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異山 戀歌

그래서 지리산이 좋다(숨은골과 천왕봉)

청산전치옥 2007. 3. 14. 21:22
 
그래서 지리산이 좋다
(숨은골과 천왕봉 주 능선을 거닐며)
 

 

-함께한 사람: 토목/아로미/별꽃/그리고 나

 

-산행한 날: 2007.03.12

 

-어디를: 숨은골과 천왕봉 주 능선.

 

♪ The Moulin Rouge Theme - Mantovani (stop = ■)

 

 

*오늘을 함께한 사람:토목/아로미/별꽃/나*

 

 

천왕봉의 서리꽃

 

간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더니

 

숨죽였던 육신의 꽃이 花神(화신)으로 물들어

 

상고대라는 서리꽃으로 천왕에 꽃을 뿌렸다.

 

 

 

엊그제만 하여도 푸르름의 자태를 뽐내는 주목에도

 

다가오는 5월이면 연분홍의 미려한 색깔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철쭉에도

 

몸 갈라져 외로이 서 있는 바위에도

 

한 송이 희디 흰 서리꽃이 우리의 아픔을 감싸주듯

 

상고대란 이름으로 우리의 가슴으로 와 닿는다.

 

 

 

짧은 인생의 상고대가 그러하듯

 

엉겨 붙은 채로 골아 떨어질 것들인데도

 

무엇이 좋아라 애처로움을 멀리하고

 

이렇게 떨고 있는 순간을 찍고 있는가?

 

 

 

서쪽 능선 끄트머리에

 

외로이 서 있는 반야의 허망한 외로움이

 

정녕 시들어가는 천왕의 상고대를 시기하듯

 

부르르 떨고 있는 자신의 몸을 추스르고 있구나.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모습에서

 

그 존재의 의미를 더하려고......

 

 

2007. 03.12.

 

     지리산 천왕봉에서.

 

 
 

*제석봉의 고사목에 핀 상고대 상고대*

 

정말 오랜만의 지리산행이다.

 

지난 2월 초 한신계곡 산행을 끝으로 지리산 산방이 문을 닫았다.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토목님께 적당한 코스를 잡아보라고 하였더니

 

미끄러운 천왕봉 주능선을 내 놓는다.

 

우리야 괜찮겠지 하면서 아로미와 별꽃에게 할 수 있느냐 물으니

 

지리산 어딘들 못할 소냐 하는 쉬운 답변이 나온다.

 

고속도로를 달려 오면서 천왕의 하얀 꼬깔 모자가 오늘 산행의 의미를 느낀다

 

 
 

*천왕봉 주변의 엑스트라인 주목을 바라보며*

 

중산리 근처 상가에서 아침을 먹고 천왕쪽을 바라보니 해발 1300m

 

넘는 곳에서부터 눈이 부시도록 시린 새하얀 꽃으로 타올랐다.

 

그 꽃이 지금 어서 오라며 '하얀 유혹'의 손길을 내뻗는다.

 

며칠 전부터 불어 닥친 꽃샘추위가 영하의 날씨로 기온을 끌어내리더니

 

어제는 일부 지역에 또 한바탕 춘설을 내리게 하고 적당한 濕溫(습온)

 

유지한 채 상고대를 머물게 하더니 법계사 뒤로 신기루처럼 떠있는

 

하얀 靈峯(영봉)의 천왕이 정말로 압권이로다.

 

멀리서 쳐다봐도 멋있지만 산정에 올라보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리라.

 

 
 
 

*꽃샘추위에 계곡이 얼어붙은 모습과/칼바위*

 

아침 기온은 쌀쌀하기만 하지만

 

칼바위를 지나면서 온몸의 열기를 더해가더니 이내 외투를 벗어낸다.

 

이윽고 철 다리의 근처로 들어서면서부터

 

이제 또 다른 계곡의 초 봄(?) 미를 찾아야 하는 기쁨과 혹시 모를

 

안전산행에 혼 열을 다 해야 하는 책임감에 무거움으로 다가 온다.

 

함께하는 두 여성 산 꾼이 한신계곡에서 진가를 보여 익히 알고 있지만

 

오늘은 그때와 다른 빙판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걸어 온 길과 중산리를 바라보며*

 

이따금씩 보여주는 조망으로 파란 하늘이 열리고

 

그 열린 하늘 아래 능선의 상고대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을 때 나는

 

아쉬움으로 빨리 올라야 할 텐데 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어 세운다.

 

따스한 햇살이 이렇게 원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구나 하면서

 

계속 수다를 떨고 있는 토목님과 두 여성 산 꾼들의 잡담에 나도 한 수

 

거들어 보면서 올라 온 게 벌써 고도 1300을 넘었다.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숨은 목구멍 저 끝까지 타오른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겁구나.

 

손에 잡힐 듯하다 저 멀리 사라지는 천왕봉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그렇게

 

멀어지기도 하고 유난히도 청명한 하늘 아래 이어지는 산 그리메

 

이윽고 고도 1650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잠시 후 이정표(천왕0.6/중산리4.8)에 와 닿는다.

 

 

*지리산의 황금능선과 동부능선을 가르키고 있는 토목님*
 
*천왕샘은 마르지 않았다*
 
*한계단 한걸음에 수 많은 사연이 담겨있는 깔딱고개*
 
 

 

우리가 걸어 온 길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고도에 올라섰다.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은 우리의 발길을 더디게 하더니 그 동안

 

그리움에 지친 지리산을 마음껏 품어 본다.

 

청산님, 뭐하고 계십니까

 

. 그래

 

나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로미가 한마디를 거든다.

 

그렇다. 이미 천왕의 남릉과 동릉의 상고대는 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여유로웠다.

 

그래 서서히 가자. 흐르는 세월이 좀 먹는 것도 아니고……’

 

 

*허망한 반야의 외로움이 우리를 오라 손짓하네*
 
 
*오늘 함께한 아로미(위)/별꽃님*
 

*중봉능선을 바라보면서*

 

지리산 천왕봉

 

이곳에 우리가 서 있다.

 

우직한 두 발만을 믿으며 걷고 또 걸어 지리산의 품에 안겼다.

 

눈길 닿는 하나하나의 지리산에 고마운 마음을 띄우며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걸어와 이곳 천왕의 정상석에 내 몸을 던진다.

 

모처럼 주중에 아무도 없는 천왕의 정상석을 독차지 하며 기념 촬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니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북사면의 칠선계곡도 이렇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주 능선과 북 사면으로 펼쳐지는 상고대의 행렬은 환상 그 자체였다.

 

살아 천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주목은 이렇게 죽어서도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잘한 잎에는 하얀 서리꽃이 바람에 쌓여 포근해 보였다.

 

순백의 상고대와 에메랄드 빛 하늘이 맞닿은 지리능선의 장관은 하얀, 파란

 

단색이 만들어낸 조화는 속마음까지 텅 비우게 하고

 

저 멀리 서쪽능선에서 반야가 세상사에 지친 육신을 던져 오라는 듯

 

우리를 유혹한다.

 

 

 
 
 

*천왕주변의 엑스트라인 구상나무들*

 

내 어떤 필설로 모두를 말하리오

 

대자연이 만들어낸 장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한 폭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이토록 고고한 서리꽃을 카메라의 앵글로 담아 낼 수 있을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어찌 보지 아니하고 상상 할 수 있으리오.

 

덮어라 덮어라

 

~얀 서리꽃인 상고대로 덮어라

 

봄을 시샘하는 서리꽃으로 온 세상을 덮어라……

 

시샘하는 꽃샘추위로

 

봄을 가려라 그리고 덮어라

 

진달래 철쭉꽃 만발 하기 전까지만……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누구 하나 배고프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만큼 황홀한 몰아의 경지에 도취된 우리가 어찌 배고픔을 알리오.

 

오늘 우리가 이곳 지리산을 찾기가 얼마나 다행스런 날이었던가.

 

나 혼자만의 비경을 표현하기가 우스워 함께한 모두에게 숙제를 부여한다.

 

순간순간의 느낌을 산행기에 반영할 테니 내일 중으로 메일을 부탁해 본다.

 

그러나 모두가 반색하며 기겁을 한다.

 

나는 분명 함께 느낀 감정을 공동의 산행기를 작성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답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 진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 해 본다.

 

 

 
 
 
 

*제석봉 고사목의 전설은 저 파란 하늘만이 알겠지요*

 

1430에 장터목에서 늦은 점심상을 차렸다.

 

오늘도 예외 없이 두 여성 산꾼이 준비한 떡국과 복분자 술이다.

 

함께한 산행에서 먹거리를 언제나 제공 해 주신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산행기를 통해서 전하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는 산행이 이어지리라 본다.

 

한 시간을 넘게 휴식 겸 점심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장터목을 내려 오면서 등로에 어지럽혀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어차피 누군가가 주워야 할 쓰레기를 우리가 솔선수범하자는 제의에

 

모두가 쉽게 동의하며 즐거운 하산을 시작하며 17시35 산행을 마친다.

 

 

 

 

어려운 산행에 동참 해 주시고 끝까지 안전사고 없이 산행 할 수 있는

 

모두에게 수고 하셨다는 인사를 남기며 이만 산행기를 마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2007. 03.13.

 

청산 전 치 옥 씀.

 

 

 

 

<에필로그>

 

아쉬움에 뒤 돌아 보니 천왕은 그 자리에 꿋꿋하게 말없이 서 있다.

 

삶에 지치면 언제든지 찾아와 저 넓은 품에 안겨 보라는 듯……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시간은 꿈꾸는 시간이기에 행복하다.

 

그 품에 안기면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자아내고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기에 몸도 마음도 상쾌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수려한 자태와 함께 빚어낸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에 오늘도 나 눈멀고 귀 멀었다.

 

건강한 삶의 힘을 지탱하는 힘을 길러주는 지리산

 

그래서 나는 지리산이 좋다.

 

 

<일정정리>

07:55 중산리 주차장(620)

08:20 칼바위(840)

08:40 철다리(숨은골 들머리)900

09:00~09:10 고도975 폭포(휴식)

10:00~10:20 고도 1170 넓은 암반지역

11:00 고도 1335 계곡 눈 많은 지역

12:00~12:20 고도 1645에서 우골 선택

12:50 고도 1760 이정표 도착(천왕0.6/중산리4.8)

13:20~13:40 천왕봉(1915)

14:10 석봉(1808)

14:30~15:40 장터목 점심

16:20 유암폭포(1240)

17:00 철다리(원위치)

17:35 주차장(산행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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