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산행약속을 잡아 놓고 갑자기 출장으로 집을 나선다.
마음은 콩 밭에 있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끝까지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금요일로 끝날 출장이 하루가 연기되어 쉬는 토요일까지 이어진다.
그것도 토요일 언제 끝날지 몰라 정확한 버스나 기차표를 예매 할 수 없다.



‘ 따르릉~~’
‘여보 일요일 산행 약속 있으니 도시락 좀 싸줘~잉, 오늘 저녁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려 갈 테니’
‘당신, 정신 나간 소리 그만 해. 출장도 끝나지 않고……’
항상 그랬듯이 그래도 못 이긴척 하면서 쉽게 동의 해 주는 아내다.
결국 새벽에 도착하여 3~4시간 잠을 잤을까
아침에 일어나 솔직히 하기 싫은 약속 산행길을 나선다.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은 산행이라서 인지 기분도 그렇다.
이른 새벽 약속장소에서 느낀 감정도 그렇고 산행 중에도 가끔씩 느낀 감정이
오전 내내 좋아지지 않았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감정을 속내 감출 수 있는 게 내가 아니던가?
인원이 23명이다 보니 아침부터 어느 곳을 들머리로 잡아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산행대장이 우리를 내 모는 곳은 벽소령 옛길이다.
들머리에서 차를 세워 놓고 잠시 만남의 인사를 건넨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도 벌써 8시 30분이 되었다.
가을 낙엽이 눈처럼 쌓여 이른 아침부터 우수에 젖게 하고 있다.
겨울로 가는 눈을 밟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쌓여 있는 낙엽과 벽소령 능선에
피어 있는 상고대를 바라 보면서 나는 첫사랑의 설렘이 가슴으로 이어지는 전율을 느낀다.
내가 가을을 느끼고 있구나.
아직도 이 가슴에는 감수성이 살아 있구나.
그래 글을 쓸 수 있겠다.
어느 누구를 사랑 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겠다.
그런 까닭으로 내 삶은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구나.
아~ 아직도 내 감정이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줄 알았는데……
나 혼자만 가을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함께 느꼈으며 하는 바램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가……



한참 벽소령 길을 따라 가다가 이윽고 삼각고지로 향하는 들머리에 앉았다.
하늘문님이 보내 주신 회를 바닥에 놓고 잔치를 벌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없어지고 오름길이 이어진다.
이윽고 주능선에 올라서니 반야봉과 천왕을 향하는 능선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상고대의 행렬에 나도 모르게 ‘동부 쪽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내 뱉는다.
형제봉에서 한참을 노닐다가 자리를 떠난다.




잠시 우리는 벽소령에 잔치를 벌인다.
동부팀의 각 조에서 준비한 음식은 무궁무진 하였다.
산행을 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분간이 안 된다.
우리 조에서 삼겹살. 꽃게탕. 주물럭. 문어숙회. 곱창전골이다.
각 조 음식은 무엇이고 이슬은 무엇인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나니 어느새 13시 40분이다.
벽소령을 출발하여 옛날 벽소령 산장에서 우리모두가 함께하는 단체사진을 박는다.
이윽고 덕평봉을 지나 남으로 훤히 보이는 안당재와 바깥당재를 바라보는데
아니 이곳에서 광주팀을 만나고 말았다.
그들은 오리정골로 올라오는 모습이다.
잠시 아무도모를듯이 우리는 오공능선의 초입으로 빨려 들어 간다.



오공능선의 위치는 백무동계곡과 삼정이(하정 양정 음정) 위에 있는 비린내 골을 가르는
능선과 지리의 주능선인 덕평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으로서
일명 곰달로 능선(곰취가 많아서)이라고도 한다.
또는 지능선이 지네발처럼 지네 蜈(오)와 지네 蚣(공)자의 오공능선이라고 하기도 한다.
등로 상태는 지금은 아주 양호하며 주능선을 벗어 나면서부터 산죽과 싸움은 각오를 해야 한다
계속 끝까지 능선을 고수하면 송알 삼거리인 도촌마을로 떨어지고
중간에 직진하지 않고 우측으로 내려오면 백무동 상가지역으로 내려 올 수도 있다.



역시 옛날에 비해 길은 좋은 상태이나 산죽은 여전하다.
때로는 산죽 밑으로 기고 때로는 얼굴을 할퀴는 과정에서 전망바위에 닿는다.
능선상에서 전망바위는 어디에서도 반겨주듯이 우리에게 또 다른 측면에서
지리의 주능과 지계곡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시 길을 멈춰 한꺼번에 들러 앉아 노닥거리다가 배대장이 일침을 가한다.
‘제 시간에 산행을 마쳐야 한다’면서 재촉을 한다.



잠시 후 몇 개의 분묘를 지났을까 싶었는데
갈색 융단처럼 쌓인 낙엽 산길은 산인지 길인지 분간할 수 가 없었다.
바스락거리며 푹푹 빠져들어 나는 낙엽더미에 취해서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 버리고 싶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이 자연이 천국이야.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는 고도 1000에서부터 무릎이 좋지 않다는 감을 느낀다.
그래 이 핑계로 오공능선의 가을풍경을 담아가자.
이윽고 가을 색으로 곱게 치장한 분묘에서 함께하는 산친구들의 이미지를 담아 낸다.



갑자기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이제 머지 않아 우리가 당도할 송알 삼거리겠지.
고도를 낮추니 인공림으로 우거진 숲에는 아직도 가을 냄새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단풍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아련한 낭만과 사색을 불러주고 있구나
마지막 잎새마저 떨구면 나무들은 긴 겨울 동안 나목(裸木)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그래서 깊은 겨울 밤 천지를 뒤덮어 버릴 듯이 바람이 불 때도
북풍한설(北風寒雪)을 못 견뎌 섧게 우는 나무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저들도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에필로그
오늘처럼 하기 싫은 산행은 아직까지 나에게는 없었다.
아랫입술이 불어터지는 고통을 감수하고도 해야 할 약속 산행
그런 산행에서 오는 산행기가 좀처럼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까?
남을 탓하기에 앞서 조용히 자신을 되 돌아 본다.
산행하는 사람들 만이라도 솔직한 예의를 갖추고 이기심의 해방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2007.11.15
청산 전 치 옥 씀
흐르는 곡:The Poet And I(시인과 나) - Frank M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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