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꽃 피는 언덕에서...
초여름 해질녘 무렵 고향 같은 언덕에 섰다.
알 수 없는 주검들의 무덤에 곱게 피어 있는 삐비꽃들의 합창 물결
마치 소복차림의 꽃 물결이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살아있는 자, 내 마음이 오히려 무안한지라...
논두렁 사이를 비집고 태양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흰색의 일렁임은 그칠 줄 모른다.
어린 시절
양지바른 언덕에 배가 불룩한 빼빼로 같은 삐비 줄기를 먹었던 우리네 시절
약간의 풋내와 달짝지근한 단맛의 향이 입안으로 퍼졌다
찔레나무의 통통한 찔레순의 떨떠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
냇가에서 피래 미를 쫓아 다니며 징 개미와 새우 잡아 검정고무신에 담던 일...
지금은 아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뭐가 그리 바쁘던지
바쁜 와중에 벌써 이방인이 되어버린 우리에 반가움으로 다가서는 우리 할매
세월의 무딘 칼날 속에 그렇게 버텨왔던 우리 할매들의 따스한 정은 남아 돈다
"어디서 오셨소~ 잉"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정겨운 말투
알 수 없는 시간의 간극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기다림에 베어진 말투이겠는가
저녁노을이 어렴풋이 논두렁에 내려 앉는다.
등 굽은 할매의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아~ 그래도 오늘 하루는 기어이 저물어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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