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열어 본 통신골. -일시: -누구와: 천운. 백야님. -어디를: 통신골과 중봉골.
<중산리계곡의 단풍> 초기에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 인터넷이 이제는 우리 생활의 정보 제공의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 하면서 하루에도 컴퓨터를 멀리 하고서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며칠 전에 어느 분께서 지적 했듯이 우리의 산행도 인터넷의 공간을 통하여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통신골이 인터넷 공간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저 역시도 그 시류에 한몫은 한 게 분명한데……
<단풍 단풍 그리고 단풍> 좀더 일찍 그리고 편한 길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선택했다. 진주를 지나 산청으로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는 짙게 깔린 안개 때문에 속력을 늦추면서 설마 하는 염려가 다가온다. 중산리를 향하여 갈수록 속도는 더뎌지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희망은 앞으로 펼쳐질 통신골과 중봉골 주위로 펼쳐질 萬象紅葉의 세계를 그리며 달려간다.
<홈바위교에서> -산행시작. “산을 위해 태어난 산사람 우천 이곳에 오면 왠지 마음이 바빠지지만 오늘만큼은 선생님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비문 앞에 선다. 천왕봉을 수 없이 넘나들며 지리산의 비경코스를 개척 하시고 많은 조난자를 구하시면서 정작 자신은 어느 날 바람처럼 홀연히 지리산 속으로 사라진 그 분의 이름을 되 새기며 시작하는 산행이 어느덧
<일출봉능선과 칼바위(중)그리고 홈바위교 단풍> 천왕을 오르는 가장 짧은 이 코스가 오늘 평일인데도 이곳 칼바위까지 등로가 어 수선 하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금새 그들은 법계사 쪽으로 빠져 나가고 이내 우리들 셋이서 오붓한 산행길이 된다. 좌측의 계곡이 무슨 계곡이냐고 물어올 때 칼바위 골이라고 얘기를 하였지만 지금도 홈바위 골인지 법천 계곡인지 확실한 답을 모르고 있으니…… 왼쪽의 법천폭포를 확인 하고 싶었으나 순간 딴 생각으로 지나쳐 버리고 오름 길은 이어진다. 형형색색으로 물들어진 단풍잎 사이로 간간히 펼쳐지는 계류의 작은 폭포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며 추색의 빛 잔치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윽고 홈바위교에서 우리가 가야 할 천왕을 바라본다. 걷힐 것 같지 않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씨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유암폭포와 일출능선의 단풍> -유암폭포에서. 언제 일어난 산사태로 인하여 암석들이 급류에 밀려 나와 지금의 너덜지대가 되고 있는 모습이 이곳을 올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특히 유암폭포의 주위로 일그러진 형상들이 널려져 있지만 갈수기인데도 폭포수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려는 인내의 한계가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주위의 풍광을 찾기 위해 발 품을 팔고 있는 사이 내 분명 폭포위로 올라 계곡을 따라가라 하였건만 그들이 나의 시야에 멀어졌다. 분명 장터목 향하는 길로 가는 것은 분명하리라.
<통신골 들머리와 함께한 일행들>
-통신골. 해발 1240M. 죽음의 계곡인 통신골 들 머리에 와 있다. 이곳이 유암폭포 바로 위 계곡의 합수점인 오른쪽 계곡이다. 지금도 통신골인지 천왕봉골인지 아니면 통천문골인지 확실한 근거는 없는 것 같아 그냥 통신골로 쓰기로 한다. 들 머리에서부터 길은 없으리라고 여러 산행기를 봐서 알고 있다. 통신골의 특징은 어느 계곡처럼 울창한 수림을 볼 수도 없으며. 이끼가 잔뜩 머금은 바위도 구경 할 수도 없다. 다른 계곡과 상반된 홈통바위로 연결되는 수로 같은 계곡이며 그 바위의 색깔이 마치 청오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오를수록 각각 다른 암석층들이 조화를 이룬다. 또한 계곡 내내 산행 하면서 확 뜨인 조망은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 되지만 오늘은 마음으로 열어 볼 수 밖에……
<통신골의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도1460M 에서 두 개의 계곡으로 나뉜다. 왼쪽은 지형상으로 제석봉으로 향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우측의 천왕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죽음의 계곡인 통신골을 겁도 없이 잘도 올라간다고 추켜 세웠더니 산행 중인데 그런 소리를 한다 하면서 이내 떨리고 만단다. 하기야 나와 산행을 몇 번했던 게 전부였으니…… 사람은 혼자서 두려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결국은 함께한다면 쉽게 해 낼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해병정신의 발원이기도 하다.
<통신골의 오름 길들> 고도 1700을 지나면서 시야는 앞을 가렸다. 짙은 운무로 인하여 5M 시야를 확보 할 수 없었다. 좌측으로 뻗어있는 형상으로 봐서는 고사목인지 구상나무인지 분별하기 어려웠지만 교감으로 느껴지는 사이사이의 암봉과 풍광이 마음으로 열리고 있고 열려 있는 마음 사이로 이내 천왕에서 사이의 첨봉들이 운무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방향을 또 다시 우측으로 턴 하여 오른다.
<통신골의 운무는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천운님의 벅찬 가슴은.....> 이제 나의 오름 길에 방해가 되었던 디카를 가방에 넣었다. 사위로 펼쳐진 운무 속에서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이제부터 네발을 이용하여 대 슬랩으로 이뤄진 피라미드 고도 위를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고도계의 수치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천운님이 자꾸만 고도를 물어온다. 여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쉬지 않고 와서일까. 한기가 느껴오는 시점에서 쉬고 싶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뿌리째 뽑혀 내려 온 고사목들이 우리의 진행을 방해 할 때 정상임을 알리는 사람들 소리가 운무 속으로 들려온다. 산사태 방지용으로 놓은 임목으로 들어 온다. 날씨가 좋았다면 우리들 몸을 스스로 감춰야 되지 않을까 생각 되었지만 그럴 염려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선 차갑게 몰아치는 바람을 막고 싶어 암봉 뒤로 몸을 숨긴다. 그런데 천왕 재물을 바치고 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앞에는 운동화 차림의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입구를 가로 막고 서 있다. “뭐 하십니까?” “누구세요?”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왜 이런 신성한 곳에서 무속행위를 하십니까?” “……” 분명이 말씀 드립니다. 음식물 다 수거 해 가세요? 하면서 공단 직원 행세를 잠시 하였습니다.
<올 6월에 천왕에서 일출 광경>
<중봉샘에서> -천왕봉에서. 무슨 빽을 믿고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리에 다니면서 계곡에 뿌려진 음식물들이 이런 무속행위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인 것이다. 그 사이 천왕에서 천운님과 백야님이 나를 찾은 모양이다. 올 6월 새벽에 그들과 함께 이곳에서 천왕 일출을 봤건만 오늘의 조망은 그때와는 아주 딴판이다. 백야님은 그때가 생에 처음으로 천왕에 오르자 마자 일출을 봤으니 그런 행운도…… 오늘 이곳에서 천왕이 그들 마음 속으로 어떻게 다가 왔는지 궁금하구나. 주위의 조망 보다 더 우선 추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곧 바로 중봉골로 하산 하기로 한다.
<중봉골에서 써래봉의 모습과 단풍> -중봉샘에서. 지리산의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를 간직하고도 바로 옆의 천왕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중봉이 중봉골의 시작점이다. 북사면의 바람을 직접 피 할 수 있어 아늑하고 여유로웠다. 잠시 쉬면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점심이라기 보다는 그냥 간식 대용으로 가져온 빵과 과일 그리고 주먹밥이 전부였으니까. 중봉샘으로 길다랗게 이어지는 호스들이며 발전기들과 콘테이너가 주위의 자연물과 너무도 대조적으로 맞지 않고 있었다.
<중봉골의 단풍들> -중봉골(마야계곡). 석가여래 어머니신 마야부인이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러한 현실들이 맞는지 이곳 역시도 우리의 연구 대상이 아닌가 싶다. 등로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역시 아직까지 때 묻지 않은 흔적들이 발견하곤 한다. 수 많은 고목들이 쓰러진 채 방치 된 흔적이며 때로는 잡목 사이를 헤집고 산행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1650고지를 벗어나고 나니 남쪽 사면이 훤하게 맑아 온다. 그 사이 왼쪽으로 펼쳐지는 써래봉의 침봉들은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천왕골의 비경의 현실을 이곳으로 대체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상홍엽에 어울리는 고사목과 일편단심 지조를 지켜온 주목은 내일도 이곳을 지키리라.
-산행을 마치면서. 법계사의 등로와 합쳐지기 전에 순두류아지트를 들러 본다. 그 옛날 치열했던 흔적들의 총탄자국이 바위에 새겨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날이 언제였던가. 계곡으로 피어 있는 빨강 노랑의 단풍잎에 묻혀 유유히 흐르는 계류 속으로 아픔의 현실을 파 묻고 있으니 차라리 외면하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그곳을 떠난다. 잠시 후 법계사1.7/순두류1.1 법계사 등로에 닿는다. 철다리에서 바라 본 천왕의 모습이 이제야 자신의 속살을 보이고 있구나. 이윽고 키 큰 나무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내려 오면서 4km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콘크리트 순두류길을 내려 오면서 산행을 마친다.
<용추폭포와 마야독녀탕에서(아래)> <산행후기> 통신골과 천왕봉골, 법천계곡과 홈바위골 또는 칼바위골, 중봉골과 마야계곡이 어떻게 불려져야 할지 혼돈의 연속 산행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유행을 타려면 맨 처음 타야 되는데 마지막 산행이 뒷북 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산행을 했다. 그러나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할 산행이 뒷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오늘 산행은 운무 속의 조망은 즐길 수 없었지만 마음으로 열어 본 가을 산행이라 생각 하면서 함께 해 주신 천운님과 백야님께 감사 드리며 이만 산행기를 줄입니다.
**홈바위골이 통신골로 잘못 쓰여졌음을 사과 드립니다**
2005. 10.28.
청산 전 치 옥 씀.
<순두류 아지트에서>
<결국 천왕의 모습을 주차장에서:줌으로 땡김> -일정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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