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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의바람흔적] 산에서 길을 묻다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일반산행기

삼산, 안개 너머 기다림의 기록

by 청산전치옥 2025. 5. 5.

삼산, 안개 너머 기다림의 기록

짙은 안개비가 산을 휘감고, 정상에서는 바람이 몰아쳤다.

 

산행코스; 목사동면 수곡2구마을회관-임도-편백숲길-희아산 갈림3거리-삼산(772m) 원점회귀

나 홀로 새벽 출사 겸 산행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 마빡에 헤드랜턴 불빛 켜고 홀로 삼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목사동면 수곡2구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임도와 편백숲길을 지나 희아산 갈림 삼거리를 거쳐 삼산 정상(772m)에 오르는 원점회귀 코스. 홀로 산행과 출사(出寫). 그 둘은 이제 내게 일상의 한 조각이 되어 있다.

삼산은 호남정맥의 한 구간으로, 서북쪽 선주산(572m), 북서쪽 비래산(694m), 그 곁의 신유봉(693m)과 용암봉(160m)까지 곡성 목사동면의 산줄기들이 가지를 치듯 솟아 있다. 이 산을 처음 알게 된 건 2001, 온 마음을 다해 산을 타던 시절이었다. 남들 다 하는 호남정맥 산행을 따라 앞만 보고 달리던 그때, 스쳐 지나갔던 삼산이 문득 다시 생각났다.

그 이후 몇 차례 발길을 옮겨보았지만, 삼산 정상은 잡초가 우거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근 답사 때 일부를 정리해 두었던 덕분에 이번엔 조금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산의 마음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정상에 도착한 건 새벽 5시 무렵. 그러나 반겨주는 건 짙은 안개비와 매서운 바람뿐. 손은 시리고, 몸은 덜덜 떨린다. 해는 이미 동쪽 하늘 너머 솟아올랐을 시간인데 안개는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등산 방면으로 간간히 안개가 걷히는가 싶다가도 다시 휘몰아치는 흰 장막에 시야는 금세 가려진다. 그렇게 기다림은 끝없이 이어진다.

허기를 달래려 챙겨 온 빵 조각을 꺼내 입에 넣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산 사진 한 장 건지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가.”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사진은 기술이지만, 자연은 하늘이 내리는 운명이다. 우리는 다만 그 조건을 찾아 걷고, 마주치길 기다리고, 다시 또 걸을 뿐이다.

몇 컷의 장면을 어렵사리 앵글에 담고, 나는 조용히 뒤돌아 섰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하지만 바로 그 기다림이, 삼산을, 그리고 산 사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들었다.

2025년 5월 4일

"청산의 바람흔적"은 곡성 삼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