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인연으로 맞이하는 만복대 산행
기쁜 인연으로 맞이하는 만복대 산행
-일시:
-어디를: 만복대 그 주변
-누구와: 나 홀로
엊그제 블방친구 흔적을 보고 지금쯤 억새산행이 제격이다며 장흥 천관산을 추천한다
사실 며칠 전에 다녀온 비 박이라 벼룩도 낮 짝이 있지
간다는 말을 아침까지 꺼내지도 못했는데 마눌은 밖에 나가고 없네
몇 번이고 생각을 해 보고 또 해 보지만 지름신의 강림을 어찌 뿌리치랴
일단 박 짐부터 다시 고쳐 메고 이른 점심을 먹고 시동을 건다.
순천을 벗어날 때까지도 천관산으로 갈까 만복대로 갈까……
벌써 고속도로로 이마를 내 밀고 거침없이 달리고 있는 것 보니 만복대구나.
가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이 시간에 박 짐 메고 올라가며 뭐라 할 건데 적당한 건덕지를 찾아야 하는데……
시간도 보낼 겸 해서 개령암지에 다녀올까 하여 주변을 서성이다 되돌아 나온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한 무리 공단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드르륵 주차장 문을 열면서 “아저씨, 지금 어디 가십니까”
‘아~ 만복대 사진 찍으러 갑니다’
“지금 이 시간에 가시면 안 되는데요, 보아하니 배낭도 그렇고……”
‘배낭이 좀 커 보이죠 카메라 장비가 있다 보니’ 얼른 세워진 삼각대를 내보이며
다가가 오늘 저녁노을 사진만 찍고 오겠다 하니 이내 허락을 해 주신다.
저녁만찬 ㅎㅎ
이제 나 혼자만의 또 다른 별천지로 들어오다.
참~ 어쩌면 이런 자신이 제대론 된 정상인인가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쉬는 날이면 지리산으로 내모는 그 어떤 귀신에 홀려서 오늘도 이곳에 선다.
그러나 나는 분명 알고 있다.
내 혼자일 때 느끼는 감정에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누군가 고독도 사치라 말하지만
自我에 대한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비춰주는 때가 나 혼자만의 여유에서가 아니겠는가
만복대 정상에서 노을을 바라본다.
주변 풍광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시야가 분명치 않구나
최근에 사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떠오르는 해도 아름답지만
지는 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인데 어찌 우리네 인생은 생각과 다른고
얼마든지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일 텐데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인생은 반쪽만 갖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 무엇이겠는가
살아오면서 내 자신이 내 것만을 챙기지 않았는가
결국 반쪽은 내 것이고 다른 반쪽은 남의 것인데……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관건이로다.
내 이럴 줄 알고 권도중 시집 『네 이름으로 흘러가는 강』한 권을 챙겨 들었지
♧ 억새꽃처럼 ♧
간절함 다스려 참아야 함을 압니다
억새꽃처럼 다 날려 보내고도
허물과 후회만 남긴 그 언덕 커져만 갑니다
다시 알리고픔을 용납할 수 있을까요
못 울린 북소리 숨기어 남겼어도 이제
세상에 넓은 어느 공간에 절 하나 섰습니다
이제는 젊고 늙음이 다름없는 사이인데
저 쪽에 피어 생생한 세상에서 슬픈 꽃
이 죄업 그대 생각은 억새꽃 같습니다
-권도중 시집에서-
한참 흐른 것 같은 시간이 이제
밤바람을 쐴 겸 만복대 정상으로 나선다.
보름을 앞 둔 상현달은 흑과 백의 조화 속에 토실토실 여물어 간다.
그리고 혹 모를 일을 대비해서 나의 위치를 누군가 알고 있어야 하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자 하나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나. 지금 만복대. 내일 아침 내려 갈 것임”
몇 번을 뒤척이다 잠에 들고 반복하는 사이 여명이 밝아 온다.
인연,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있다가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일까?
원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은 성격인데도 산을 통해서 인연의 기쁨을 알았습니다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이든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든
그건 바로 나의 삶이 아닌가.
지금까지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도 가꿀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오늘도 나는 알 수 없는 인연 따라 이곳에 왔는데
그 인연이 또 하나의 기뿐 인연으로 이곳 만복대에서 향적봉님을 만납니다.
그 분과 함께 산을 알고 난 뒤 지금까지 이어온 특별한 인연입니다.
텐트 밖을 나와보니 천왕봉 뒷덜미에서 밝아오는 여명을 담고 있는 진사님
산이 좋아 산을 찾고 결국 그 아름다움을 담고자 이른 새벽에 여명을 찾아온 향적봉님
여명을 담을 생각은 멀리하고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혼자이기를 두려워하듯, 세상은 홀로 살아 갈 수 없는 모양입니다
먹 잘 것 없는 아침상을 펴 놓고 그 동안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합니다.
배낭과 카메라 한 쪽에 짱 박아놓고 동릉따라 주변을 거슬러 다녀오기로 합니다.
오랜만에 함께 걸어본 산행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이어온 10여 년의 세월이 그렇게 빠르게 흘렀지만
아직도 마음은 우리가 처음 산행한 초암능선에 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초암능선은 아니지만 원점회귀로 간단한 산행을 마치면서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서자며 내일을 약속하며 산행을 마칩니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청산 전치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