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전시장인 월출산을 찾아
<바람재에서 본 청황봉>
-언제:
2005.7.21 -어디를:
월출산 -누구와: 천운. 백야. 동기. 일출. 여학생. 나. <천황을 오르면서 장군봉을>
<우리가 걸어 온 길:통천문에서>
<프롤로그> -월출산과 천관산의 인연- 2003.5월.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일까. 늦게 시작한 나의 산행에 보상이라도 할 듯이 하루에도 1~2개의 산을 오르내리던 어느
날. 월출산의 종주를(천황사지~도갑사) 너무도
싱겁게(?) 끝내버린 시간이 아쉬워 장흥 천관산으로 차를 몰았다. 관산읍에서 천관산의 들 머리를 묻던 중
출발하려던 나의 차와 때마침 집으로 가던 유치원생과의 접촉사고로 인하여 결국, 천관산과
월출산은 나에게 멀어지고 있었는데……
<조각공원에서>
-또 다시 유혹의 손길은 ‘미운 자식이 더 애증(愛憎)이 간다’ 는 옛말이
있듯이 자꾸만 유혹의 손길이 닿는 것을 어찌 무시 할 것인가. “쇠뿔도 당김에 빼라” 는 속담처럼 생각 날 때
산행의 결심을 하고 같은 팀원들께 의견을 타진한다. 코스는 그때 산행한 코스 그대로이고 이번에는 널널산행 하면서 수평과 수직절리가 빚어낸 월출산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다양한 암상(巖象)을 가슴에 담고 싶다.
13번 국도에서 바라 본 월출산의 이미지는 짙은 안개로
드리워져 좀처럼 수줍어하는 자태를 이내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조각공원 건너 천황사지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야 못내 수줍어하듯 반라(半裸)의 모습을
보여 주더니만 또 다시 쉽게 안개 속으로 사라져 몇 번의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며칠 전의 장마로 잔뜩 습기 먹은 돌덩이들과 아침 산새들의 지저귐은 우리들의 월출산 입산을 축하하여 주는 듯하고 천막 친 천황사지의 노 스님은 2001년
화재로 소실되어버린 천황사의 재건의지로 신념이 강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초라하기만 하다. 조속한 시일 내로 복원이 되었으며 하는 바람이다.
천황사지를 뒤로하고 대나무 숲을 지날 무렵 오늘의 일행 중 홍일점인 여대생과 조우하게 된다. 갑자기 울려대는 핸폰을 쥐어보니 일출 님으로부터 연락이다. 어제 저녁 이슬과의 전쟁을 치르고 난 후휴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단다. 구름다리에서 바람폭포로
다시 내려가야겠다는 내용이다. 어차피 차량회수도 그러니 잘
됐다 싶었지만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구름다리에서 바라 본 장군봉>
-구름다리.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빗줄기처럼 쏟아 붓는 땀방울을 주체할 수 없는 사이에 구름다리에 도착한다. 바람폭포에서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을 기대 해 봤지만 바람의 흔적은 바람재로 날려갔는가. 여기서 일출님을 기다리기로 한다. 아마 그도 웬만하면 산행을 포기하지 않은 스타일인데 오죽하면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이윽고
천운과 백야님이 도착하고 집이 인천이며 이곳 외가에 들러 월출산이 처음 이라는 여대생까지 도착하였다. 함께 동행하자는 제의에 가는데 까지 가 보겠단다.
<사자봉>
구름다리 맞은편에 펼쳐지는 장군봉의 암경(岩景)을 감상하며 거친 숨을 진정시켜본다. 장군봉 능선의
6개의 암봉이 지장과 덕장. 용장. 등 저마다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 하였다.
-사자봉에서. 사자봉은 등반 초입 접근이 쉽고 등반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이어서 산악인들의 인기 있는 릿지구간이다. 바람폭포에서 보이는 사자봉의 형태가 마치 사자가 앞발을 구부리는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름다리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사자봉을 향하여 오른다. 급경사의 코스인 이곳은 가파른 철계단과 철 사다리를 올라 이내 사자봉에 와 닿는다. 동쪽으로
펼쳐진 들판에는 가끔씩 드리워진 안개 사이로 사자 저수지와 촌락의 여유로운 모습이 갈길 바쁜 우리를 붙들고 있구나. 조금 전에 지나온 시루봉은 사자봉의 압권에 밀려나서인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다.
월출산은 호남정맥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지만 백두대간의 한 맥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기에 무색 할 정도로 독립된 산군을 이루고 있다. 남도의 너른 들녁에 들어선
월출산은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라는 영암 아리랑의 노랫말처럼 산봉우리와 달뜨는 광경의 어울림이 빼어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봉우리와 능선과 계곡에서 빗어낸
기암괴석과 바위덩어리가 어울려 만들어진 절경은 마치 장엄한 성곽 같기도
한 거대한 원추형의 첨봉들이 위용 넘치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매봉에서. 사자봉을 뒤로하고 급경사의 내리막이 이어진다. 벌어둔 고도를 내리치면서 또 다시 올라야 할 통나무 계단을 쳐다보니 이내 맥이 풀리고 만다.
여름에는 계곡 산행을 해야 할 것을 후회도 하여 보지만,
더군다나 한 여름의 월출산 산행은 그늘도 없이 그냥 햇볕에 노출되고 있었다. 10:50 천황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남쪽의 강진만이
보인다. 천황봉을 포기하고 경포대로 하산할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 본다.
-천황봉을 향하여. 주능에 올라선 뒤 기암괴석으로 가득 찬 월출산의 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성큼 다가선 천황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본다. 뒤 돌아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내려본다.
천황을 향하여 오르는 사면은 뜨거운 퇴약볕을 피할 길이 없다. 이따금씩 그늘이 형성된 나무 밑에 있어 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온실 속의 산행인 것 같다.
나도 그렇고 함께한 일행 모두도 힘든 표정이다. 이윽고 바람폭포 삼거리에 도착하여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면서 할 일없이 이곳 통천문으로 향하는 181개의 계단를 헤아려 본다.
<뒤의 사자봉과 천황사지 집단시설지구>
-정상에서. 천왕봉이라 해야 옳을는지는 정확한 답변을 얻기는 어렵지만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천황이라는 낱말이 몹시도 거슬린다. 전국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풍수 지리학적으로 좋은 명당의 이름을 바꾸고 커다란 쇠말뚝을 박아놓아 민족적 정기를 끊으려 하였던 그들이 아닌가. 불과 809m인 월출산 정상이건만 다른
산의 정상과는 달리 펑퍼짐한 바위 봉우리가 가히 모든 사람들을 끌어 안을 만큼 널찍하다. 수 많은 잠자리 떼들이 활공하고 있는 이곳 정상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과 스쳐 지나 온 길을 헤아려 본다. 아직도 거치지 않은 운무와 개스로 인하여 시계가 영암 읍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어쩌다 운 좋으면 향로봉과 구정봉
그리고 경포대가 잠시 보일 뿐이다. 더 이상
지체 할 공간이 없다. 그늘을 찾아서 빨리 이곳을 피해야 하는데 일행은 오지 않고……
백야님이 천황봉에서부터 연료를 보충해야 된단다. 더 이상 배가 고파 못 가겠다니 우선 그늘을 찾기로 하고 천황봉을 뒤로 한다. 아무 불평 없이 잘
따라준 여학생도 지금쯤 허기가 질 터인데 그까짓 것 참지 못하냐고 핀잔을 준다. 이윽고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을 내 놓는데 필자인 자신만 도시락이고 약속이라도 한 듯 3명 모두가
초밥이 아닌가. 간단하게 산행을 준비한 여학생은 점심이 준비 될 일이 없으리라. 계속 물만 들이킨 우리들이 밥맛이 좋을 리 없지.
<보리바위:일명 조리퐁 바위>
-아쉽게 놓쳐 버린 남근석. 멀리 조망되는 구정봉과 향로봉을 향하여 내려온다. 마치 바람재로 이어주는 주 능선이 우리 누님의 가르마의 형상이로다. 무슨 생각에서일까. 순간의
방심일까. 아니면 그때 KBS 영상제작팀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대화하다가 그냥 깜박
잊어버리고 남근석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말았으니 어쩌란 말인가. 2년 전에도 똑 같은 상황에서 그곳을 스쳐
지나더니…… 이곳 바람재는 천황봉과 구정봉 향로봉을 이어주는 능선의 허리에 해당된다. 바람재의 시원한 바람은 우리
산 객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는데 오늘은 전혀 아니올시다.
<수석 전시장인 월출산의 일면>
<배틀굴>
<수평절리의 예술품>
구정봉 오르기 전 베틀굴은 필연적 코스다. 임진왜란때 여인네들이 이곳에 숨어 배를 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외형상으로는 천황봉밑의 남근석과 대조적인 여근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월출산을 천황봉을 중심의 남근석으로 상징되는 남성적인 힘과 구정봉과 억새밭 구간의 부드러운 능선과 배틀굴의 여성적인 섬세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절묘한 산이기도 하다.
-구정봉 정상의 물웅덩이의 정체는
땅속에서 수분을 많이 포함한 토양이 암석에
오랫동안 정체하면 소규모의 틈새나 절리로 수분이 침투하여 암석이
풍화를 받기 시작한다. 이때
침식과 풍화가 암석 표면의 특정 부분에 집중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작은 홈 모양의 요지가
생겨난다. 이후 요지에 물이 고이면서 고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화학적
풍화가 이루어져 작은 구멍의 크기가 차츰 확대되어
간다. 땅속에서 이러한 풍화로 인하여 암석 표면에 초기 요지가 형성된 이후
화강암을 덮고 있던 풍화물질들이 모두 삭박 제거되어 대기 중에
노출된다. 이후 요지에 빗물과 눈 등의 수분이 정체하여
동결과 융해를 반복 하면서 암석 표면에 수축과 팽창을 가하여
암석을 이루는 광물조각이 점차 암석으로부터 조금씩 분리 분해되어 구멍의
바닥과 주변이 파괴 된다.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지속 되면서 지형학 용어인 나마 (gnamma) 즉 가마솥 바위가 확대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월간 산에서 퍼옴-
좁은 바위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간 구정봉에서 바라 본 천황봉의
장엄한 경관과 바로 앞에 펼쳐지는 계곡능선의 다양한 암괴들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져 있는 박리현상과 수직방향의 수직절리가 빚어낸 예술작품 속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구정봉의 물웅덩이에는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어려운 몇 마리의 개구리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모습이며 아직도 올챙이의 상태로 있는 모습이 신기 할 뿐이다.
-국보 114호인 마래여래좌상. 구정봉에서 0.5km에 위치한
마래여래좌상을 찾기로 하였다. 월출산 600m 고지에 있는 화강석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써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좌상의 근엄한 표정을 엿 볼 수 있다. 조용히 다가가
두손을 합장하고 자신의 소원과 속세의 해탈을 빌어본다. 뜻하지
않게 따라 나서는 여학생의 큰절의 의미도 나와 비슷한 소원을 빌었을까?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억새 밭을 향하여. 갑자기 일행 중 동기님이 생각났다. 전 번 지리산 산행 때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난 뒤라 우리가 구정봉을 들리는 순간 그는 곧바로 미왕재로 향했던 것이다. 그를 찾기 위하여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여 나갔다. 설마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았겠지 하는 약간의 염려는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은 군데군데의 기암들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디카에 담았다. 14:40
미왕재의 억새 밭에 닿았다. 가을이면 은빛물결로 춤을 추는 이곳에서 잠시 나의 족적을 찾아 뒤 돌아보면서 여유를 찾는다. 아직은
녹색 무드가 더 강한 펑퍼짐한 억새 밭에서……
-홍계골따라 도갑사까지. 이제 오르는 길은 없다. 여기서 시작된
2.6km 의 내리막 길은 도갑사까지 이어진다.
아껴둔 물을 다 소비해도 좋을 것 같길래 페트병의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여 마신다.
이곳 억새 밭의 주위가 2년 전의 모습과는 달리 하 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도갑사 내려서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이내 계곡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척이나 반가운 물과 그늘을
향해 내려간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지저귀는 산새들의 전송을 받으며 내려서는 계곡은 며칠 전의 장마치고는 의외의 물이 많지 않았다. 계류 하나를 건너면서 이제부터는
도갑사 계곡이다. 도갑사 1.8km 의 이정표에서 동기님을
다시 불러 본다. 행여 핸폰이 터질까 열어 보지만 연결이 안된다.
도갑사 거의 다 가서야 만날 수 있었고 또한 일출님이 그곳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도갑사 5층 석탑에서:일출님 사진>
<에필로그> 현재 월출산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이
9천만 년 전에 지표면을 형성 하였는지는 지질학자들의 몫이다. 2년
전에 처음 월출산을 종주 했을 때 사람들은 왜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칭송 했던 가를 오늘에서야 수긍이 간다. 화강암이 마치 벽돌을 쌓아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수평 수직절리의 암릉들을 감상하면서 이 아름다운 강산에 내가 존재한다는
자체로 커다란 감흥을 받았다. 행여 나의
어설픈 산행 기로 인하여 세속의 먼지를 덧씌우는 누를 범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이만 산행 기를 마칩니다. 35도를 넘는 폭염
속에서도 끝까지 함께 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정말
힘겨운 산행이었습니다. -산행정리. 09:00 산행 시작(조각공원) 09:10 산행 들머리 09:45~10:20 구름다리 10:50 이정표(매봉) 구름다리
0.9/경포대3.0/천황봉1.0 11:38~12:05
천황봉(809m) 12:24~12:50 점심 및
휴식. 13:04 바람재
삼거리(도갑사4.5/천황봉1.1/구정봉0.4/경포대2.3) 13:25~13:35 구정봉. 13:50 미래여래좌상. 14:07 구정봉(743.1m) 14:40 미왕재
억새밭(도갑사2.6) 15:28 산행종료(도갑사)
2005. 7. 22
청산 전 치 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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