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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 전 치 옥 / 산에서 배우는 삶
智異山 戀歌

다시찾은 이끼폭포

by 청산전치옥 2005. 9. 6.

 

다시 찾은 이끼폭포.

 

 


<다시찾은 이끼폭포>

 

-일시: 2005. 9. 1

-어디를: 이끼폭포.

-누구와: 나 홀로.

 


 

 


 <자연관찰로에서>

 

정확히 눈을 뜬 시각이 4시40이었다.

어제 저녁 12에 퇴근하여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으니

아마 4시간 정도는 수면을 취한 것 같다.

행여 식구들에게 수면의 방해가 될 까봐 조심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어 과일과 얼려 논 물을 배낭에 쑤셔 넣고 등산화를 챙기는데

현관과 신발장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반복하였건만 도대체 등산화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나의 건망증이 잠자는 아내를 깨우고 말았다.

10여분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내 차 트렁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기차 시간이 닦아 오고 있었으니……역까지 태워주면서

구시렁대는 아내에게 무응답으로써 미안함을 대신한다.

 

 


 

 


 

오늘산행은 시작 전부터 내 마음 속에 정해져 있었다.

이끼폭포를 지나 묘향대 찍고 반야봉 걸쳐 성삼재로 가벼운 코스를

정한 이유는 오는 저녁 심야근무의 연속에 마음의 부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은 산행 시작 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뱀사골에 와서야 허전한 기분이 들어 버스에 올라타 스틱을 찾아 봤지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곰곰이 생각 해본다. 평소에는 하나의 스틱을

쓰다가 오늘따라 두 개의 스틱을 갖고 오면서부터 일이 꼬였던가?

아마 남원 터미널 앞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 그냥 나왔던 모양이다.

114에 물어보기 위해 식당 상호를 생각 해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 해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터미널에 전화를 하여 매표소 아줌마에게

상호를 알아내기는 하였지만 이번에는 114에 상호 등록이 없다 하니……

그렇게 해서 나의 손 때묻은 스틱은 나를 떠나는가 아쉬움을 더 하면서

산행은 시작 되었다.

 

 


 

 


<자연관찰로의 모습들>

 

-산행시작.

잔뜩 흐려진 날씨는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것 같기도 하고

부지런한 다람쥐는 벌써 겨울준비를 하는지 나의 앞 길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항상 이곳을 지나면 그랬듯이 난 요룡대 밑의 자연관찰로를

선택 하였다. 어차피 이 길도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길이지만 위 길의 시멘트 길 보다는 자연 친화적인 탐방로 길이 좋았다.

 


 

 


 


 

 

참 오늘은 또 한가지 의미 있는 날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디카 기종을 변경하고 나서 처음 나서는 산행이 이곳

뱀사골이다. 지금까지 똑딱이를 사용하다가 큰 맘먹고 바꾼 디카가

여간 산행에 부담스럽지 않구나. 다루는 솜씨가 익숙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디카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등에는 배낭을 매고

목에는 디카를 걸고 내가 산행을 하려는 건지 출사를 나왔는지 나도

의심 할 정도이다. 도저히 산행에 가속도가 붙지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될 바에 차라리 널널산행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탁용소에서>

 

-산행에 앞서.

반은 신선이 된다는 반선의 지리산 뱀사골은 9월 초하루의 날씨는

더딘 늦여름과 초가을의 계절의 공존에 있는 어정쩡한 날씨로다.

옷섶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을 기대 해 보았건만 이곳의 아침은

매미의 마지막 화음만이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뱀사골하면 화려한 沼()와 潭()을 이루고 멈춰진

곳마다 전설이 가득한 곳으로 알고 있지만 그 흔한 내용은 여기서

무시하고 우리의 역사, 지리의 역사의 한편인 빨치산 김지회의

일화를 소개한다.

 

 


 

 


 


 <병풍소에서>

 

경찰로부터 빼앗은 백마를 타고 다니며 군경에 대한 크고 작은 기습 전을

지휘했던 그는 홍순석 더불어 빨치산들에게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우리의 군경 토벌대에는 그들이 그만큼 골치 아픈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뱀사골 입구의 연정마을에서 최후를 마감한 그들은 까마귀 밥이 되고 나중에 많은 빨치산들이 맞게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조경순은 제주도 출신으로 생포될 당시 20세의 나이였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 만남의 인연으로 최초의 빨치산이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으며   한때는 군경에 의해 귀순을 촉구하는 대회에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전향을 거부한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치고 말았으니......

 

 


 

 


<제승대의 모습>

 


<이끼 가는 길>


한편 홍순석, 김지회 사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던 반선 주막의

주인은 빨치산 잔당의 습격을 받고 돌에 짓이겨져 눈뜨고 보기

힘들만큼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됐다. 보복과 경고의 뜻을 함께 지닌

행동이었다. 사건은 토벌부대의 보호가 미치지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대단한 아쉬움을 남긴 동시에 당시 주민들이 처했던 아슬아슬한 상황을

시사하는 예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 역사의 아픔이자 현실이었으며

이곳 지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아픔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르는 뱀사골의 淸流(청류) 가슴을 저밀 차기만 하다.

 

 


 

 


 


 <병소>

 

이곳 뱀사골의 특징은 피아골과 함께 더불어 가을이면 자태를 뽐내는

청정계류와 불붙는 단풍과 암반위로 흐르는 계류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은 계곡 미와 산행의 경사도가 완만하여 어느 누구도 쉽게

찾을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오룡대, 탁용소, 뱀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 등등 전개된 절경 등을 디카에 담아가며 쉬엄쉬엄 산행하는

사이에 발길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실비단 폭포 길인 이끼폭포로

향하고 있었다.

 

 


 

 


 


 <이끼폭포의 모습들>

 

지리산 뱀사골의 숨겨진 명소

태고의 신비로 가득 실비단 폭포.

계곡을 가득 덮은 파릇한 이끼 사이로 실비처럼 미끄러지는 폭포수.

정겨운 손님에게 방긋이 웃음을 전해주는 이끼 사이의 야생화인 어수리.

이러한 모습모습들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2 이곳을 찾았을 때의 감명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이끼폭포와 함박골의 작은폭포>

 

이루 없는

원초적인 자연 앞에

무슨 말로 표현을 하랴!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해야 이끼폭포에

감히 접근할 없구나.

다만, 멀리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

 

 


 


 


 <함박골을 오르면서>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다.

이제 길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좌측의 묘향대로 향하는 산사태 지역을 벗어나 함박골을

따라 오름은 계속 되더니만 이내 천둥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

어이할까 망설이다가 1100고지까지 오름은 이어진다.

오를수록 궁금증이 더해온다. 날머리가 심마니 능선 어디쯤 일까?

아니면 반야 중봉 아래의 어디쯤에 해당 될까?????

잠깐 물먹은 바위에 미끌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손에 잡은 디카는 끝까지 쥐고 있었으니……

다행히 살점 많은 엉덩이와 접촉으로 당장은 아프지 않지만

지금 산행기를 쓰고 있는 시간에는 아픔이 전해오고 있다.

 

 


 


 


<함박골은 아직도 원시림 그 자체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행 처음으로 왔던 길을 다시 내려 가기로 하였다.

이왕 내려가면서 아까부터 생각했던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남원에 들러 스틱을 회수하는 일과 관리공단에 들러 知人을 만나는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하나는 이끼폭포의 주변을 청소하고 가는 것이다.

지리99 산정무한에서 일정관계로 청소산행을 하지 못함이 아쉬운 터라

그때 빚도 갚을 겸하여 내려 가면서 10m 간격으로 널려진 주위의

전단지(k** 산악회)부터 회수 하기로 하였다. 이끼폭포 주위로

버려진 양심(소주병5 젖은 타올과 신문지 각종 비닐) 회수하고

내려선 길은 솔직히 2 전의 그때와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여유로운 하산길>

 

내려서는 길은 이제 여유로웠다.

가끔씩 열린 하늘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언제 비가 왔느냐는 식이다.

반선에 거의 왔을 즈음에 혹시 몰라 지인에게 전화연락을 하였다.

다행이 사무실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 중인 모양이다.

그래도 만남에 예의는 갖춰야 되겠다 싶어 대충 몸을 씻고 여벌 옷으로

갈아 입고 그를 만난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이 이상한 만남(?)……

어디 다녀 오십니까?”

저요~~ 그곳에 갔다 옵니다

나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을 그가 인사차 물어오는 질문이란 안다.

요즈음 그곳 때문에 우리들도 골치 아픕니다

하면서 자신의 직업상 애로사항을 토로 밀려오는 죄책감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인지 이렇게 버려진

양심을 회수 하였는지 모른다. 막걸리라도 한잔 하자는 제의에 전혀 술과는

멀게 살아온 자신이 오히려 미안하기만 하구나. 성삼재까지 태워주겠다는

제의를 뿌리치고 스틱 회수를 위해 남원으로 가기로 하였다. 인월까지 동승해 가는 시간은 비록 짧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달리는 기차를 한컷>

 

 


 <달리는 열차에서>

 

다행이 보관 중이던 스틱을 회수하고 남원역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 오더니 이내 소나기를 붓는다.

오늘따라 17분이나 지연된 열차에서 자신의 흔적을 쫓아 디카에 담긴

220여장의 이미지를 보면서 오늘을 정리 본다.

2005-09-05

                                                청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