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곁에 있는데 지리산이 그립다
-일시:
-어디를: 거림골-세석-장터목-천왕봉-대원사
-누구와: 나 홀로
머지않아 가을 단풍도 이런모습을 보이겠죠(작년 12월 똑같은 장소에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그래, 가을의 길을 찾아 떠나 가는 거야
우리 모두의 가슴에 물드는
그 깊은 가을 날의 꿈을 찾아서……
힘든 泊(박)짐을 메고 오늘도 미련 없이 지리산 가을을 향해 떠난다.
예보에 없던 가을비를 맞으며 거림골을 걷는다.
비를 피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피할 방법 또한 없지 않은가?
덕분에 적당한 곳 어디에 박짐을 풀 여유가 없었다.
예약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안식을 풀어줄 공간은 있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여장을 풀어 젖힌다.
대기 순번에 의해 내가 차지한 공간은 이승에서 모든 것 털어내고 가야 할
彼岸(피안)의 안식처 그곳처럼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예약문화가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우리 자손 대대로 물려줘야 한다면서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쓰레기를 되가져가기를 해야 합니다”
“샛길로 다니지 맙시다” 등등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앙 홀에 집합시켜 놓고 지리산에 대하여 연설을 한다.
‘그럼, 샛길이 등산로에 나뭇가지로 막아 놓은 곳이 샛길입니까’ 하는 질문에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께서 산에 좀 다니시는 것 같은데요” 하면서 답변은 주지 않는다.
지금도 밖에는 예보되지 않은 굿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모처럼 정말 오랜만에 산장에서 하루를 유하게 될 줄은 미쳐 생각을 못했었지요.
그것도 50대 이상이라는 이유로 히터 옆 자리를 내주니 젖었던 옷도 말릴 수 있어 좋고……
‘그래도 너희들이 노인 공경을 할 줄 아는구나’ ㅋㅋ
내 이럴 줄 알았으며 짐을 상당히 줄였을 텐데
이렇게 해서 세석의 하루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모두가 맞는 이야기지요.
예약문화도 쓰레기 되가져가기도 좋지요.
그리고 관리공단에도 솔선수범하여 케이블카와 지리산 댐 건설 반대를 외쳐야지요.
케이블카 설치하고 댐 건설 하면서 어떻게 아름다운 강산을 후손에 물려 줄 수 있나요……
정말 오랜만에 대피소에서 잠을 청해 본다.
주변에 코골이의 시끄러움 쯤은 감수하더라도 일단은 비가 오는데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간밤에 행여 날씨가 좋아질까 하고 몇 번이고 들락거리는 덕택인지 새벽 날씨는 의외였다.
오늘 날씨 대 박이다.
이른 새벽 해 오름을 보기 위해 촛대봉에 오릅니다.
촛대봉 바위에 걸터앉아 운해가 잔잔한 발 아래 세상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습니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모습에 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킵니다.
온 천지에 붉은 빛이 밝아온 게지요.
카메라의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하고 천방지축 거립니다.
촛대봉에서 한 시간을 넘기면서 이내 발걸음을 저 아래 청학으로 옮깁니다.
엊저녁 내린 비로 인해 주변 잡목을 해치면서 바지가랭이를 다 적시고 도착합니다.
의외로 빠른 단풍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역광으로 비쳐주는 운해 사이로 파란 하늘만 보여줬더라면……
이곳에서도 한 시간을 노닐다가 오후에 이곳에 온다는 나대로님을 위해서 흔적을 남깁니다.
혹시 모를까 등로 입구에 스틱으로 화살표 표시를 해 놓고 떠나면서 문자를 날립니다.
그래도 부족한 아쉬움이 있었는가 싶어 촛대봉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노닙니다.
갑자기 허긴진 배를 쥐어 짭니다.
알고 보니 아침을 걸렀네요.
이윽고 장터목에 도착하였는데 말 그대로 장터군요.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그대로 천왕을 향해 오릅니다.
제석봉에서 천왕 사이의 가을 단풍이 절정인 듯싶어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왔다가 다시 피어 오르는 운해 속에서도 굿 굿하게 지켜주는 빨주노초의 조화가
새삼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라 생각 됩니다.
나이를 먹으면 사물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표현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이윽고 천왕에 도착하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어라~ 어디에서 많이 본 사람인데……’
참 희한하기도 하지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우리 회사 과 직원을 만났네요.
서로 반가움에 줄 것은 없고 갖고 있는 과일 모두를 내 놓습니다.
그리고 인증삿도 날리고 ㅋㅋ
그들은 정통코스 장터목으로 내려가고 나는 중봉을 향해 내려 섭니다.
어제 이곳에서 박을 했을 치우님을 찾아 봤는데…… 핸폰도 터지지 않네요
이곳에서 바라본 써리봉의 가을풍경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으로 간다면서도 발 길을 써리봉으로 옮겨집니다.
또 다시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서 박짐의 한계를 느끼지만 어쩔 수 없지요.
즐거움의 배가 느끼는 고통 보다 더 낳은걸 어떡 합니까?
때마침 공수 특전단 사병들의 천리행군 팀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한참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배낭을 바꿔 메기로 합니다.
완전히 그들 배낭이 허 당이더군요. 요즘 군인들 거런가? ㅎㅎㅎㅎㅎ
내 박짐을 메 보고는 기절을 합니다. 뭐가 들었느냐는 등등……
우리 아들 같은 생각에 사진도 찍어 줬는데 보안상 올리지 못함을 아쉬워합니다.
써리봉 산행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치밭지나서 함께 산행에 동참 해 주신 통영 산 객님 덕분에 지루함을 잊었습니다.
중봉에서 만나셨던 분이었는데 벌써 천왕을 찍고 내려 오시네요.
천왕봉만 58번째 산행을 하신다는 그 분께서 단성 IC까지 히치 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또한,
우연찮게 천왕에서 만난 직원과 단성에서 접속하면서 이틀간의 산행을 정리 해 봅니다.
지금 지리산에는 하루가 다르게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듯 허허로운 내 마음에 모든 게 소중하고 새롭게 다가옵니다.
마음은 늘 가까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사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중한 아름다운 지리의 모습 가을 소식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갑자기 젊은 날 달달 외웠던 한 구절의 詩句(시구)가 떠 오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했듯이
지리산이 곁에 있는데도 지리가 그리운 건 왜 이럴까요?
지리산에서 청산 전치 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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