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어디: 초암사~ 국망봉~비로봉~천동리 -누구와: 백두산악회에서 홀로
하늘과 맞닿은 소백산 비로봉의 표지석은 하얀 분 칠을 하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겠지 칼 바람의 흔적도 아랑곳없이 초병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기다림과 설렘을 안고 찾아준 우리에게 기쁨의 탄성을 울려주겠지…… 그래, 기대를 걸어보자
이상은 산에 오르기 전 자신의 희망이자 기대입니다.
지리산으로 갈까 소백산으로 갈까 설마, 소백산에 오르면 상고대는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초암사 가는 아스팔트 길이 왜 이리 더디단 말인가? 산 능선을 바라보니 하얀 모자를 쓴 봉(奉)이 내 눈에 들어 옵니다. 분명 저 봉우리가 비로봉이겠거니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 합니다. 안내산행이 그렇듯이 선두를 달리는 그들 모습은 초암사 들어가기 전 시야에 멀어졌네요. 초암사 주변을 서성이다 그냥 눈팅으로 만족하며 오름 짓을 합니다.
잠시 후 조선시대 이퇴계등 유현(儒賢)들이 시를 읊었다는 죽계구곡을 사이에 두고 오릅니다. 계곡의 유명세를 보면 굉장했을 법한데 꽁꽁 얼어붙어 그 의미를 모르겠네. 지금 아침을 거르고 왔기에 어느 한 켠에 앉아 밥 먹기가 청승맞을 것 같아 식혜 한 모금으로…
봉바위를 지나 돼지바위를 지나면서 비로서 감춰둔 카메라를 꺼내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고도를 올렸으니 머지않아 능선에 닿겠지요. 소백산을 두 번째 맞는 오늘은 그 때의 칼바람에 비하면 완전한 봄날이라는 것을 산행 초입부터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그 이상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구나 하고……
산행시작 2시간 반 만에 국망봉에 닿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선 도시락을 꺼내 아직도 온기가 있는 찰밥을 밀어 넣습니다. 반찬이야 별것도 없지만 그래도 찬바람에 개 눈 감추듯 잽싸게 먹어 치웁니다. 국망봉, 형제봉과 연하봉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의 줄기가 이어지는 점. 바람은 불지 않지만 그래도 기온은 차갑습니다. 음지에는 아직도 시들지 않은 얼음꽃 몇 송이가 열려있어 마음의 위안을 줍니다.
비로봉 오름길에서 바다님과 피오나님
비로봉을 향에 오릅니다. 멀리서 보면 평탄한 사면 길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몇 번의 높낮이 고도를 올리고 중간 중간에 밤새 씨를 맺고 바람 따라 자란 튼실하고 투명한 얼음꽃을 바라봅니다. 얼음끼리 부딪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 돌아 보면 아뿔싸! 그렇게 버텨보려고 바둥대지만 바람 따라 피어나지 못한 상고대의 흔적은 소멸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의 순리(順理)겠지요.
순리에 따른다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지요.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과 자연에 역행한다는 것은 벌써 차원이 다릅니다. 가까운 현실에는 볼 수 없지만 먼 미래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줘야 할 아름다운 강산 그 강산에 케이블카가 웬 말인가요. 우리 인간의 이기(利器)가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생각 해 봅시다.
비로봉 가는 길에는 아직도 뿌려진 눈이 흩어져 있네요. 좌우 사면에 넓은 초윈지대를 지나면서 열린 하늘과 맞닿는 능선 사이로 만들어진 데크가 기차 길을 연상 캐 합니다. 정상에는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연인들끼리 껴안고도 찍고 때로는 나이를 떠나 자신이 마치 소녀인양 갖은 아양을 풀어내기도 한 모습들……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이제 올 겨울 소백의 흔적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여운에…… 시계를 보니 내려서야 할 시간이 다가와 있네요. 북 사면의 천동리 가는 길은 아직도 그대로 눈이 있습니다. 잠시 후 소백은 대표하는 주목 군락지에 닿습니다. 결국 죽어서도 천 년을 간다는 그 주목 앞에 섰습니다. 그 의연한 모습은 지금도 오 간데 없는데 100년도 넘기지 못할 우리 인목(人木)만은 말이 이렇게도 많은가……
이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면서 천동리로 향합니다. 산행에서 좀처럼 아이젠을 하지 않은 난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 스틱으로 균형을 잘 잡고 가면 오히려 그게 편했지만 가끔씩 아찔한 뻔 사고도 있었다. 내리막길은 의외로 넓은 평탄한 길이었지만 북 사면이라 아직은 눈이 그대로 있어 가끔씩 넘어지는 사람들을 봅니다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싫은 내색은 없고 오히려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천동쉼터를 지나 다리안 관광지에 닿았을 때 산행시간 보다 왕복시간이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 소백의 흔적을 남기면서 산행을 마칩니다.
-산행을 마치면서 솔직히 기대를 안고 왔던 산행이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바라는 내 욕심은 과욕이었을까? 산행에 언제나 미련이 남듯이 집에 가면 또 자신이 담아 온 이미지를 몇 번이고 보겠지요 그러면서 자신은 또 산을 찾겠지요. 소백산 상고대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서 꼴찌인 나에게도 특별한 선물을 주었네요. 얼음 꽃과 열린 하늘 그리고 흡족한 마음 이제 올 겨울은 이것으로 끝이 될지언정 내년에는 분명 꼴찌일지라도 내가 백학(白鶴)이 되어 함께 군무를 즐기며 행복한 긴 인생 역정의 산행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만 산행기를 마치렵니다.
–청산의 바람흔적은 소백산에서- 청산 전 치 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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