니다.

 

 

 

 

남쪽 사면에는 희뿌연 개스층이 뿌려져 시야확보가 좋지 않고

따스한 봄날 같은 날씨로 눈이 녹아 들기 시작할 이 무렵

나는 벌써 마음을 비웠지요.

비워진 꼴찌의 마음에 뭐가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도 한번쯤은 쉴 법도 한데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오릅니다.

하기야 말할 사람이 있는가 ㅋㅋㅋ

 

 

 

 

산행 후 2시간이 못되어서 묘봉치에 닿습니다.

생각지 못한 주변 환경에 놀랐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게 느껴졌던 능선에는 북 사면에서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으로

주변 나뭇가지에 상고대의 흔적으로 빙화(氷花)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말과 글로서 표현을 해야 할지……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에 능선구비가 신비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거침없이 카메라 앵글에 담고 마음에도 담고……

 

 

 

 

 

지나왔던 길을 다시 찾아가봐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지리산

그렇게 찾아왔던 이 길이 오늘은 완전히 다름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구나.

나무 가지가지마다 무리로 피어난 얼음 꽃이며

아직 녹지 않은 눈꽃이 햇빛에 반사되어 비치는 영롱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그러나 마냥 이곳에 머물 수 없지 않은가.

저 만치에는 만복대가 하~얀 꼴깔모자를 쓰고 나를 부르는데……

 

 

 

 

더딘 발걸음을 부추기며 만복대를 향합니다.

오늘 무리하면서 만복대를 찾은 이유는 내일이면 또 다시 지리산문이 닫히는 날이지요

쨍그랑. 쨍그랑 소리가 마치 집안의 샹들리에가 바람에 이는 소리와 같습니다.

내가 지나갈 때면 나뭇가지의 상고대의 흔적들이 부딪치면서 소리를 냅니다.

행여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걸어보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러다 목 마르면 입에 물고……

 

 

 

아무도 없는 이곳 만복대에 올랐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 지저귄 까마귀는 이곳 영혼들의 영령을 달래주듯 까~악 거립니다.

바위 앞 양지바른 곳에 의자를 펴 놓고 한참을 노닙니다.

그리고 몇 글자 자신의 흔적을 적어 내려 갑니다.

산상에 상고대 차려 놓은 자 누구 입니까?

그 속에 할랑거리며 여유부리 자 누구 입니까? 라고……

준비한 것이라고는 휴게소에서 부탁하여 찐 삶은 계란 3개와 곶감 몇 4개 쵸콜렛 약간

이 모두가 오늘 점심입니다.

모처럼 헝그리 산행을 작정하고 떠났으니까……

 

 

 

 

잠시 후 한 무리의 산친구들이 지나 갑니다.

사진을 찍어주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수 순천 ***산악회 회원들이라면 반갑게 맞아줍디다 만

아직, 50대는 아니시죠. 저희 카페는 30~40대만이 회원 자격이 있습니다 라는

소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 참 세월이 빠르구나……’

 

 

 

 

밤새 씨를 맺고 바람 따라 자라난 상고대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꼴찌인 나에게도 이렇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이곳 만복대가 아니면 볼 수 있을까

햇살을 머금고 거기서 쏟아지는 반짝임의 환상과.

간간히 불어주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에서 상고대의 부딪힘과 햇살의 어울림은

무지개의 일곱 빛깔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2시간의 여유를 보내다가 이제 자리를 비켜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만복대 돌탑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까마귀에게로……

 

 

 

서산에 해가 뉘엿거립니다.

노을이 아름답다면 이곳에 저무는 노을까지 즐기려고 하였지만 과욕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갈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때늦은 시간에 떠나는 산행

가는 길 내내 괜한 걸음을 했나 싶어 후회하기도 했지만

꼴찌에게도 이런 모습 보여주는 지리산이기에 더욱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향하면서 잠시 고향의 설 명절을 그리워하며

경인년 새해에는 이곳에 핀 상고대가 봄눈처럼 녹아 푸른 잎이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 산친구 모두에게도 꿈과 희망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하며 산행기를 접습니다.

 

 

2010. 2. 15

-청산의 바람흔적-

만복대에서 청산 전치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