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암자를 찾아서
-언제:
-어디를: 광덕사와 암범주굴.
-누구와: 나 홀로.

<주등산로에서
바라 본 조망>

<오늘 산행중 가장 가까이에서 본 천왕입니다>
‘광덕사’
또 하나의 지리산 암자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지리의 흙 냄새를 맡은 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으니
경방기간이라는 허울좋은 문구로 울타리를 쳐 놓고 우리의 갈
길을 부여잡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할 노릇인가.
언제부터 맘 먹던 산행이었고 중산리에서 시작되는 산행코스가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하여 여유롭게 시작 합니다.


<1차 기도처와
그곳에서 조망을:법계사쪽입니다>
<智異山 聖母(천왕할매) 大祭>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처럼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습니다.
덕산 두류산악회에서 32회째
성모상 앞에 제사 지내는 날(음력3.3)
입니다. 지리산에 왠 만한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제례 행사 시 읽혀진 천왕할매의 유래를 다시 한번 음미 해보자는
의미에서 이곳에 올립니다.


<제3회 성모상대제에서 >
智異山聖母像(천왕할매)
삼국시대의 조상들은 크고 높은 영산의 정상마다 天心과 人心을 잇는
여신을 좌정시키고 이를 섬겼었다.
삼신산의 하나인 지리산의 여신은
母像 또는 보다 높은 天王 할머니로 불려 내리면서 많은 조화를
부렸다.
그 神體인 성모상을 후대까지 보존시켜 내린 우리나라의 유일한 여신이기도 한 성모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측면으로 영합되어
부러움을 받아 왔다.
불로장수와 만사형통을 관장한다는 중국의
신선 麻姑(마고)로 신앙 받기도 하고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의 기도로 삼국통일의 위엄을
이루게 했다 하여 왕후와 동일시 했던 성모이기도 하다.


李太祖가 등극 전에 지리산 깊이 쳐 들어 온 왜구와 싸울 때
대첩을 거둔 것이 이 성모가 운무를
조작한 神助 때문이라 하여 護國伯(호국백)이라는
벼슬을 내렸고 이에 왜적은 성모의 신체에 칼질을 하여
보복을 했었다.
한국 무속의 기원 설화에 보면 딸 여덟을 낳아 巫術(무술)을 가르쳐
팔도에 퍼트린 한국 토속 신앙의
조상이기도 하여 민복을 기원하는 신앙이
되기도 했다.
일제 때 이 성모상은 排日(배일)여신상이라 하여
골짜기로 굴러 버림을 당하는 등
수난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고 마모된 것을 찾아 천왕봉에
모셔졌다가 지금은 도 문화재 자료 14호로 지정되어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며 산청군 시천면 민들이
정성을 모아 중산리에 새 성모상을 실체 보다 크게 제작하여
2회 대제를 올린 뒤 올해부터는 음력 3월3일로
대제를 치르기로 함에 따라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성모대제 행사장에서 퍼 온 글>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사진 몇 장을 찍고 행사장을 빠져 나옵니다.
나오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성모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는 사이벌써 시간은


<산행 시작전의 중산리에서/순두류 아지트에서(사진 아래)>
<산행시작>
이곳 중산리에서 자연 학습원까지 오르는 시멘트 포장 길은 우리
산 객에게는 너무나 지루함은 물론이거니와 행여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여간 거슬리지 않는가 중산리에서 보내는
시간을 만회 하기 위해서 중간 중간의
지름길을 택해 갑니다. 평일이라서 인적은 끊겼고
이따금씩 올라오는 차량은 시커먼 연기를
내 뿜으면서 고도를 치고 오릅니다.

<순두류
아지트>

<순두류에서 바라
본 천왕>
학습원 삼거리를 지나서부터 비로소 지리의 흙을 밟기 시작 합니다.
봄 날 산새들의 합창소리와 이따금씩 계곡을 끼고 돌 때는 계곡에서
들려오는 폭포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산사의 길을 갑니다. 잠시 후
철다리에 이르니 드리워진 천왕의 미소가 계곡 사이로 살며시 떠 오른
후
미소로 나를 반기며 우측의 순두류 아지트에서 쉬어 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고 그곳으로 발 길을 돌립니다.



<광덕사골
모습>
또 다른 2번째 철다리를
지나
이곳에 올 때 몇 편의 산행기를 읽어 봤지만 어느 곳을
신선너덜이라고
표현 하는지 몰라도 쾌 넓은 공간에서 계곡의 물을 퍼 마십니다.
이곳 안부 이정표에서 광덕사지교 까지는 계곡을 우측에 두고 오릅니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살며시 길이 열려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계곡의 수량은 갈수기로 인하여 명맥만 이어가고 있으므로 인하여
계곡을 따라 오르기로 합니다.
아마 이 계곡이 광덕사골이 맞는
모양입니다.
곧 바로 나타나는 3단의 폭포는 수량이 부족함으로써 아쉬움만
더하고 우측의 길이 있다는 선답자들의 표식기를 찾아 보지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내가 과연 길을 제대로 가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30여분을 계곡을 타고 오르니
우측의 커다란 바위가 시야에
들어 옵니다. 그쪽으로 방향을 턴하여 가 보니 의외로 주변에
산죽정리를 잘 해 놨습니다.


<1차 기도처인
광덕사지>


<2차 기도처인
광덕사지:사진 모서리에는 후두가 맞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도 처에서>
드디어 1차 기도 처에
닿습니다(1365)
주변으로 널려진 잡목구간과 헝클어진 바위의 형상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져 과연 이곳이 기도 처인가 싶기도 합니다.
주변을 서성입니다. 그리고 왔다 갔다 하면서 혹시 있을
무언가를 찾기 위함 같이……
좌측으로 이어진 선명한 길을 따라 100M쯤 오르니
이곳이야말로 이 이상의 기도 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손색이 없고 나무랄게 없는 기도 처(2차 기도 처) 주변의 평탄한
공간과 앞으로 확 트인 시야와 사람의 손길이 닿는 석 축의 모습을 보며 그날이 언제였는가를 생각 해 봅니다.
석간수를 타고 흐르는 옹달샘은 가뭄 탓인지 바닥을 내 보이고 있습니다.
숙제1)광덕사지에서 왼쪽 계곡으로 나오면 계곡건너 길이 있는데
이곳이 법계사로 향하는 길일까?



<암범주굴과과
그곳에서 조망>
<암범주굴을 찾아>
태조
암범주굴을 향하여 갑니다. 이곳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다는
선답자의 산행기를 떠 올리며 계곡을 타고 오릅니다.
이제야
‘사랑 합니다’ 와 기쁜인연님의 표식기를
확인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잠시 후 우측의 뚜렷한 길이 열려있어 조금 들어가니
커다란 바위 밑의 암범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조망이 열려 있고 누군가가 피웠던 타다 남은
장작더미가 있습니다. 우측의 산죽 숲을 지나서
아래의 바위 사이를 보니 하얀 스치로폴이 널려져 있습니다.
숙제2) 암범주굴에서 우측의 산죽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은 어디메뇨
(아마 중봉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임)


<이곳은 아직도
겨울을 붙잡고 있습니다>
<빨치산 산행은
시작되고>
암범주굴에서 길 찾기를 합니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계곡을 타고 올라 40~50분이면 개선문
근처에 닿는다고 쓰여 있는데 커다란
암벽 위에 얼어있는 빙벽을 보니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계곡 좌측으로 우회할까
했는데 그곳에는 아직도
겨울의 자락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측의 산죽밭 길로 또 다시 발을 옮깁니다.
10여분 오르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암범주굴로 와서
주변을 어슬렁거립니다. 다시 계곡을 우회하기로 하고 암범주굴
위로 오릅니다. 그러나 이때 갑자기 ‘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곳을 피하면서 사면으로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소리는 암봉 사이에 얼어있는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해빙되면서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휴~~정말
다행입니다’
결국 넘어지는 과정에서 손등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지만……


<암범주굴에서 조망>
어쩔 수 없이 빨치산 산행을 하기로 작정 합니다.
좌측의 법계사쪽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우측으로
발길이 이어진 것 갔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음지의 눈을 피하고 쉬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고도를 1785까지 오르면서 우측의 능선 위로 하늘금이 보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능선에 갔을 때는
아뿔싸!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봉골과 써래봉이 손에 잡힐 듯 합니다.
개선문이 1700여 미터이니 다시 고도를 낮추면서 법계사쪽의
사면을 타고 내려 갑니다.
숱한 잡목과 헝클어진 썩은 고목 사이를 때로는 기고
오르고 그렇게 피하던 눈 길을 다시 오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스패츠를 준비하지 못해 신발 속의 눈을 꺼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1시간 20여분의 빨치산
산행을 마치고 개선문 위 ‘지리 05-09’ 에 도착 합니다.



<주등산로에서 조망>
인적이 드문 주 등산로에 나 홀로 한 없는 조망을 즐깁니다.
조금 전의 힘든 알바가 언제 그랬냐는 생각은 벌써 잊어버리고
또한 천왕의 모습을 향하여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
하면서 서서히 아무도 밟지 않은 등로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법계사를 향하여 내려가고 있는데 그 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납니다.
뭐라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오는 느낌입니다.
그때 다행히 철망의 문을 벗어났으니……
“지금 천왕봉에서 오시는 겁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산장에서 왔습니다.
천왕봉에서 내려 오셨죠” 하면서 나를 몰아
부치고 있었습니다. 그의 옷
차림을 보니 가벼운 운동화와 츄레닝 차림의
젊은이였습니다.
“지금 경방기간인데 그것도 모르고 내가 산행을 하겠소. 조금 전에
법계사에서 이곳에 올라와 사진을 몇 컷을 할까 하여 이곳으로
왔소”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한 술 더 떠서 개선문까지만 올라가면
안되겠느냐고 하였더니
“됐습니다. 빨리 내려 가이소” 합니다.



<법계사에서>

<법계사와 앞으로
가야 할 세존봉>
법계사로 내려와 주위의 조망을 살피고 어떻게 세존봉으로
갈까 하는 고민이 앞선다. 혹시 그가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포기 하기는 너무도 아쉬웠다.
로타리 산장에서 잠시 그를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금방 내려올 줄 알았던
그는 10여분이 가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천왕봉까지 올라 갔을까 하면서 새존봉으로 향합니다.



<세존봉 오르기
전 헬기장에서>
<세존봉 산행>
능선으로 향하는 길을 버리고 밑으로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법계사에서 바라 본 세존봉의 암봉은 높게 보이는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또 다른 암봉들이 솟아있어 어느 것이 세존봉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몇 개의 암봉을 우회하고 때로는 산죽밭의 산죽을 헤치며 가는
사이 고도 1285에서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납니다.
직감으로 좌측은 순두류를
향하여
내려가는 길임을 깨닫고 우측 칼바위쪽으로 향해 갑니다.
이윽고 소나무가 자생한 고도에 들어서니 저 멀리 계곡아래로
학습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갑자기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산죽 사이를 치고
나갑니다. 이제 서서히 산행의
종점에 와 있는 것 입니다.
이렇게 하여 오늘 어려운 산행을 마치는 것 같습니다.


<써레봉능선과
내가 빨치산 산행을 했던 암범주굴 주변을>

<개선문 아래의
또 하나의 굴>
<에필로그>
오늘 산행은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 준 산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나의 이런 산행이 옳은 산행인가 그릇된 산행인가를
생각하는 이분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리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믿어줬으며 합니다.
그래도 이분법의 잣대를 내게 드리운다면 전 솔직히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 산행전에 성모상 대제에서 나의 이러한 솔직한 심정을 다
토해놓고
왔습니다. 그냥 지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아쉬운 산행을 마치면서 이만 줄입니다.


<일정정리>
'智異山 戀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지리산 (0) | 2006.05.26 |
---|---|
智異山 戀情(봉산골-광산골 산행) (0) | 2006.05.07 |
지리산 동부능선 끝 자락인 웅석봉 이야기 (0) | 2006.03.07 |
아들과 함께한 지리산 천왕봉 산행. (0) | 2006.03.02 |
그날을 생각하며(천년송능선) (0) | 200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