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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사이비 산 꾼 폭포수골을 가다

by 청산전치옥 2006. 8. 4.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언제: 2006.08.01

-어디를: 반야봉-폭포수골-뱀사골-임걸령-용수암골

-누구와: 나 홀로




<반야의 하늘에서 천왕을 가르키는 사람들>

사실 나는 TV 연속극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연애 인들을 거의 알지 못하는 관계로

우리 애들에게 가끔씩 핀잔을 들기도 한다.

최근 들어 우연히 주몽이 해모수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과정부터

보기 시작한 연속극이 오늘 저녁도 그 시간에 TV앞에 다가 선다.

내일 새벽 산행을 위해서는 02시30분에 일어나야 하는데도 말이다.





<반야에서 바라 본 노고단 운무>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왜, 이토록 지리산에 집착하는가’

새벽을 달리면서 구례를 다 가도록 이 화두가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혼돈의 현실 속에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산행에서 반야의 마고 할멈에게 내 모든 진실을 털어 놓아야

하겠다는 현실도피가 지리산행이 아닌가 싶다.

며칠 전에 받아 쥔 스티커 한 장을 의식해서인지 규정속도를 준수하려고

하는 나의 의지와 함께하는 사이 4시 못되어 구례에 도착 한다.



<반야 뒤의 해 오름>

원래 오늘 계획된 산행은 노고단에서 반야를 스치고 심원으로 하는

산행이었지만 혹시 몰라 승용차는 구례읍에 주차하기로 하고 버스로

성삼재까지 이동하기로 한다.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차에 올랐는데

깜짝 놀랐다. 2대의 버스 안은 만원이다. 아마 휴가철을 맞이하여

가족단위로 지리산행을 선택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서서 가기로 한다.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여러분은 지리산 국립공원에 들어 서게 됩니다.

아흔 일곱 구비를 넘어 성삼재까지 모시게 된 운전기사 입니다.

서서 가시는 분은 좌우로 바싹 긴장하시고 주의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매표소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울린다.



<왕시루봉 능선의 운무>

생각은 커트라인이 없다는 듯 새벽부터 너무 잔머리를 굴린 것 같다.

노고단 개방을 새벽에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기지국 앞으로 다가간다.

일출시간이 벌써 지났는데도 혹시 노고단에서 일출을 볼 거라고……

이미 떠 있는 해가 남쪽에서 불어오는 운무의 행렬 속에 가려있는 줄도

모르고 한심한 걸음을 재촉하며 가는데

‘이쪽은 안됩니다. 저 쪽으로 가세요’

‘누구신데요’

‘자원봉사자 입니다’

‘어디에서 나오셨습니까’

‘공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단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이 그제서야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노고단 입구 쪽으로 향하여 가는데 이미 해는 운무 속에 올라있으며

올랐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짙은 운무 속에 반야의 뒤로 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 5월 바래봉 철쭉산행 때와 같이 기다리는 여유 있는 산행을 하기로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걷히는 운무와 함께 조망을 보여주는 그런

지리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등로 주변에 피어있는 야생화의 화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한다. 모싯대. 말나리. 원추리. 까치수영. 지리터리풀.

며느리밥풀꽃. 산오이 등등……
 


참!

자연의 신비가 얼마나 오묘한가?

저 홀로 피었다 지는 들꽃의 순환을 보면서 신비로 가득 찬

자연의 변신이 이토록 아름다운 사실을……

아무리 작고 풀잎 같은 삶이라도 우리가 세상을 엮어가는 하나 하나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명제를 안고 살아야겠다.

누가 뭐래도 나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아침과 오후 임걸령에서 조망을>

 
<임걸령 샘터에서>

비록 새벽의 조망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유 있는 지리 주능선

산행에서 마음의 포만감을 채우기 전에 이곳 임걸령 샘터에서 또 한번

놀랬다. 주변에 흩어진 쓰레기와 상당량의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버리는 양심만 욕하지 정녕 버려진 양심을 담지

못하는 아쉬운 현실을 보고 말았다.

내가 먹었던 음식은 맛있게 보이겠지만 남들이 버린 음식은 정말

더럽게 보이죠? 어쩔 수 없다.

버린 사람이 있으면 줍는 사람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샘터 위로 올라와 빈 봉지를 건네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 이곳에 담아주세요’ 라고

하였지만 정녕 누구 하나 감히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고

‘아니, 임걸령에 어떤 천연기념물이 나타나셨나’ 하는

모습으로 힐끗힐끗 처다만 본다. ‘제발 우리 자자손손대대로 물려줘야 할

유산을 쓰레기 강산으로 물려 줄 겁니까’ ……

노루목을 지나 반야로 오르려다가 삼도봉을 지나치기 아쉬워 삼도봉을

찍고 다시 반야로 오른다.





<반야봉에서>

쉼 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운무의 群舞(군무)속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되 짚어본다.

무엇이 그토록 힘들게 하였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인과 관계가

그렇게 어렵다는 현실, 자신의 손익계산 아래에서 냉철하게 신의를

버리고 돌변하는 각박한 현실이 약자의 서글픔을 느껴보기도 했다.

함께 있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줄 것 같으면서도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면 시기와 질투로 돌변하는 무서운 세상에서 내가 서야 할 길은 어디인가?

 

모두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세상

따뜻한 마음과 상대를 배려하는 한 마디의 말이라도 힘이 되어주는

진정한 사람이 되자. 지금은 그들을 미워할 존재로 남아있지만 자석에서 서로

다른 극들을 잡아당기는 힘과 같이 또 다른 관계로 발전 되기를 바란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건 무관심이라 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을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고 있다.




<폭포수골에서 반야의 사면을>

 
반야에서 바라 본 천왕과 남부능선 끝에 걸려있는 운무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산행은 의외로 일찍 끝나겠다 싶어 심원쪽을 향하여 가는데

왠 낯선 사람과 대면하게 된다.

‘어디로 가십니까’

‘요 밑에서 야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오셨는데요’

‘이곳 반야봉에서 3일간 야영하면서 사진 찍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면 길이 있던가요’

‘아마 꾼들만 다니는데 이끼폭포로 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그럼 가 보지 않은 길로 가야겠다고 발길을 돌리는데 자꾸만 강조를 하신다

‘꾼들만 다니는데…… 꾼들만 다닙니다’

‘네, 저는 꾼은 아닌데 비슷한 사이비 꾼입니다’





<폭포수골에서>

 
<사이비 산 꾼 어떨 결에 폭포수골로 간다>

헬기장 폭포수골 들머리에서 10여분을 내려오니 계곡의 물 흐름이 이어진다.

주변에 FOREVER. 대구 산사람들과 금수강산의 표식기가 나를 반긴다.

이윽고 1470 고도에서 사거리를 만나고 1400 근처에서 하늘로 날랐는지

길을 잃어버려 계곡으로 붙는다. 고도 1260을 지나오면서 계곡을 좌측에

두고 사면의 너덜길을 걷는다.

직감으로 이끼폭포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이 계곡은 과연……

10:45 고도 1180에서 계곡과 한참 멀어진 수직직벽의 사면을 타기도 한다.

아직은 주변 너덜 바위가 습기를 잔뜩 먹고 있어 조심해야 할 구간들이

많다. 1150고도에서 좌측능선의 적송군락을 바라보면서 저 능선

넘어 함박골은 있을 거라 생각 했다. 내려 오면서 3~4군데의 폭포들이 있어

폭포수골인가 하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결과는 삼도봉에서 취운님께 확인함)




 
뱀사골 이정표 반선7.0/뱀사골 산장2.0 에 닿는다.

반선을 향하여 한참 내려가다가 아닌가 싶어 다시 산장쪽으로 방향을 턴했다.

이유는 지금까지 널널산행에 한바리를 더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면서 생각하기로 하고 삼도봉을 향하여 다시 올랐다. 이번에는 임걸령에서

내려가는 용수암골 산행을 하기로 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아침에 봤던 그런

능선의 모습은 아니었다. 삼도봉 찍고 노루목 돌아 드디어 임걸령에 닿는다.

아침 그 자리에 왔는데 이번에는 샘터 위에 쓰레기를 봉지에 싸서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오히려 이 사람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구나.

치우기 좋게 해 놨으니……




<삼도봉에서 바라 본 조망:오전과 극명하게 대조적인 조망>

 
능선에 들어서니 핸드폰이 터진다.

취운님과 잠시 통화를 하며 내 갈길 용수암골을 향한다.

삼도봉에서 용수골을 몇 번 내려가고 올랐지만 이 코스는 오늘이 처음이다.

생각보다 너덜길이다. 때로는 흔적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고로쇠 호스를

따라가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산행 후 12시간이 흐른 뒤에 피아골 산장

에 도착했다. 주변에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으며 산객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갈 길이 바빠 함선생님을 뵙지 못하고 온 게 몹시 서운하다.




<구계곡 폭포에서>


아무리 바빠도 이제 좀 쉬었다 가기로 한다.

흐르는 계곡에 몸을 맡겨 풍덩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계곡물을 떠 벌컥

들이마신다. 언제가 읽었던 수필집이 생각 난다.

‘물은 인간의 스승이다.

물은 화합을 좋아한다.

언제나 평형을 유지하고, 또 채워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알며 오기를

부리지도 않고 돌아갈 줄 안다’ 는 내용을

그렇다 우리 모두는 물처럼 둥글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을 헐뜯고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이기적이 우리에게 물은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노루목에서:돌아온는 길에서>

 
<에필로그>

어느새 산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14시간의 산행에서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많은 것들을 만났다.

반야의 마고 할멈은 너무도 경솔한 자신의 행동을 꾸짖었고

우리 인간이 대 자연에 비유하면 하나의 점에 불과 한 것을
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갑자기 어느 시인이 자연을 노래한 대목이 내 귓전을 맴돈다.

‘큰 산에 새가 집을 지어 본들 작은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큰 강에

하마가 물을 먹은 들 얼마나 먹겠는가!.....’



<일정정리>

04:55 산행시작(성삼재)

05:30~05:50 노고단에서

07:00~07:25 임걸령 샘터에서

07:40 노루목

08:00~08:15 삼도봉(1550)

08:50~09:10 반야봉(1732)

09:20 폭포수골 들머리(헬기장)

09:50 사거리(1490)우: 삼도봉/좌:묘향대/직진:뱀사골

10:55 좌측능선 적송군락(1170)

11:40~12:10뱀사골(930)이정표: 반선7.0/산장2.0(점심)

13:00~13:10 뱀사골 산장

15:00~15:10 임걸령 샘터(용수암골 들머리)

15:50~16:05 용수암(970)

16:35 피아골 산장

18:10 연곡사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